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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워싱턴워치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시민운동가. 2006년 한국 인사로는 처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상원의원 시절 단독 인터뷰했고 미 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인유권자센터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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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김일성과 2011년 김정일

글쓴이 : 김동석 날짜 : 2011-12-25 (일) 08:30:43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17년간 절대 권력으로 북한을 통치했던 ‘친애하는 지도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죽음은 북한 사회를 넘어서 동북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그의 죽음에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지만 여하튼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김정일 이후의 북한이다. 서방세계에서 습관처럼 예측하던 “김 위원장의 유고는 곧 북한의 급변사태” 는 일단 그렇지 않음이 증명되었다. 사망 후, 정확하게 52시간 동안의 공백은 오히려 북한의 위기관리 체제가 잘 작동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www.en.wikipedia.org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에는 하루 뒤 발표했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틀이 지나 알려졌다. 그것도 웬만한 준비를 모두 갖추고, 그리고 중대발표를 미리 예고해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서 아주 당당하게 수령의 유고(有故)를 알렸다. 김정일 사망 이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관련된 정보가 잘 통제되는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지금까지 보여준 초동 대응은 17년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94년 7월9일 새벽에 클린턴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보고 받았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G7(선진7개국)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이탈리아 나폴리에 머물고 있었다. 보고 후, 3시간 만에 클린턴대통령은 조의성명을 직접 발표했다. 미 국민을 대신해서 북한 주민들에게 심심한 애도(Condolence)의 뜻을 전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김일성 사망후 6일이 지나고서야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가졌다.

17년이 지난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보고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아주 절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스스로 직접 나서서 많은 말을 쏟아 냈는데 반해서 오바마 대통령은 우선은 김정일 사후 북한의 동향을 수시로 보고 받으면서 직접 공개적인 언급은 삼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시켜서 “북한 주민들에게 염려와 기도(Thought and Prayers)를 전한다”로 조의를 표했다. 기자의 질문에 국무부 대변인은 애도(Condolence)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까지 했다.

한국과는 상관없이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의 대표를 김일성주석의 장례식에 초청한다면 응하겠다고까지 했으며 당시 한창 진행 중이었던 미북간 핵협상도 빨리 재개되길 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클린턴 대통령의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조문외교 덕분에 그로부터 3개월후에 제네바 합의(강석주/갈루치)가 도출되기도 했다.

 

www.en.wikipedia.org

그러나, 그러한 북미관계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한미관계, 조문 파동으로 인한 최악의 남북관계, 북한의 약속 불이행 등을 거치면서 강석주와 갈루치의 합의는 파기(破棄)되었고 북한의 핵문제는 원점이 되고 말았다.

지난 18일 밤 오바마 대통령은 김정일 사망 사실을 보고받고 1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가졌다. 미국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이 한국과의 통화였다는 사실은 17년이 지나는 동안 미국의 대 북한전략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미국의 대응을 보면서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은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를 뒤흔들 돌발사태를 맞아 첫째는 미국내 여론을 우선하고 둘째는 한미공조를 강화해서 셋째는 안정된 상황관리에 우선 주력한다는 분석을 내 놓고 있다.

지난 17년 동안 북한에 속고 속았던 북핵 과정의 시행착오와 두 차례의 핵실험을 거치면서 미국의 전략이 달라졌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의 일방적인 의지만을 갖고 있었지 한반도의 급변상황을 함께 관리한다는 한미공조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었다. 북미관계에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가 그만큼 필수적으로 중요함을 미국의 대북라인에서 미처 몰랐던 것이다.

전 세계의 독재자들이 쫓겨나서 재판을 받거나 총살당한, 그래서 시사주간지 <타임>이 “시위의 해”로 정한 2011년 거의 끝 무렵에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서방세계에서 가장 악독한 독재자로 규정을 한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에 모든 나라들이 조의를, 위로를 보내고 있는 아이러니한 장면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우리 앞에 전해지고 있다. 더구나 나이어린 후계자 김정은의 든든한 후견을 자처하면서 중국은 최고 지도자인 후진타오를 비롯한 9명의 상무위원 전원이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찿아서 조문을 했다.

김일성이 죽으면 통일이 절로 된다, 그리고 김정일 체제가 곧 무너진다, 권력 다툼으로 내부가 붕괴된다, 굶주림에 지친 북한 주민들이 곧 들고 일어난다, 등등...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북한은 더 결집되고 더 결속된 듯하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고, 반드시 그 인식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궁극적으론 통일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김영숙 2012-01-20 (금) 02:23:02
북한은 마치 김일성 왕국을 사수하는 19세기의 국가처럼 보입니다. 저의 부모님 고향은 해주이고 전쟁이 발발하자 반동분자로 몰린 (이승만 박사를 옹호하는 대한청년단원이였음으로) 부모님은 탈북을 하고 그 이후로 영영 고향을 잃어버렸습니다. 시아버님은 전쟁시 육군 6사단의 일병으로 출전하셨으나 0 0 전선에서 사망하셨고 불행하게도 그분의 유해를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진취적인 사람들이라고 부모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단지 공산당들에게 억제되어 있을뿐이라고. 어떤 시기에 도달하면, 그 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북한도 반드시 개방되어 민주화가 진행될 것으로 봅니다. 그 것이 전세계의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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