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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워싱턴워치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시민운동가. 2006년 한국 인사로는 처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상원의원 시절 단독 인터뷰했고 미 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인유권자센터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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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의회의 실세로 떠오른 ‘에릭 캔터’

글쓴이 : 김동석 날짜 : 2010-12-31 (금) 21:39:09

거의 광풍(光風)에 가까운 바람을 일으키면서 백악관에 입성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난 2년을 돌아보면 미국이 이제는 분명 ‘의회’의 시대다.

상. 하 양원의 절대 다수지위를 갖고도 대통령이 그렇게 비척거리며 우왕좌왕 했는데 새해의 여소야대 정국에선 대통령으로서는 야당의 수장(首長)을 부통령으로 들이거나 아니면 아예, 백악관을 의사당으로 옮겨 와야 할 것 같다.

게다가 하원의 모든 권한을 움켜쥐게 된 다수당 대표(Majority Leader)가 지난 2년 동안 오바마 대통령의 저격수(狙擊手) 역할을 자임 해 온 ‘에릭 캔터(Eric Cantor)’ 의원이다. 그는 차기 회기 260명의 공화당 하원 의원 중 최고의 강성 의원이다.

 

이하 사진 www.wikipedia.com

다수당의 대표는 의회의 의사일정과 총회에서 다룰 안건을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대통령이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금융개혁법안과 의료보험개혁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의회가 여대야소(與大野小)였고 ‘스탠리 호이어(Steny Hoyer 아래 사진)’ 다수당 대표가 철저하게 오바마 대통령의 개혁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의사일정과 안건처리의 권한을 갖고서 사소한 이슈에 있어서는 하염없이 공화당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대통령의 아젠다를 공화당에 들이대면서 관철(貫徹)시켰다.

 

지난 11월30일 오바마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를 백악관에 초청한 자리에서 스탠리 호이어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귀엣말로 “당신과 에릭 캔터와의 관계만큼만 이야기 하자”라고 속삭였다고 한다. 다수당의 대표인 ’에릭 캔터‘를 모르고서는 어떠한 이슈에 관련해서도 워싱턴을 전망할 수가 없다.

에릭 캔터는 최초의 40대 다수당 원내대표의 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는 1963년생이다. 미국 정치권에 유태계의 영향력이 크다고 하지만 에릭 캔터는 유일한 공화당내 유태계 현역의원이다.

민주당에선 40여명 이상의 유태계 현직의원이 있지만 공화당은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공화당 성향의 유태계 미국인들이 민주당 쪽보다 훨씬 더 전략적이란 것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유태계 미국인들은 유태인 정치인을 자제하고 유태계들의 집단적인 정치력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미국유태계들의 정치적인 전략의 기본이다.

2000년 대통령선거전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유태계인 커네티컷 출신의 상원의원인 ‘조지프 리버맨’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 했을 때 미국 전역의 유태계 지도자들이 리버맨을 찾아가서 부통령 후보를 포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전체 인구의 2% 남짓한 유태인들이 벌써 부통령이 되면 다수인 백인들로부터 고립(孤立)을 자초한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에릭 캔터 의원은 스스로 유태계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그는 유태계 최강의 정치결사체인 AIPAC(유태인 공공정책위원회)의 핵심 회원이다. 그와 비견되는 민주당쪽의 AIPAC 회원은 뉴저지 제 9지역구의 하원의원인 ‘스티브 로스맨(Steve Rothman 아래 사진)'이다.

 

AIPAC내에서 공화당계의 에릭 캔터는 세금.수출.입 관련 일을 관장하는 ‘세입위원회(Ways & Means)’ 소속이고 민주당측의 스티브 로스맨은 ‘국방위원회(Armed Services)’ 소속이다.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로스맨이, 수출, 무역 관련의 일은 에릭 캔터가 책임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필자는 2006년 3월 AIPAC 연례총회에서 처음으로 에릭 캔터를 직접 대면(對面)한 적이 있다. 워싱턴 컨벤션센타에서 개최된 AIPAC총회에서 얼굴보다 더 큰 안경을 쓴 광대뼈가 불거진 캔터가 먼저 필자에게 말을 걸어왔다. AIPAC이 모두가 다 야마카(정통 유태인들이 쓰는 작은 빵떡모자)인데 너는 아시안이면서 왜 AIPAC에 참가했는지 그가 궁금했던 것이다.

2년 동안 오바마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람 이매뉴엘’과 마찬가지로 그도 여차하면 이스라엘의 전쟁에 참가하는 유태인으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유태계 미국 정치인이다. 에릭 캔터는 부모로부터 ‘이스라엘 없이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란 민족 정체성의 명확하고 확고한 교육을 받았다. 버지니아주 제 7지역구 인 리치몬드시에서 태어나 거기서 자랐다.

부동산개발 사업을 하는 부모는 일찌감치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가를 했다. 그의 부모는 선출직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버지니아 출신의 걸출한 정치인들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일에 앞장섰다. 에릭 캔터가 2006년 에이팩 총회에서 필자와 만나서 대화하면서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당시 상원의 국방위원장인 ‘조 워너(Joe Waner)’ 의원이 자기 아버지의 친구라고 설명 하면서 그로부터 한국에 관해서 이야기를 많아 들었다고 했다.

