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立秋)도 처서(處暑)도 지나는 팔월의 끝자락. 여전히 태양 볕이 뜨겁다 못해 따갑기까지 하다. 8차선의 고속도로를 두어 시간 달리다 국도로 접어들었다. 이어서 한 시간쯤 달리니 아스팔트 포장이 끝나고 나면 여간 해서 만나기 힘든 흙과 자갈길을 만난다.
풀 숲 같기도 하고 농로에 들어선 느낌이 들면 그곳이 내가 머물다 오는 장소가 된다. 도심 밖의 세상 풍경은 초록의 수평선이다.
여기저기 한가히 풀을 뜯는 노새며 방목된 말 들, 무리지어 다니는 양 떼, 낙농가의 소들, 야생 토끼며 다람쥐들, 슬금슬금 느린 동작으로 작은 풀숲을 오가는 스컹크, 털이 꼿꼿이 선 청솔모, 꽃잎을 수시로 들락거리는 엄지손가락 만한 새들 허밍버드(Humming Bird), 진흙 목욕을 즐기던 갈색의 토종돼지와 어울려 모이를 찾아 다니는 암탉들, 동화책에서나 보던 세모난 얼굴의 꼬리가 풍성한 여우, 도로변 먼발치에서 어딘가를 한없이 응시하고 있던 사슴…….
남미 어디쯤에 있는 원시림의 정글풍경도 아니고 케냐의 세링게티 국립공원 풍경은 더 더욱 아니다. 뉴욕에서 차로 네 시간 정도 위로 아래로 휘젓고 다니다 보면 더러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이런 평화로운 풍광들을 보노라니 얼룩진 탁한 안경의 유리알을 깨끗이 닦은 후의 느낌처럼 상큼하면서 눈을 씻긴 맑은 느낌이 든다.
한여름 뉴욕에서는 크고 작은 콘서트들이 많이 열린다. 어느 도시보다 왕성할 뿐만 아니라 계절보다 많은 그것도 ‘무료 공연’들이 많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공연과 담 쌓고 지낸지 오래 되었다.
다녀오고 나서 괜히 갔다는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자리잡기가 복잡하고 수선스러울 뿐만 아니라 산만하다. ‘제사보다 잿밥이라고’ 공연은 뒷전이고 먹고 마시기를 작정하고 나온 이들과 옆자리에 어울리게 되면 공연이 아무리 좋아도, 설사 공짜였어도 안 가느니만 못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돌아오는 길, 발에 치이는 쓰레기들을 보면 마치 밥 잘 먹고 나서 후식을 잘못 먹어 입맛이 확 버린 기분처럼 공연한 걸음을 했다는 후회까지 든다. 물론, ‘사람구경’ 만이 목적이라면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올 팔월처럼 깊은 시골을 찾아가는 일이 많았던 달도 없었다. 아스팔트 포장이 끝나고 비포장 도로가 시작하는 곳에서 만나는 깊은 시골은 확실히 다르다. 창문을 내리고 풀 냄새와 흙 냄새를 맡는 것부터 싱그러운 느낌이 든다. 어느 때인들 예외일까마는 여름이 끝나는 이 지점엔 상상을 초월하는 ‘풍성한 소리의 울림’이 그곳에 있는 듯 하다.
어쩌면 조석(朝夕)으로 풀벌레 소리를 듣는 이들에겐 도시에서 온 촌뜨기의 시답지 않은 감흥 정도로 치부 될지도 모르겠다. 벌판에서 해질녘 만나는 반딧불의 향연이 그랬고 한 낮 해가 기울어지면서 커지는 풀벌레 소리들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유명 심포니와 비교할 바 아닐 만큼 그 소리에 푹 빠지다 보니 마치 자연의 소리를 찾아 나돌아 다니는 모습이 온 겨울 먹을 식량을 비축하는 개미와 다름없어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살면서 지칠 때 그 소리가 그리울 때 ‘기억장치’ 라는 것을 통해서 추억으로 되새김질을 할 요량으로 소리를 쫒아 산골로 산골로 깊숙이 들어가던 어느날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맴, 맴, 맴, 맴 매~ 앰~ 앰….’
