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푯말을 쓰고 왔다. 도라지, 찰 옥수수, 봉선화, 녹두, 아욱, 빨간 양파, 쑥갓, 적상추, 총각무우, 시금치, 딸기, 완두콩, 부추, 치마상추, 두벌콩….
한글 옆에는 영문 표기도 덧붙였다. 해가 지나 오래되어 검어져서 글씨를 쉽게 알아보기 힘든 푯말들은 뽑아내고 근래 들어 갓 심은 씨앗과 막 떡잎이 나오기 시작한 곳 마다에 푯말들을 줄 맞춰서 꽂았다.
지난 달 한국에서 나오면서 가장 정성들여 미국으로 가져온 것이 있었다. 씨앗이었다. 먼저, 같은 종류의 씨앗들을 세 벌로 나눠서 담았다가 덜었다가 다시 또 담기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글씨를 써 붙였다.
▲ 씨앗만 전해주려던 당초 생각과 달리 씨앗을 심어주게 되다보니 이름 푯말이 준비되지 않았다. 아쉬운대로 두 쪽으로 힘없이 쪼개지는 나무 젓가락에라도 이름을 써서 꽂기로 했다.
예를 들어 ‘토종오이/ 한 구멍에 두개씩/ 파종시기는 5월 전 후/ 전남 고흥 달금리 / 송성영 님’ 이런식으로 낱낱이 이름과 파종 방법과 시기 그리고 농사지어진 땅이 있던 명칭과 직접 가꾸고 키운 이의 이름까지도 적었다.
▲ 이곳저곳에서 조금씩 얻은 씨앗들을 모아보니 한 상 가득하다.
아다시피 해외에 도착해서 입국 신고를 할 때마다 거쳐야 하는 세관신고서 작성에서 가부(可否)에 관해 정확히 표기를 해야 하는 품목들이 있다. 나라 간에 옮길 수 있는 박테리아나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나라마다 면역(免疫)에 관해서 까다로운 규정들이 있다보니 흙이 묻어있는 식물이나 육류 과일등은 원칙적으로 반입(搬入) 자체를 금하고 있다. 가공된 식품이나 음식도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신고를 꼭 하게끔 되어 있다. 물론, 씨앗 등도 예외가 아니다.
▲ 땅에다 심을 수는 없지만 콩나물 콩도 얻었다. 지난 여름 수고로운 땀을 흘리면서 농사지은 이들을 생각하면 씨앗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흡족해온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검역관이 통과시켜주지만 개중에는 문제를 삼아 여지없이 그 자리에서 폐기처분 당하게 된다. 언젠가 그런 사례로 가져온 씨앗들을 모두 압수폐기 당했다는 사람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어서 한국에서 씨앗 조금을 가져오면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몇 해 전 입국하면서 미숫가루 때문에 마약류(痲藥類)로 오해 받아서 엑스레이며 짐 검색을 당했던 웃지 못할 경험을 한 뒤로는 세관 통과는 정말 검색하는 이의 판단에 따라 그 운명이 갈린다는 생각이 들자 씨앗을 챙겨오면서 나름 결연해지기까지 하였다. 흙이 묻어 있는 것도 아니고 위험한 것도 아니지만 기준에 따라 트집은 될 수 있다 싶어서 하나는 남편이 가져가고, 하나는 내가 들여오기로 했다.
운이 나빠 두 사람 다 뺏길 경우를 대비해서 농사지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받은 씨앗들을 지키는 방법은 한국의 누군가에게 주고 오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마침, 친구 하나가 훗날 퇴직을 하면 농사지으며 살아가게 될 땅이라며 구경시켜주겠다고 날 첩첩산중의 땅뙈기가 있는 채마(菜麻)밭으로 이끌었다.
▲ 미국 세관에서 빼앗길지도 몰라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강구된 한국에 심고 온 씨앗들이 현재 자라는 곳은 경상북도 봉화 땅. 산의 능선들이 겹겹이 겹치는 모습들이 한폭의 그림을 방불케 한다.
▲ 채마밭이 집 뒤의 비탈진 언덕에 있다. 씨를 심는 것보다 더 일이 많은 것은 밭고르기인 것 같다.
전통적인 농사법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재배하며 살겠다는 소박한 바램을 듣고 나니 뭔가 뜻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출국을 불과 하루 이틀 앞두고 정신없이 바쁜 어느날 서울에서 5시간 거리의 시골 산 중턱 아래 비탈진 곳의 친구 밭엘 가서 난생 처음으로 밭이란걸 갈았다. 먼저, 잡초를 뽑고, 돌을 고르고, 흙을 부드럽게 한다음 이랑을 만들어 씨들을 정성들여 심고 무겁지 않게 흙을 덮고 물을 주었다.
▲ 산비탈에서 씨앗 심다가 기겁을 하게 만든 ‘비얌’이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니 뱀은 우리땜에 얼마나 놀랬을까. ^^
▲ 지난해 장성의 죽청리로 은퇴한 교장선생님 집에서 나온 콩은 두개씩 심었다. 이 두벌콩은 여름내 친구의 밥상에 올라 건강을 지켜 줄 것 같다.
본래 농사와는 거리가 멀어서 잡초인지 먹는 나물인지 잘 구별이 안된다는 친구를 위해 밭 그림을 그리고 이랑마다 심은 각각의 씨앗 이름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표기한 지도도 만들었다.
▲ 농부로 살아본 적이 없는 친구지만 신발을 보니 농부로서의 자세가 되어 있어 보인다.
▲ 이른 봄 씨뿌리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흙고르기다.
