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의 진주, 보석, 자존심이라 불리우는 그곳. 아마 러시아 연방 중에서는 유일하게 EU가 된 국가로 알고 있으며 2011년에는 유럽의 수도로 선정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Tallinn).
이미 북유럽 배낭여행을 가기 전 많은 이들의 추천을 받았던 도시였지만 핀란드에서 ‘산타마을’을 갈 계획이었기에 탈린은 루트에 잡아두지 않았었다. 하지만 첫 도착지 핀란드, 헬싱키에서 촌티 팍팍 내며 숙소도 없어 고생 중이었고 4월에 산타마을을 다녀온 친구들이 산타 할아버지들 휴가철이라며 한명도 못봤다는 후기도 있었기에 보통 당일로 다녀온다는 탈린에서 1박을 하는 우연이 만들어졌다.
헬싱키에는 2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탈린은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쇼핑을 위해 일부러 주말에 탈린을 방문하는 현지인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탈린으로 가는 배 안에서 맞은 편에 앉은 동양인을 보았는데 이 친구가 나를 힐끔 힐끔 보는 것이 아무래도 한국사람인지 아닌지 맞다면 말이라도 걸려는 눈치였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보고는(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한국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우리 둘은 곧 서로의 여행 사연을 나누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에 교환학생으로 가는 이철민 군은 그곳에 가기 전 몇몇 나라를 여행 중인데 특히 노르웨이 물가가 비싸다는 말에 한국음식을 꽤 많이 비상식량으로 확보했다고 한다.
돌돌이(바퀴가 달린 가방류, 이민가방인데 바퀴 있는 것)에 바퀴 하나가 망가졌으면서도 그 식량을 노르웨이까지 아껴서 가져가기 위해 낑낑거리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탈린에 도착하니 비가 꽤 많이 내리고 있었다. 그 친구가 가방을 끌다시피해서 어딘지도 모를 호스텔을 찾을 생각에 한숨 쉬길래 위로라도 해줄 마음으로…‘이런 여행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더니, 어금니 꽉 물며 ‘오래는 나겠죠…오래 기억에는 남겠죠’ 라고 말해 웃음이 나왔다.
다음 날 탈린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올드 빌리지(구시가지) 인포센터에서 만나 서로 사진이라도 찍어주자고 약속 한 뒤 각자의 길로 갔다. 전혀 계획에 없던 탈린에서의 하룻밤을 이렇게 보내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구시가지를 찾아 나갔다. 파리의 몽마르뜨나 프라하의 체코와 같은 유럽 특유의 느낌이지만 때가 덜 묻은듯한 이 도시. 중세시대의 무대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돌담과 돌계단, 좁은 골목길 그리고 알록달록한 밝은 느낌의 색들이 나를 배우로 만들어 주었다. 또 이번에는 친구 한명을 만났기에 혼자 사색한 시간과 함께 그 아름다운 배경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사진들도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특히 대지주가 살았을 법한 고성 위에서 바라보는 탈린의 구시가지는 흐린 날에도 불구, 그 동화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관광객에게 보이며 기쁨을 선사했다. 또한 작은 가게들은 개성 넘치는 간판이나 입구로 나도 모르게 한번쯤 들어가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느껴졌다.
마치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직도 흑기사(黑騎士)들이 모여 앉아 있을 것 같고 골목에서 귀족을 태운 마차가 갑자기 튀어 나올 것 같은 기분이랄까… 북유럽 어느 도시든 구시가지(한국의 인사동 같은)를 보존하고 있지만 특히 때묻지 않고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탈린은 나에게 가장 매력적인 올드 씨티임은 분명하다.
탈린에서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일은 태어나서 ‘젖먹던 힘까지 다했다’라는 경험을 한 것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 막연히 헬싱키로 돌아가는 배편이 낮 12시라고 알고 느긋하게 11시 30분쯤 호텔로 돌아가다가 혹시나 해서 확인해본 티켓에 출발 11:30이라고 써 있었다.
나는 헬싱키에서 오후 5:30에 출발하는 스웨덴, 스톡홀름 크루즈를 탑승해야 했기에 얼굴이 노래져서는 숙소에서 미친 듯이 짐을 싸서 온 몸이, 그야말로 속옷까지 땀에 젖을 정도로 13kg의 배낭과 카메라, 크로스 백을 매고 배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호텔까지 그냥 걸어서도 15분 이상 걸리는 거리였는데 그나마 길을 잘 못들어 좀 돌아서 선착장(船着場)까지 뛰었다. 정말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배는 떠났고 다음 편이 2시라고 했다. 문제는 내린 곳에서 바로 환승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항구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래서 더 절망적일 때, 너무 처절해보이는 내 모습을 보고 직원이 지도까지 프린터로 뽑아주며 내려서 바로 택시를 타면 늦지 않고 스웨덴 배편을 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리에 힘이 쫙 풀린 나는 다른 선택이 없었으므로 무작정 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당시에 썼던 저널에 있는 나의 글, 전문을 수정없이 그대로 올린다. 확실히 이번 여행은 반성하는, 나를 찾는 여행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1:06:12 Rita의 북구여행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