그는 필자에게 여자 배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아느냐고, 하고 그의 일곱 명의 남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조 워너’ 당시 상원 국방위원장이라 했다. ‘조 워너’의원은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원산전투에 대한 영웅담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버지니아 출신의 연방상원 거물이었다.

에릭 캔터는 리치몬드의 한국인들에 관해서 묻기도 했다. 그는 한인 기독교인들에 관심이 높았고, 한반도가 분쟁지역이라는 것에서 미국의 유태인들과 처지가 다를 바가 없다고 의견을 내기도 했다. 미국이 국내에선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구분되지만 국외 정책에 관해서는 민주. 공화의 구별이 없으니 미국내 유태계는 미국 정치권을 향해서는 공동의 목표가 분명하다고 했다. 그때는 공화당이 한창 추락(墜落)할 때인 2006년이었다.

에릭 캔터의 정치적인 행보를 유심히 관찰하면 마치 ‘1994년의 깅리치’를 보고 있는 듯하다. 확고한 정치철학의 소유자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 하원의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깅리치는 현존하는 미국 정치인 중에서 가장 다이내믹하고 정치적인 비젼을 제시한 정치인이다. 그가 내건 정치 슬로건인 ‘미국과의 계약’ 을 위해서 국민과 소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깅리치가 제시한 아젠다를 먼저 치고 나가는 바람에 1996년 선거에서 대패하고 깨끗하게 의장직을 사임했다.

문제를 보고서 치유책을 제시하고 그것을 과감하게 직접 선두에 서서 추진하는 1부터 10까지의 모든 것을 이니셔티브 하는 스타일이 꼭 깅리치의 닮은꼴이다. 뿐만 아니라 내 사람인가 아닌가를 분명하게 구분해서 팀을 만들고 추진력을 발휘하는 공격적인 스타일이 깅리치를 복사하고 있는 듯하다.

에릭 캔터는 조지워싱턴대학을 다녔고 리버럴 아트 칼리지인 명문 ‘윌리엄 메리(Wlliam & Mary Law School) 법대’를 나왔으며 과학에 대한 기초이론을 배우려고 1989년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석사학위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부모 밑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잠시 배우기도 했다. ‘에릭 캔터’의 가정은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었다. 사업을 위해서도 그랬고 유태계로서 특수한 정치적인 임무에 충실 하느라 그랬다. 그는 일찌감치 정치에 눈을 떴다. 리치몬드시의 시장을 거쳐서 1980년도 연방하원의원이 된 리치몬드가 자랑하는 정치인 ‘토마스 블릴리(Thomas Bliley 아래 사진)'의 캠프에서 정치를 배웠다. 부친과 친분이 두터운 인연덕분이었다.

 

에릭 캔터는 대학에 재학중이던 때인 1982년부터 토마스 블릴리 의원 사무실에서 인턴을 했다. 1992년부터 블릴리의 추천으로 버지니아 주 하원에 진출해서 약 10여 년 동안 주 하원의원을 지냈다. 블릴리가 은퇴를 선언한 2000년도 버지니아 제7지역구에서 연방하원에 도전해서 무난히 진입했다.

그는 연방의회에 진입하자마자 지도부 입성을 시도했다. 공화당 대통령후보인 ’조지 부시‘ 캠프의 중심인 텍사스 사단의 문을 노크했고, 본인의 의지로 40대 초반에 당시 공화당 권력의 핵심인 ‘탐 딜레이(Thomas DeLay)’ 팀에 합류했다.

당시 다수당인 공화당은 일리노이의 ‘데니스 해스터트(Dennis Hastert)’가 하원의장직에 앉아 있었지만 실제 당권은 텍사스의 탐 딜레이와 그의 수하인 ‘로이 블런트(Roy Blunt 아래 사진)’가 갖고 있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로이 블런트 공화당 원내총무에게 충성을 서약한 에릭 캔터는 전국의 유태계를 동원해서 정치모금에서 발군(拔群)의 실력을 발휘했다.

 

‘돈’은 민감하게 작동했다. 에릭 캔터는 유일한 유태계 의원임을 은근히 선전하면서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당의 지도부에 입성했다. 원내 총무인 로이 블런트는 이제 초년생인 에릭 캔터를 수하의 수석부총무에 임명했다. 캔터에게 수석부총무는 권력 중심으로 타고 올라가는 사다리였다.

기회는 의외로 빨리 왔다. 2006년 불법적인 로비 스캔들(로비스트 아브라모프 스캔들)에 휘말려서 탐 딜레이 원내대표가 하루아침에 의원직을 상실했다. 원내총무(Whip)였던 로이 블런트가 원내 대표(Leader)가 되었고 에릭 캔터는 단숨에 원내총무(Whip)가 되었다.

