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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성목사의 지구촌 사랑나누기
한신대학교 신학사, 목회학 석사, 목회학박사, 미국 맥코믹신학대학 교환교수. 1992년부터 중국동포와 외국인노동자들의 노동상담을 하고 있으며 <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 <지구촌사랑나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다문화복지센터> 대표, 연합단체 <외국인노동운동협의회> 공동대표. 저서로 <목사님, 저는 한국이 슬퍼요> 등 다수, ‘뉴스위크’선정 '2005를 빛낼 인물들 10인'. 서울신문 101주년기념 <한국을 움직이는 101인>.‘복음과 상황’이 주목한 100인의 그리스도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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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필리핀노동자 에리엘 갈락

글쓴이 : 김해성 날짜 : 2012-02-05 (일) 14:20:48

 


 

20년 동안 수많은 외국인노동자를 만났지만 필리핀에서 온

에리엘 갈락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외국인노동자를 도우면서 맺은 첫 번째 인연이었고

황당하게 해결해준 산재환자였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1986년 목사 안수를 받은 저는 성남지역의 노동자와 빈민을 위한

선교활동을 하면서 성남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주변 인사들이 외국인노동자 인권운동도 함께 하자고 제안했지만 간염 등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데다가 짧은 외국어 실력때문에 손사래 쳤습니다.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외국인노동자를 돕는 운동이 기어코 저를 찾아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2년 12월쯤이었습니다.

성남 지역 인권운동 동료인 이재명(현재 성남시장) 변호사가

산재사고로 오른쪽 팔뚝이 절단된 에리엘 갈락을 저에게 보냈습니다.

5인 이하 사업장은 산재보험이 안되던 때라 법률의 도움도 한계였습니다.

저는 한국 노동자들의 산재와 임금체불 등을 돕는 노동상담소를 운영했기에

외국인노동자의 산업재해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저를 찾아온 첫 번째 외국인노동자인 에리엘 갈락은 불안에 떨었습니다.

보상금은 커녕 밀린 병원비에 시달리고 있던 그는 언제 붙잡힐지 모르는

불법체류자였기에 한국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그가 일했던 온실 보온덮개 공장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장은 초등학교만 나왔지만 JC(한국청년회의소) 회원일만큼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는데

자신을 대신해서 사건을 처리해줄 사람이 있으니 그 형사를 만나보라고 했습니다.


'젊은 목사 양반, 괜히 까불다가 혼나지 말고 손 떼시지!

나의 든든한 형사 형님이 뒤를 봐주고 있다고. 당신 잘못하면 다쳐!'


 

사장의 의도는 겁주면서 뭉개려고 한 것인데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저를 겁주기 위해 동원한 그 형사는 하필이면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그는 운동권 교회인 주민교회(이해학 목사)를 담당했던 정보과 형사였습니다.

형사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그는 경찰을 그만두고 보험회사 지점장으로 일했습니다.

의리파 형사이자 김대중을 추종하는 야당인사로 변한 그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한국에 돈 벌러 온 가난한 외국인노동자가 사장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기계에

오른팔이 말려들어가면서 팔뚝이 잘렸는데 보상금 한 푼 없이 쫓아내면 되겠습니까!"


저의 말에 그 형사가 적극 동의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보상금 2000만원을

제시했더니 그 형사가 "알겠다. 적극 도와주겠다!"면서 흔쾌히 나섰습니다.


 

당시의 경찰과 악덕사업주 사이에서 저는 '매 맞는 목사'로 불렸습니다.

전두환-노태우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악착같이 싸우다 맞고, 쓰러지고, 끌려가고· · ·.

노동자를 대신해 목숨을 걸다 시피하면서 악덕사업주에 맞서 싸우면서 얻은 별칭입니다.

농성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지독하게 싸웠더니 협상을 요청하는 사업주들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분쟁이 나면 등장하는 정보과 형사들은 악덕 업주들에게 넌지시 귀띔해주었습니다.


'박 사장, 김 목사와 싸워서는 못 이겨! 손들고 협상해 그게 남는 장사야!'


그 형사가 어떻게 했는지 오만했던 사장이 혼비백산하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보상금 한 푼 주지 않고 쫓아내려고 했던 그가 눈물을 흘리며 통사정했습니다.


"치료비로 800만원을 썼는데 또 다시 2000만원을 보상하고 나면 회사 망합니다."


 

2000만원 요구는 무리라는 판단이 들어서 다시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사장은 최대한 보상할 수 있는 돈이 1500만원이라면서, 그렇게 합의해주면

밀린 병원비도 모두 갚겠다면서 100만 원 짜리 수표 15장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보상금 1500만원이 에리엘 갈락에게 건네지자 그는 저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밀린 병원비 문제로 수개월 동안 시달리던 그는 병원비만 해결돼도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상금까지 받게 되자 절망의 얼굴이 희망과 기쁨의 얼굴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에리엘 갈락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접근했습니다.

그런데 이재명 변호사로부터 의뢰받은 지 하루 만에 해결됐습니다.

너무 쉽게 해결되면서 저뿐이 아니라 이 변호사, 에리엘 갈락도 황당했습니다.

그 순조로운 첫 인연을 통해서 저는 아주 깊숙한 수렁으로 빠져 들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2년 1월말 현재!

오랜 동지인 이재명 변호사는 저희 법인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임 시장이 남기고 간 청사문제 등을 해결하느라 애쓰고 있습니다.

의리파 형사와는 인연이 더 깊어져서 가족 간에도 종종 식사를 하고

저는 에리엘 갈락과 같은 이들의 아픔과 눈물을 보듬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에리엘 갈락은 지금쯤 50대 중반이 되었을 텐데

잃어버린 한쪽 팔로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 다문화 희망세상을 꿈꾸는 김해성 목사 올림

<http://g4w.net/m3_0.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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