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롱스에서 맨해튼으로 향하는 D 라인의 지하철 안. 20대 청년 셋이 내 옆으로 건너편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주 앉아서 가다보니 눈도 마주치게 되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도 자연스레 듣게 되었다.
에스빠뇰(스페인 및 중남미에서 쓰는 공용어)로 키득대는 것으로 보아 남미에서 온지 얼마 안된듯 싶었다. 그들의 화제가 '타투'라는 확신이 든 것은 모두 민소매에 드러난 팔뚝이며 어깨, 목, 귀 뒤, 손등, 가슴팍, 심지어는 손가락까지 문신(文身)을 하고 있었기때문이었다.
▲ 세 청년 전부 문신으로 맺어진 친한 친구들인듯.
온 몸을 도배하다시피 한 것으로 보아 족히 수천달러는 들였음직 해 보였다. 대부분의 라티노들이 3D 업종에 종사하고 있으며 급여가 그리 넉넉치 않은것을 알기에 '왜, 저토록 고생해서 번 돈을 온 몸에 문신으로 발랐을까' 하는 생각에 눈을 쉽게 떼지 못하였다. 껌딱지처럼 붙은 내 시선이 '문신을 하고 싶어하는 부러움'의 눈길로 보였는지 팔들을 쭉 뻗어가며 구경(?) 까지 시켜 주는게 아닌가?
▲ 어깨에 새겨진 얼굴 표정이 잘 살아있는 타투
졸지에 3명이 돌아가면서 목, 어깨, 팔, 손등에 까지 있는 문신들을 보여주었다.
“와, 정말 많이도 했네요!”
“멋지죠? 제가 좋아하는 멕시코 배우예요.”
어쩌면 그들은 내게서 브라보(Bravo!)나 아주 폼난다는 뜻의 '무이 보니또(Mui Bonito!)를 기대했는지 모르나 내가 더 거들수 있는 말은 ‘재미있네요가 전부였다.
그들중 하나가 내 관심에 크게 고무되었는지 “벗어서 보여줘 봐!” 라고 소리쳤다. “아니, 됐어요. 여기까지만!” 했지만 이것도 봐야 한다며 뭉그적대는 청년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벌떡 일어서 겉옷을 벗는듯 싶더니 이내 윗통을 벗어 제꼈다. 지하철 안에 적지않은 승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시선들이 그 청년과 내게 꽂혔다.
“아니, 아니 괜챦아요. 그만하면 충분해요.” 황급히 놀란 내가 두 손을 저으며 만류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가시관을 쓴 예수상과 대조적으로 등에는 커다란 무엇이 새겨져 있었다. 용인지, 전설속의 이무기인지, 그것도 아니면 도룡뇽인지 찰나의 상황에 보지는 못했지만 아주 큼지막한 동물 문신이 있었다.
여차하면, 허리 아래 문신도 보여줄 양으로 바지도 서슴없이 내릴 기세인지라 " 됐어요. 어서 입어요" 라며 상황을 수습했다. 타투를 한 이들 대부분이 남에게 보여주는것을 좋아하고 사진을 찍는데에도 무척 우호적인것은 알았지만 자청해서 등까지 돌려주며 기념 사진을 찍으라고 해줄때는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웠다 .
이어서 어디서 했으며, 그림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격이며, 걸린 시간, 문신을 새긴 사람의 이름까지 10년 전, 5년 전, 3년 전, 1년 전, 최근에 한것까지 일일이 짚어가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나 정작 내눈엔 도배(塗褙)라도 해 나가듯 팔이며 가슴팍이며 등 판 여기저기 마치 인물화 및 정물화를 마구잡이로 섞어 놓은 모양새였다. 멕시코 출신이라는 그들은 '마야와 잉카의 후예' 라는 사실에 긍지가 대단했으며 돈을 버는 족족 어디에 어떤 문양을 더 추가로 새겨 넣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덕분에 지루할 수 도 있었던 1시간여의 지하철 안에서의 시간이 10분처럼 짧게 지났다.
▲ 얼굴에는 피어싱을, 몸에는 문신으로 가득.
▲ Made in Argentina. 아르헨티나 사람이 한 문신으로 ‘아르헨티나 산(産)’
타투(Tattoo) 즉, 문신은 바늘로 찌른다음 그 안을 먹물이나 잉크 등으로 착색을 하여 영구적으로 새기는 것으로 오래전에는 아프리카에서 부족간의 구분, 신분의 분류, 맹세나 상징을 하는 의미로 부호 및 기호들을 쓰기도 하고 문자나 그림을 새겨 넣어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지금은 '멋이나 유행'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패션 타투(Fashion Tattoo) 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예전엔 단색으로 팔이나 어깨, 팔뚝에 주로 했다면 지금은 다양하고 화려한 색채를 쓰면서 온 몸 심지어는 아주 은밀한 부분에도 문신을 새겨 넣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전처럼 상징이나 이름의 앞 철자 정도 새기는 정도를 넘어서 거의 '그림'내지는 '사진' 수준으로 보일만큼 정교함이나 기교면에서는 놀라운 발전을 했다.
▲ 고향인 ‘브롱스’ 사랑하기 때문에 타투로 새기는 것은 좋은데 어째 이미지가 섬뜩하다.
▲ 20대의 아리따운 아가씨지만 양 다리 전체는 마치 화려한 색깔로 치장한 낙서장 같은 느낌이다.
우리나라에도 문신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기억속에 처음 접했던 문신은 뉴스에 나오던 소위 말하는 조직 폭력배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석 그런지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온몸을 뒤 덮은 문신을 보면 나도 모르게 은근히 몸에 한기(寒氣)를 느끼곤 했다.