110회기(2007년도)가 시작되면서 소수당으로 전락한 공화당에선 원내대표 자리를 놓고서 당시 ‘교육.노동위원장’이었던 ‘존 뵈너(John Bohner 아래 사진)’가 로이 블런트에게 도전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실정에 인기가 추락하던 텍사스 군단이 힘없이 밀렸다. 존 뵈너와 로이 블런트의 당 대표 경선에서 에릭 캔터는 최선을 다해서 ‘로이 블런트를 밀었지만 2차 투표의 경합을 벌리면서 결국 존 뵈너가 승리를 했다.

 

로이 블런트는 미주리주의 상원 도전을 이유로 하원지도부에서 탈퇴를 선언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에릭 캔터에게 넘겨주었다. 2007년 초에 대표경선이 끝나고 에릭 캔터는 당의 사령관이 된 존 뵈너를 그의 지역구인 오하이오로 세 번을, 그리고 DC의 대표사무실로 4번을 찾아 다녔다. 새 대표에게 충성 서약을 했다. 말로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누구보다도 공화당 의원들을 위한 선거자금 모금에서 실력을 발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는 2008년 대통령선거전에서 존 뵈너를 대신해서 공화당 후보인 ‘존 맥케인’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대선전에서의 그의 전략과 모금실력을 보고서 존 맥케인 캠프에서는 새라 페일린을 결정하기 직전까지 가장 유력한 부통령 후보로 고려하기도 했다.

에릭 캔터는 2008년 대선전을 대비해서 ‘공화당의 개혁’을 디자인 했다. 무엇보다도 공화당의 구닥다리를 정리할 결심을 했다. 그러한 궁리 끝에 나온 것이 그 유명한 ‘Young Guns Program’ 이다.

당내의 소장파 3명이 앞장섰다. 갤리포니아의 케빈 맥카티(Kevin McCarthy : 칼 로브 계열의 초선의원), 그리고 위스콘신의 폴 라이언(Paul Ryan : 5선의 보수개혁파) 의원과 의기투합했다. 이 세 의원은 이와 같은 공화당개혁에 대해서 책을 썼고 이 책은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이들은 2008년 하원 선거전에서 공화당 후보를 젊은 피로 대대적인 수혈(輸血)을 하자는 프로그램을 짰다. 각 지역여론을 토대로 모금대책을 세워주고 정치 지도력 훈련을 시켜서 소장계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1990년 아칸소주지사인 클린턴이 민주당의 개혁을 통해서 백악관을 점령했던 방법을 본뜬 것이다.

에릭 캔터가 주도한 이 Young Guns Program'은 2008년 선거전에서 전국적으로 60여명 이상의 신인을 발굴해서 출마를 시켰으며 그 중에서 현역을 제치고 5명의 정치신인을 냈다. 프로리다의 ‘탐 루니(Tom Rooney)’, 루이지애나의 ‘빌 캐시디(Bill Cassidy)’, 캔사스의 ‘린 젠킨스(Lynn Jenkins)’, 그리고 텍사스의 ‘피트 울슨(Pete Olson)’이다.

공화당내에 개혁의 파장(波長)을 일으켰다. Young Guns 프로그램은 하루아침에 ’에릭 캔터‘를 차세대 가장 유력한 개혁주자로 만들었다. 공화당 하원선거대책위원회(NRCC:National Republican Congressional Committee) 의 ‘피트 세션(Pete Sessions)’ 위원장은 당의 개혁을 위해서 에릭 캔터가 주도하는 Young Guns Program을 공식화하기로 선언하기도 했다.

지난 12월16일, 전국 공화당위원회는 연방의회 112회기(2011년과 2012년)의 하원지도부(각 상임위원장을 포함해서...)를 발표하면서 회기의 초반에 다루게 될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관해서 대단히 민감한 부분을 언급했다. FTA는 한국만이 아니라 콜롬비아를 함께 다루겠다고 언급한 것이다.

미국과 콜롬비아간 FTA는 멀고 먼 일이다. 그동안 미국은, 심지어는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공화당 내에서도 콜롬비아와의 FTA는 콜롬비아 내에서의 노동자 탄압의 예가 해결되지 않는 한 비준(批准)이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해 왔었다.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에 공화당도 관심이 높다는 정략적인 공화당 지도부의 발표였다. 에릭 캔터 공화당 대표의 강력한 의견이었다고 한다.

만일 선거전에 공화당 지도부를 예상하고 누군가가 에릭 캔터를 만났었더라면 적어도 그의 이러한 발언을 사전에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 정부도, 또한 미국의 기업들도 공화당이 다수당이 된 상황의 연방의회 112회기에서는 한. 미간 FTA가 별 어려움 없이 비준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럭비공 튀듯 튈지는 몰랐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에릭 캔터 하원의원에게 뭔가 얘기하고 있다. www.wikipedia.com

에릭 캔터 하원 다수당 대표는 지난 11월 중간선거에서 대승을 거두고서 미디어를 통해서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건강보험개혁안도 새 회기에서 무효화 시키는 법안을 만들어서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대통령을 향한 최강성의 저격수가 사령관이 된 야당의 공격을 과연 소수여당이 어떻게 돌파할지 지금부터 워싱턴이 요동(搖動) 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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