어디선가 우리나라 매미랑 똑 같은 소리가 들렸다. 참매미 울음소리를 기억하는가? 울림이 어찌나 선명하고 명징한지 강렬한 정도를 넘어서 한참 듣다 보면 귀가 얼얼해질 정도로 느껴지던 그 소리…..미국 땅에서 비슷한 매미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그렇게 똑 같은 소리는 첨이어서 그런지 여간 반갑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매미는 그저 ‘늦여름 곤충’일지 모르지만 내겐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키 워드(Key Word)’ 로 자리잡은지 오래이다.
갑자생인 아버지는 스무살 되던 해, 일제 징병1기로 차출되어 일본에 끌려갔으며 이후 해방을 맞았건만 좌익 우익이 나눠지고 이어 남과 북으로 분단되는 것을 겪었다. 한국 동란 6.25에, 4. 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까지 한국의 근대사를 이처럼 험난하게 겪은 세대가 또 있을까? 그래서 그랬는지 아버지는 ‘묻지마라 갑자생’ 이라는 단어만큼 당신이 겪은 고통과 살아온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단어는 없다고 하셨다.
히로시마에서 살아나온 8월 6일, 광복절인 8.15, 팔월의 당신 생일날 술이 한잔이라도 들어가기라도 할라치면 우리 모두는 어려운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일본인들의 핍박과 만행에 대한 것들로 못이 박히도록 같은 이야기를 해마다 들어야만 했다. 그 일화 중에 하나가 ‘매미가 될 수 없었던’ 슬픈 이야기..
아버지 바로 아래로 일본인 일등병 넷이 들어왔는데 ‘아버지가 조선사람’ 이라는 이유로 명령에 불복하는 일이 번복되자 운동장을 뛰도록 하는 기합을 주었는데 그것을 고깝게 여긴 그들이 일본인 상관에게 일러 바치는 일이 생겼다. 조선사람이 감히 일본인을 벌 줬다는 이유로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팬티만 입고 내무반 기둥에 붙어서 ‘매미처럼 울어대라’는 말에 ‘군인으로서, 무엇보다 기개있는 조선사람으로서 그런 야만스러운 체벌은 죽어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변하자 단체로 무차별 폭행을 가한, 당시의 분함을 잊지 못하고 계셨다. 그래서 그런지 ‘매미’는 여름의 상징으로 언제나 반가운 소리이면서도 일본군인의 폭력에 고초를 겪은 아버지에 대한 안쓰러움이 범벅 되어 다가오곤 했다.
차를 한 켠에 세웠다. 소리를 따라 무성한 옥수수 밭을 지나고 나니 인적(人跡)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넓디 넓은 공원묘지가 나왔다. 아름드리 큰 거목이 그 한 가운데에 있었는데 분명 소리는 그 쪽에서 나고 있어서 나무에게 다가갔다. 매미의 허물들이 수도 없이 기둥의 표피며 잎들의 뒷면에 붙어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기력을 잃은 매미와 개미들에 의해 마모(磨耗)되어 가고 있는 매미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사람의 인기척을 감지해서였는지 소리가 뚝 끊겼다. 숨을 죽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경쟁하듯 ‘그야말로 고막이 터지도록’ 맹렬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한 녀석이 유별나게 소리가 컸는데 내 머리 위 높지 않은 곳에 있는 게 보였다. 매미를 그렇게 가까이 본적이 없었던 나는 배 주름을 아코디언처럼 폈다가 오므렸다 하는 발성의 모습이 여간 신기하지 않아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매미(Cicada)’. 매밋과를 총칭하는 말로 두 날개를 가진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길이의 곤충. 유충이 땅 속에서 나무의 수액을 먹으며 대략 7년여 정도 있다가 7, 8월 경에 지상으로 올라온 뒤 번데기 과정이 없이 탈피하여 성충이 되고 열흘 남짓 살다 죽는다는 곤충. 우렁찬 소리를 내는 발성기관을 가진 숫매미가 짝짓기를 위해서 암매미를 부르는 소리로 교미 후엔 나무 표피아래 알을 낳은 뒤 죽는 한살이 곤충으로 잘 알려져 있다.