어떤 선물보다도 귀한 씨앗들과 바쁜 시간을 쪼개서 노동(勞動)이란 선물(膳物)을 덤으로 받았다며 흐뭇해 하던 친구는 식탁에 오르는 푸성귀를 볼 때 마다 씨를 심어주고 간 그 수고가 오래오래 기억날것 같다고 했다.
▲ 개울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김없이 지천으로 널린 머웃잎이 보인다. 씨를 심지 않아도 거저 얻는 즐거움이 소쿠리에 담겨 있다.
얼마전 그때 씨를 심고 바삐 왔던 그곳에서 돌무덤이 아닌 초록의 채마밭으로 그럴싸한 텃밭의 그림이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우리 역시도 세관에 신고 절차를 밟았지만 별 탈 없이 통과시켜 주어 잘 도착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세관을 통과하는 내내 떠오르는 이름 하나가 있었다. 목화씨를 붓두껍에 숨겨 들여왔다는 전설의 주인공 고려시대의 문익점 역시도 이렇게 비장한 마음으로 미국에 씨앗들을 들여온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70~80년대가 원유나 가스 등의 지하자원에 의한 전쟁이 있었다면 다가올 미래에는 먹거리 특히, 그중에서도 씨앗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미 귀농한 몇몇의 지인과 한 종묘상의 말을 들으니 그 보이지 않는 전쟁은 미래가 아닌 지금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와 미군정 시대 그리고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들을 거치면서 우리 씨앗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는 동안 우리나라의 수많은 토종의 씨앗들이 외국으로 유출(流出)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씨앗들을 수입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원래의 이름이 아닌 가져간 나라에서 붙인 새로운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농부가 씨를 받아 쓸 수 없도록 유전자 변형과 조작을 해서 1년생 짜리 씨앗으로 만들어 파는 경우가 적지않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로열티를 물어가며 매 해 씨앗들을 사서 써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씨를 지키는 일, 곡물과 일개 푸성귀의 씨앗들이 뭐 그리 대수로울까 반문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게 우리의 얼과 영혼(靈魂)을 지키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씨앗은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씨앗은 오랜 세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것 중의 하나로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재산이자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아는 '우리것이 최고여' 라는 말과 더불어 영어엔 이런 말도 있다. ‘You are what you eat.’ 무엇을 먹느냐가 그 사람을 만든다는 뜻의 이 말엔 궁극적(窮極的)으로 토종 먹거리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전남 장성과 고흥에서, 충남 공주 그리고 제주 함덕에서 받아온 그 씨앗들은 현재 뉴요커와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는 뉴욕의 보태니컬 가든(wwww.nybg.org)에서 잘 자라고 있다. 씨앗이 자라서 그저 한 사람의 식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말마다 아이들이 찾는 생태 체험장인 훼밀리 가든에서 한국의 채소들과 꽃들을 보고 배우고 있음이 여간 기쁘고 보람되지 않다.
▲ 자연 생태 학습장이자 살아있는 식물도감인 미국속의 한국 텃밭에는 경종배추며, 알타리 무우며, 마늘, 미나리, 돌나물 등이 자라고 있다.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꼬박 2시간 여 걸리는 곳을 오가면서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 돌아오는 길이 의미있음은 우리의 씨앗 하나가 역할이 무한하다는 것, 그리고 한국 채마밭을 아이들이 보면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림도 그려가며 관찰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어서다. 무엇보다도 그곳을 찾는 동포들에게 고향(故鄕)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한국 텃밭을 보면서 향수를 달래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음은 두말해서 무엇하랴!
▲ 씨앗은 더러 우연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어느날 화분에서 자라기 시작한 식물이 꽃을 피울때 보니 분꽃이었다. 올 해로 3년째 집에서 크고 있는 분꽃의 첫 씨앗이 맺혔다.
아울러, 오늘(6월 5일)은 ‘뉴스로’ 인터넷 신문이 만들어진지 일년이 되는 날이다. ‘뉴스로’ 라는 매체가 한국에서 조심스럽게 가져와서 정성을 다해 심은 씨앗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비록, 씨앗의 본 고향은 한국에 있지만 미국이라는 토양 속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 텃밭의 씨앗을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하는것은 바로 이 대지이지만 언론의 씨앗을 잘 키워내는 일은 건강한 독자의 몫이 아닐까?
다른것이 있다면 채마밭의 씨앗은 한 사람의 정성만으로도 잘 자랄 수 있지만 언론의 씨앗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자랄 수 없다는 것. 텃밭에서의 씨앗이 건강한 흙속에서 물을 먹으며 부족하지 않은 햇볕 아래서 잘 자랄 수 있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뉴스로(Newsroh.com)’ 역시 건강한 글과, 우리들의 지대한 관심과 기대속에서 튼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고 본다.
▲ 오늘날 뉴욕 식물원에서 한국의 채소며 꽃들을 볼 수 있음은 오랜세월 거쳐간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스런 손길 덕분이지 싶다.
‘작은 씨 한 알’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게 하는 주말. 텃밭에서 나오는 건강한 먹거리와 매 한가지로 미국에 떨어진 한국의 ‘뉴스로’ 라는 씨앗이 아무쪼록 좋은 토양 속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이럴때 마침하게 잘 어울릴 성경 글 귀 하나를 인용해본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장대하리라’
▲ 제목/ Figure Image. 2010/ 종이에 물감/ 우리나라 남녘의 흙 빛깔을 연상케 하는 크로키 이미지에서 씨앗을 길러내는 대지의 힘과 흙의 중요성을 새삼 느껴본다. 아울러 앞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에서 뉴스로의 앞날을 기대해본다.
김치김 kimchikimny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