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전문필진 l 사진필진 l 열린기자 l Kor-Eng    
 
미국필진
·권이주의 美대륙을 달린다 (117)
·김동석의 워싱턴워치 (79)
·김수복의 자력갱생 북녘경제 (11)
·김중산의 LA별곡 (40)
·김창옥의 빌라레비 훨훨 (6)
·김태환의 한국현대사비화 (73)
·김현철의 세상보기 (98)
·노정훈의 세상속으로 (31)
·로빈의 스포테인먼트 (98)
·세등스님의 세상과 등불 (5)
·신필영의 삶의 뜨락에서 (34)
·오인동의 통일 고리-Gori (40)
·장호준의 Awesome Club (101)
·피터 김의 동해탈환 이야기 (52)
·한동춘의 퍽 환한 세상 (15)
·한종우의 시사아메리카 (13)
실시간 댓글
김동석의 워싱턴워치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시민운동가. 2006년 한국 인사로는 처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상원의원 시절 단독 인터뷰했고 미 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인유권자센터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총 게시물 79건, 최근 0 건 안내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미국이 만만한 북한

글쓴이 : 김동석 날짜 : 2012-03-10 (토) 14:33:55

1994년 북한과 클린턴 행정부 간의 긴장은 매우 심각한 상태였고 전쟁의 가능성까지 제기되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전국민 전쟁태세를 宣布(선포)하고 “조국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건들면 즉시 공격을 명령 하겠다”까지 했다.

19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평화조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평화메이커 카터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해서 클린턴을 만났다. 카터는 미국의 저명한 기자이며 그 얼마 전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댄 래러(Dan Rather)'의 “북한은 실제로 보지 않으면 이해가 불가능한 일종의 외계 행성이다”란 말을 인용하면서 클린턴을 설득했다.

클린턴은 카터의 개입을 매우 주저하면서 그의 방북을 승인했다. 김일성을 만난 카터는 경제적 지원을 받는 대신 핵을 동결하기로 협상하는 데 성공했다.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18년의 미국에 대한 북한의 입장과 정책은 변한 것이 없었다. 심지어 김정일은 미국에 대한 적개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도 카터에 대한 존경심엔 변함이 없었다.

 

▲ 1978년 카터대통령과 클린턴 www.en.wikipedia.org

북한의 김정은(체제)은 1994년 그의 할아버지와 카터 할아버지가 만들어 낸 기본합의로 북미관계의 방향을 잡았다. 미국과의 핵 거래를 통한 실리 챙기기와 체제 안정이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 한 한 달도 안 된 그해 8월5일 상복 차림으로 미국과 3단계 고위급 회담을 재개한 것과 아주 유사하다. 그 때에 이루어 낸 제네바 합의는 2002년 2월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질 때까지 북.미 관계의 틀이 됐다.

김정일의 ‘고난의 행군’이 바로 이 기본합의서의 덕을 보았다. 극심한 식량난을 핵시설 동결의 대가로 지원 받은 식량과 중유로 위기를 넘겼다. 지금 김정은이 역시 아버지 김정일이 택한 길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보면 북한의 입장은 일관되어 왔고 미국이 右往左往(우왕좌왕) 한 결론이 나온다. 김정은 체제는 미국과 직접 맞짱을 뜨면서 6자회담의 여건을 유리하게 만든다는 전략이다.

 

작년 7월 28일의 뉴욕회담, 그리고 10월24일 제네바 회담에 이어 지난 2월23일 중국의 베이징에서 북한과 미국이 만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회담재개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신속하고 치밀한 권력승계를 치른 북한은 권력공백 가능성을 조기 차단하고 새 정권의 안정성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입장도, 그리고 사람(대표)도 이전의 그대로다.

사실, 북한과 미국은 각각 자신의 입장에서 고위급 회담을 늦출 필요가 없었다. 2차 회담에 이어서 연말에 3차 회담을 예정했으나 갑작스럽게 김정일이 사망했다. 3차 회담이 의외로 신속했다 독재국가에서 권력이 교체 되었음에도 대내외 전략과 정책이 이전의 그대로다. 북한의 체제유지의 자신감이 묻어난다.

지난 2월23일 베이징에서의 3차 회담에 나타난 북한 대표는 김정일 사망 이전의 대표단 그대로였다. 낯익은 사람들에게 미국대표단은 안도했고 성과를 기대했다. 미국과 북한은 23일 하루 종일 협상했다. 북한 팀은 협상 내용을 들고 하룻밤 사이에 평양을 다녀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 회의에선 1시간 만에 합의를 導出(도출)했다. 1994년 김일성과 카터가 만들어 낸 기본 합의서 그대로다.

미국과 북한은 양측이 합의한 내용을 2월29일 평양과 워싱턴에서 동시에 발표 했다. 합의서 한 장을 서로 거꾸로 읽었다. 북한은 북.미 관계 개선과 식량지원 등을 앞에 넣었고 미국은 비핵화 사전조치 문구를 앞에 넣었다.

북핵문제가 1994년의 원점으로 돌아갔다. 식량지원이란 조건으로 비핵화 조치(핵 동결)를 , 핵 동결 이란 조건으로 식량지원을 받는 내용이 같다. 18년 동안 협상이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원점이다.

조지 부시 8년 동안 미국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북의 체제붕괴를 유도하거나 기대했지만, 심지어는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선제공격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북한 특유의 벼랑끝 전술에 휘말렸다. 오히려 그동안 북은 장거리 미사일뿐만 아니라 두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서 절반의 핵보유국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김정은 체제에게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만만하게 보인다. 이란 핵 문제 등으로 북한에 집중할 겨를이 없음을 노렸다. 북은 철저하게 통미봉남(미국과 통하고 남쪽하곤 닫는다)의 전략으로 미국하고만 상대하겠다는 것이다. 미국내 한인들이 한국의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민족임이 원칙이고 평화와 안정이 목표이다.


최경자 2012-03-10 (토) 21:27:01
녜, 맞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댓글주소
김영숙 2012-03-13 (화) 22:56:58
북한은 벼랑끝 전술로 십수년간을 계속 미국의 경제원조를 받아내고,

중국은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서 수용소, 고문, 죽음에 처하게 하고,

북한 사람들의 인권문제는 어떻게 되는건지......,

김동석 이사님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댓글주소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발행인 : 洪性仁 l편집인 : 盧昌賢 l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2010.08.31.) l창간일 : 2010.06.05. l한국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 미국 : 75 Quaker Ave. Cornwall NY 12518 USA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