▲ 왼쪽 사진에서 오른쪽 매미가 그 나무에서 제일 큰 소리로 울어대던 숫매미이고 그 소리에 반해 구애를 받아들인 왼쪽의 암매미. 얼결에 '매미의 신혼방'을 훔쳐본 꼴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암매미를 부르기로서니 ‘사랑의 세레나데’ 가 저렇게까지 클 필요가 있나, 암매미들은 청각기관이 다 도태되었나 하는 우스꽝스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날라 온 녀석이 숫매미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가는 게 아닌가? 난생 처음 맞닥뜨린 짝짓기 광경이라 순간 놓칠새라 ‘동영상으로 찍어야 하나’ 싶은 시망스런 생각도 스쳤지만 아무리 곤충이라 해도 눈 부릅뜨고 지켜보기엔 민망스러웠다.
▲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속에 있는 매미
이런 ‘심포니 연주’를 언제 듣겠나 싶어 아예 누웠다. 얼추 한 시간 정도 끝났는가 싶으면 다른 나무에서 울고 서로 주거니 받는 방식이 마치 ‘나는 가수다’ 를 ‘생방송’으로 보는 듯 싶었다. 육중하고 중후한 ’파파로티 같은 바리톤’이 있는가 하면 화려한 ‘플라시도 도밍고 같은 테너’도 있었고 묵직한 ‘알토’도 있었으며 개중엔 ‘성별이 의심되는 따가운 고음의 소프라노’도 있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관객들이 하나같이 땅 속에 누워 있으니 관중의 한 사람으로 그 예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할 정도였다.
풀벌레 소리들과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어우러지던 기교 없는 소리로 지휘자 없이 저렇게 화음을 만들어내는 일이 감히 어느 오케스트라와 비교 할 수 있을까. 링컨 센터 공연장에서 팔리는 최고의 좌석이 250 불 정도인데 나는 두 팔을 베개 삼아 괴고서는 하늘을 마주하고 드러누워서 공짜로 마냥 듣는 것이 여간 행복감을 주지 않았다.
팔월 참 좋은 달이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서 광복절이 있는 8월, 그리고 나라를 뺏긴 수치스러운 국치일도 있는 8월. 어느 해 보다도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여기저기 뒤적이다가 역사에 대해 이처럼 명쾌하게 기술하는 문구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바로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혀 바로 알게 할 것이다. ‘
사학자로, 민족주의자로 독립운동가 이셨던 단재 신채호 선생님(丹齋 申采浩, 1880-1936)의 말씀이다.
외국에서 살면서 ‘애국’이란 단어를 동포사회에서 자주 접한다. 쉽게 거침없이 쓰지만 ‘행동하지 않는 양심’ 처럼 ‘실천 없는 애국’은 그저 말 장난일 뿐. ‘나 혼자 해봐야 무슨 도움이 되겠나’ 내지는 ‘내가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라는 자조적인 말이 아닌 ‘나부터 내지는 나 만이라도’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실천할 때 비로소 민족과 나라를 지키는 힘이 현실적인 에너지가 되어 애국이 되는게 아닐까?
나이가 쉰 줄에 접어들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 으로 살아야 하거늘 이제서야 ‘매미며 풀벌레 소리’가 귀에 들리니 나이만 헛먹은 ‘견마지치(犬馬之齒)’가 따로 없다. 이래저래 부끄러움이 많은 팔월을 보낸다.
▲ 제목/ Face Croquis 종이에 수채. 2009. '지난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민족과 나라에게 미래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 8월에 눈을 똑바로 부릅뜬 여성의 눈을 통해서 전하고 싶다.
김치김 kimchikimny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