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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워싱턴워치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시민운동가. 2006년 한국 인사로는 처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상원의원 시절 단독 인터뷰했고 미 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인유권자센터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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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생존자와 일본군강제위안부의 만남

글쓴이 : 김동석 날짜 : 2011-12-12 (월) 09:25:53

프랑스 정부는 나치 독일에 협력하기로 결정했다. 자국내 1만3천여명의 유태인들을 모아 벨디부 경륜장에 가두고 이들을 차례대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移送)했다.

1942년의 일이었다.

 

프랑스 파리에 살던 유태계의 어린 소녀 ‘사라’는 유태인들을 체포하는 경찰들을 피해 동생 미첼을 벽장 속에 숨기며 동생에겐 곧 풀어줄테니 꼭꼭 숨어 있으라고 당부하고 부모와 함께 집을 나서다가 경찰에 들켜서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수용소에 있는 동안 가족들과 헤어져도 사라는 자신을 기다릴 벽장속의 동생을 생각하며 벽장열쇠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수용소를 탈출하여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간 사라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집의 벽장 속에서 싸늘하게 죽어있는 동생을 발견했다.

  

자신을 지탱하던 동생과의 약속이 사라진 후에 사라는 프랑스를 떠나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지만 사라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2009년이다. 미국출신의 프랑스 잡지기자인 ‘줄리아’는 유태인 집단체포에 대한 특집기사를 쓰기로 결정했다. 줄리아는 특집 기사를 위해서 조사를 하다가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과거 수용소로 끌려간 유태인 가족이 살던 곳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 줄리아는 이송된 가족 중 사라에 대해 처형기록이 없음을 알고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사라의 삶을 쫓아서 미국까지 취재를 온 줄리아는 사라의 아들을 만나지만 놀랍게도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유태인이 아니고 프랑스인으로 알고 있었다. (사라는 자신의 과거를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했었다.)

줄리아를 통해서 어머니에 대해 알게 된 아들은 어머니의 일기장을 펴보고 그 안에서 사라의 삶을 담고 있던 벽장의 열쇠를 발견했다. 사라가 수용소를 탈출해서 살아야 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죽음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한 벽장의 열쇠는 개인의 역사인 동시에 가려져있던 역사를 여는 열쇠가 되었다.

유태인 학살에 협력한 프랑스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프랑스가 나치에 협력했고, 책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사죄한다”라고 고백했다. 영화는 대통령이 사과하는 장면까지 보여 주고 있다.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고 그것을 바로 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개인을 통해서 비유적으로 보여 준 영화 ‘사라의 열쇠(Sarah's Key)’의 줄거리다.

유태계와 한국계로 시선을 돌리자

2007년, 워싱턴에서 ‘일본군위안부결의안’ 을 갖고서 치고받을 때였다. 누구든지 의회를 움직이려면 유태계를 따라 배우라는 충고였다. 전후,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는 필자에게 유태계 전략가들은 유태계 커뮤니티와 한인커뮤니티를 비교하길 권했다.

일본에 비해서 독일의 높은 수준을 언급하면 비웃음에 가까운 조롱(嘲弄)으로 무식함을 지적했다. 과거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사죄하는 집단은 지구상에 없다는 것이다. 독일이 역사 앞에 회개하고 사죄토록 한 것은 그들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설명이다.

유태인이란 이유만으로 하루에 수 만 명씩 처형된 자신들의 비참한 역사를 살아있는 교훈으로 만들어 낸 후대들의 집요한 노력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부끄럽고 비참한 역사지만 “다시는 이렇게 당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라는 민족 공동의 목표를 갖고서 이만큼 이루어 냈다는 것이다.

유태인들의 저 무서운 결집과 응집력의 중심엔 반드시 “ 홀로코스트 와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 있는 이유이다. 나찌에 협력한 사실이 드러나면 지구밖까지 쫒아가서 끝끝내 죄를 묻고 심판하는 목적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로 규정하는 행위다.

역사발전은 피해자의 몫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에 반론은 없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그것을 기대하고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 역시 없다. 그러나 지난 온 역사를 살펴보면 진전이나 발전(진보)이 저절로 된 적은 결코 없다.

현실에 안주해서 제 앞가림만 챙긴다면, 분명히 역사는 퇴보다. 더구나 국제사회가 작동되는 방식(논리)안에서 스스로의 회개와 반성은 인류역사 속엔 없다. 오히려 피해자의 반성과 대안(도전)에서 역사는 발전하고 세상은 좋아지기 마련이다.

일본과 독일은 가해자고 유태계와 한국계는 피해자다. 유태계의 각성에서 독일은 변했고 일본의 진실은폐(眞實隱蔽)와 역사왜곡(歷史歪曲)은 한국계의 수수방관(袖手傍觀) 속에서 날로 노골화 되고 있음이다. (우리가 이점은 냉혹하게 시인해야 할 일이다.)

2007년, 미주동포가 이루어 낸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은 이러한 피해자관점 역사발전의 시작점이다. ‘결의안’을 그냥 두면 종이쪽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내 유태계들이 수많은 홀로코스트 관련 결의안을 무기로 삼아서 독일을 변화시킨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 을 바탕으로 뉴저지 펠팍에 “결코 잊지말자!!”라는 구호로 기림비를 세웠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묻는 서구권의 제1호다. 이어서 미주동포는 홀로코스트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결합시켰다. 동시대에 서양과 동양에서 일어난 반인륜적인 인권침해 사례다.  

13일 화요일, 뉴욕에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역사적인 만남을 갖는다. 부모와 형제가 유태인이란 이유만으로 처형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면서 살아남은 유태계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한국의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를 초청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후대들에게 교육하자는 꼭 같은 불타는 의지가 맞아 떨어졌다. 미국내 한인들이 만들어낸 일이다. 미주동포의 일원임이 정말로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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