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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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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기획] ②NYT 1853년 한국해(Sea of Corea) 첫 보도 <코리아국호>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5-03-01 (일) 00:23:30

 

162년전 뉴욕타임스에 '한국해(Sea of Corea)'가 보도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사본 - 1853년3월3일 Seaof Corea.jpg



 

뉴욕타임스는 1853년 3월3일 목요일자 2면에 '한국해(Sea of Corea)'를 처음 언급했습니다. 타임스는 이 기사에서 "일본과 유럽의 교류는 동방교역의 선구자인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시작됐다. 300년전인 1542년 중국에서 류큐(琉球諸島)로 가려던 (포르투갈 상선의) 페르난도 멘데스가 강한 서풍에 휘말려 한국해(Sea of Corea)의 북서쪽 섬 나가사키 히라도 항에 닿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해'는 각종 고지도와 책자 등 문헌에서는 많이 발견됐으나 19세기 중반 미국 신문의 표기 사례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는 한국해가 미국 등 세계인들에게 보편적인 지명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미국 신문의 역사는 약 300년에 가깝습니다. 간략한 내용의 부정기 인쇄물을 제외하면 최초의 신문은 1721년 8월7일 보스턴에서 발행된 '뉴잉글랜드 쿠란트'로 사실상 봐야합니다. 뉴잉글랜드 쿠란트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형 제임스 프랭클린이 창간한 것으로 런던의 신문들에서 발췌한 소식과 보스턴의 홍역(紅疫) 사태를 창간호에서 보도했습니다.

 


 

미국최초의신문 창간호375px-NewEnglandCourant_00001.jpg

                                                           www.en.wikipedia.org

 

이후 90년이 지난 1810년까지 미국의 신문들은 366개를 헤아릴만큼 빠른 속도로 퍼져갔습니다. 유럽에서 16세기이후의 고지도와 문서, 책자 등을 통해 코리아의 로마자 표기인 Corea와 Korea가 언급된 것을 고려하면 이 시기 미국의 신문들에서도 쓰여졌을 개연성(蓋然性)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미국 신문에서 확인한 최초의 Corea는 1847년 11월10일 '더 캘리포니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846년 8월1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창간된 캘리포니안은 A3 크기의 한 장 신문로 앞면은 영어, 뒷면은 스페인어로 발간됐습니다.

 


 

1847년11월10일 Corea광고안내.jpg


 

 

1848년 5월29일 폐간, 불과 1년9개월여 남짓 존재했지만 그 사이에 역사적인 Corea 표기를 남긴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Corea가 우리나라를 지칭한게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고래잡이배 이름이더군요.

 

더욱이 Corea 호는 기사가 아니라 일종의 안내 광고였습니다. '알림(Notice)'이라는 제목 아래 '미국 포경선 Corea호의 선원들이 거래에 따른 부채에 대한 책임을 일체 지지 않음을 알립니다. -B B 헴스테드 선장'이라고 표기됐습니다.

 

선장과 선원의 분쟁(?)에서 언급된 Corea호가 먼 바다까지 나가는 고래잡이 배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극동의 먼 나라 코리아 이름을 딴 것으로 추정됩니다.

 

◇ Corea 국호 첫 표기는 1847년 캘리포니아스타

 

코리아가 국호로 표기된 첫 기사는 캘리포니안의 라이벌 매체 캘리포니아스타(1847년 1월9일 창간)에서 볼 수 있습니다. 1848년 2월5일 "(1847년 8월) 한국 해안(Coast of Corea)에서 좌초한 프랑스의 전함 글르와르와 빅토리우스의 라 피에르 제독과 선원들이 영국의 대덜러스 전함과 상선 제레미스 가넷호를 타고 마카오로 이동했다. 피에르 제독은 12월 홍콩에서 페킹호를 타고 프랑스로 돌아갔다"고 전했습니다.

 

 


 

1848년2월16일 캘리포니안-프랑스전함 Korea 해안좌초.jpg


 

 

캘리포니아스타는 같은해 2월16일 중국과 영국의 분쟁 뉴스를 다루며 다시 한번 Corea를 언급합니다. 89명의 해적이 복건성(푸젠성) 아모이(샤먼)에 주재하는 영국영사에게 인계된 내용과 두척의 프랑스 전함이 Corea 해안에서 좌초된 소식을 다시 전했습니다. 이 기사에선 중국 도시 상하이를 한국식 발음인 상해(Shanghae)로 표기해 눈길을 끄네요.

 


 

1848녀2월28일 캘리포니아스타 Corea호 기사.jpg


 

 

1849년 2월28일 캘리포니아스타는 Corea호를 언급했는데, 앞서 캘리포니안에 나온 포경선과 동일한 것인지 궁금증을 안겨줍니다. "일본 해안에서 좌초한 Corea호 등 두척의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이 나가사키로 송환(送還)됐다. 일본의 법은 모든 외국선박의 선원들은 황제의 명에 따라 관대한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대표신문 뉴욕타임스가 처음 Corea를 언급한 것은 1851년 11월14일입니다. 역시 'Corea'호를 언급했습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보도 두달전인 9월18일 창간한 신생 매체였습니다. 헨리 레이몬드 등이 창간했고 처음 이름은 '뉴욕 데일리 타임스'로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뉴욕타임스가 언급한 'Corea'호는 미국 포경선(捕鯨船)이 아니라 영국 선박(British ship Corea)이었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Corea'호가 여러 배들의 이름으로 쓰였다는 정황을 말해줍니다. 기사 내용은 "며칠전 코리아호의 선원 한명과 선장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항구에서 바다에 투신, 실종됐다"는 사건 보도였습니다.

 

뉴욕타임스의 'Corea' 보도는 1852년 9월22일에도 이어졌고 1853년 3월3일엔 마침내 '한국해(Sea of Corea)'라는 지명을 등장시킵니다. 기사 내용은 일본이 유럽과 교역을 시작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었습니다.

 


 

사본 - 1853년3월3일 Seaof Corea (2).jpg


 

 

"일본과 유럽의 최초의 교류는 동방교역의 선구자인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시작됐다. 300년전인 1542년 우연한 사고에 따른 것이었다. 중국에서 류큐로 가려던 (포르투갈 상선의) 페르난도 멘데스가 강한 서풍에 휘말려 피항한 것이다. 한국해(Sea of Corea)의 북서쪽 섬인 나가사키 히라도 항에 도착한 이들은 따뜻한 환영을 받았고 곧 무역을 시작했다. 특기할만한 것은 이 시기 일본의 (지방) 왕자들은 중앙의 쇼군(將軍)과 상관없이 독자적인 권한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16세기부터 유럽과 문물을 교류했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19세기 중반은 일본의 영향력이나 지명도가 조선(Corea)과는 비교 할 수 없을만큼 압도적인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해(Sea of Corea)라는 명칭을 뉴욕타임스가 썼다는 것은 '한국해'가 오랜 역사속에 공인된 지명이었다는 방증(傍證)이 아닐까요.

 

1853년 4월30일엔 또다른 유력지 뉴욕옵저버가 'Corea'를 언급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본격적인 교류를 보도한 내용이었습니다. 한반도가 열강(列强)의 각축장(角逐場)이 될 것을 예고하는 안타까운 예고이기도 했습니다.

 

"페리 제독이 두 번째 (일본) 방문의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세 개의 항구가 미국과의 무역을 위해 개방되고 석탄을 미국증기선에 제공키로 합의했다"는 내용과 "Corea와 일본 사이에 있는 섬 쓰시마의 왕자들.."이라는 사진 설명을 붙였습니다.

 

<3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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