문재인 대통령께 호소합니다
박종린선생을 이대로 둘텐가요
‘비전향장기수’ 출신 박종린 선생(88)이 인천 사랑병원 중환자실에서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복역중 고문후유증으로 4급 장애인이 된 박종린 선생은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고 2017년부터는 대장암으로 힘겨운 투병을 하고 있습니다. 27살인 59년 통신부대 소좌로 남쪽에 내려왔다가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는 93년 대구교도소에서 병보석으로 출소할때까지 꼬박 34년을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당국의 회유대로 ‘전향’을 했다면 일찌감치 풀려났을테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남에서 이렇게 외롭고 힘들게 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이는 동갑의 아내와 3개월된 딸 옥희를 두고온 평양에 다시 가겠다는 일념으로 강제전향 고문을 버텼고 지금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런 그이가 지금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지난 여름까지는 그래도 버틸만 했습니다. (사진 아래 왼쪽)
하지만 남북관계가 날로 악화되면서 병도 깊어졌습니다. 지난 10월 인천 사랑병원에 첫 입원한 뒤로 거의 식사를 하지 못했고 지난달 재입원 후엔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돼 의식까지 잃었습니다.
불과 넉달전의 모습은 간데없이 피골이 상접하여 중환자실에서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위중한 상태가 되버린 것입니다.
박종린 선생의 인생은 가혹(苛酷)하기만 합니다. 통신교육을 받던 요원 대신 남파됐다가 이중스파이에 의해 체포돼 모든 혐의를 뒤집어 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1976년 박정희정권 하에서 교도소내 인권투쟁을 하다가 반국가단체와 교신을 했다는 거짓죄를 뒤집어 쓰고 또한번의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습니다.
박종린 선생은 2000년 6.15선언으로 비전향장기수 송환이 결정됐을 때 마땅히 돌아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통일부는 석방될 때 그를 돕던 목사들이 대신 쓴 신변각서가 ‘종교를 받아들인 것은 사상적 전향’이라는 말도 안되는 결정으로 명단에서 배제(排除)했습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된 목사들이 강력히 항의했지만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며 2차 송환을 기다릴 것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고문에 의해 강제전향을 시킨 다른 32명의 장기수들도 함께 송환이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던 시절입니다. 그런 기다림의 세월이 20년이나 된 것입니다. 그 사이 열아홉 분이 숨졌고 지난 7월엔 강 담 선생이 평양에 있는 아내와 3남매를 끝내 못보고 87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박종린 선생의 비극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40여년간 떨어져 살았던 선생의 아내는 1997년 어렵게 소식이 닿은 중국의 조카를 통해 남편의 기막힌 소식을 전해듣고 그만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2018년 11월 촬영
2018년 11월 뉴스로와의 인터뷰에서 박종린 선생은 “아내가 세상을 떴다는걸 3년 뒤에나 알았어요. 딸아이가 혹시라도 아버지까지 충격을 받고 잘못될 수 있다며 중국 조카들에게 당분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다고 합니다”라고 쓸쓸히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이라도 인도주의적 정신으로 박종린 선생을 고향에 돌려보내주시길 호소합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북의 종군기자출신으로 34년을 복역한 비전향장기수 리인모 선생(당시 76세)의 건강이 악화되자 아무 조건없이 돌려보냈습니다.
박종린 선생은 당시 리인모 선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입니다. 생명의 불꽃이 꺼지기전에 60여년간 말한마디 나눠보지 못한 외동딸과 손주들의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감옥살이 포함, 60여년을 홀로 지낸 그이가 생의 마지막에 있습니다. 이념이 다른게 죄였다면 너무나도 혹독한 형벌을 받은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지금이라도 박종린 선생을 조건없이 북에 보내주십시오. 안그래도 우리 정부는 북측과 대화 채널을 복원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의 합의문을 남측이 지키지 않아 일체의 대화를 거절한 북이지만 선생을 조건없이 송환한다면 두손 벌려 화답할 것입니다. 대화의 물꼬가 터지는 것입니다. 다시 남과 북은 교류와 협력의 관계로 복원될 수 있습니다.
더하여 박종린 선생처럼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한시도 잊지 못하는 12명의 생존 장기수들도 조건없이 돌려보낸다면 북은 이산가족 상봉과 개별 관광을 비롯한 남측의 여러 제의에 통 큰 화답(和答)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부디 따뜻한 인도주의를 통해 남북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박종린선생이 중국의 조카를 통해 전달받은 딸과 손주들의 사진을 안타까이 쳐다보고 있다 <사진 2018년 11월 촬영>
* 양심수 박종린선생의 애끓는 망향가 (2018.11.9.)
대장암투병..병상인터뷰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m0604&wr_id=8295
* '쌍무기수' 88세 박종린 "이제는 저를 북녘땅으로 보내주세요“ (2020.7,13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657294&CMPT_CD=P0001&utm_campaign=daum_news&utm_source=daum&utm_medium=daum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