최근 10년 사이에 너도나도 문신을 유행처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타투가 제일 많이 보이는 도시가 바로 뉴욕 맨해튼이고 그중에서도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는 거의 타투의 메카쯤에 해당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마릴린 몬로의 타투(왼쪽) 만화의 주인공도 타투의 단골 메뉴
▲ '타투 덕분에 이제 어떤 목걸이도 필요치 않다' 는 '레베카' 씨는 왼쪽 어깨에 삼촌(George)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 아버지도 대통령도 아닌 삼촌의 얼굴이라 해서 연유를 묻자 "아주 특별한 의미의 가족이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문신을 했다고 한다.
한 패션 한다는 맨해튼이다 보니 너도 나도 경쟁하듯 타투 패션도 치열하다. 여름도 되기전부터 민소매 차림으로 다니고, 아예 상의를 속옷 하나로 버티는 사람들까지 있다보니 원하든 원치 않든 수많은 타투를 보고 살 수 밖에 없다.
축구스타 ‘데이빗 베컴(David Beckham)’ 은 상체 앞뒤를 빈틈없이 문신으로 채웠다. 자신의 별명부터 시작해서 세 아들의 이름, 새며 꽃이며 이것저것 섞어 놓은 그의 몸을 두고 어떤 이들은 섹시하다고 할만큼 예전의 문신과는 현격하게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여성 연예인으로는 브래드 피트와 사귀면서 옛 애인의 이름을 지운, 그러나 아직도 잉크 흔적이 남은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 가 있고 등판에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차원에서 '오바마(Obama)'라는 이름을 새겨 넣은 ‘마돈나(Madonna)가 있다. 위에 언급한 세 사람 모두가 미국 아니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유명인들이다 보니 따라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 죄와 벌을 같이 새긴것일까? 한문의 뜻을 모르고 쓰는 이도 수두룩이고 철자도 틀린 것도 부지기수.
내가 그림 그리러 다니는 여러 장소에서 만나는 누드크로키 모델들 중에도 크고 작은 차이만 있을 뿐, 예외는 없다. 개인적 취미라면 말릴 수야 없겠지만 그 몸으로 누드 모델을 하겠다고 오는 이들을 보면 그날은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는 날이다.
문신에 대한 편견때문만은 아니다. 문신으로 도배를 한 모델을 보는 순간 자연의 모습을 거부한, 아니 훼손했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반감이 일고 인체의 선이 보이는 대신 문신의 모양과 색이 눈만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 바코드를 문신으로 한 사람을 이제껏 두명 보았다. 한 백인 아가씨는 목 뒤에, 이 청년은 손목 안쪽에 했는데 세월이 흘러서 바코드가 흐려져 버렸다. 이런 바코드는 찍어도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을텐데~
▲ 물고기를 특히나 좋아해서 새겼다는 물고기 잉어 문신.
문신을 하려는 이들은 스스로 다짐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평생을, 아니 영원히 변치않을 사랑을 자신하는지 아니 확신하는지 스스로 거듭 물어야 하고 노화(老化)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추해지고 흉해지는 모습조차도 불만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따져 봐야 한다.
사람이 살면서 기억하고 추억해야 할 것도 많은 반면 때로는 잊혀져야 하고 잊혀지는것이 바람직한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한 때는 그 맹세가 변하지 않고, 영원토록 갈 것 같아서, 과감하게 문신들을 하지만 삶이 어디 그렇던가? 피부가 늘 새로 만들어지고 죽는것과 마찬가지로 늘 부대끼고 변하는 것이 삶이고 일상인 것을.....
▲ 문신 해 넣은지 10년이 넘으면 이렇듯 희미해지고 흐릿해져서 지저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 붉은 인쇄를 한것 같은 흐릿한 생선가시 문신이다. 왜, 하필 이것이냐 물으니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사람의 입맛이란게 변하기 마련인데 나중에 생선이 싫어지면 어쩌려나. 문신을 하는 이들 중에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즉흥적으로 재미로 장난치듯이 아무것이나 생각나는대로 새겨넣는 이들도 꽤 많은것 같다.
그래도 그것은 그때 일이라고 묻고 싶지 않다면 적어도 이것은 알아야 한다. 타투를 지우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비용과 피나는(!) 노력과 시술을 거듭해야만 하는데 아무리 잘 해도 예전의 피부로는 돌아갈 수 없는 ‘피부의 주홍글씨’가 바로 문신이라는 점이다.
문신이 멋있다며 하는 분들, 귀엽게 봐줄 패션 정도를 넘어 동서양화 및 인물과 정물 풍경까지 섞어버리는 욕구로 충만한 이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중요한 이름과 잊으면 안되는 이름은 종이에, 수첩에 하자. 그게 내키지 않으면 스마트 폰에 입력을 하거나 컴퓨터에 하면 어떨지. 이 세상에 메모를 남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료가 넘치는 세상에 굳이 몸에 새겨 넣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 이제껏 본 문신 중에서 가장 간단하면서 슬픈 눈물 한방울.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것이 그냥 단순한 슬픔의 뜻이 아니라 일종의 갱 조직의 징표라고도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 문신을 하는 이들의 공통점이 ‘아름다운 것보다도 무서운 것’들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특히 ‘해골’이 가장 인기가 많다.

▲ 왼쪽어깨의 꽃모양 문신은 자세히 보니 해골.
문신, 절대 멋으로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화장처럼 간단하게 그날의 기분에 따라 고칠 수 있는것도 아니고 지우개처럼 지울 수도 없을 뿐더러 페인트처럼 덮어 씌운다고 사라지는것이 아니다.
▲ 젊은 일본여성의 팔에 새겨진 문신이 무척 선명하다. 얼핏 꽃으로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칼이 붉은 꽃잎을 관통하는 문신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형상’이다. 그 아래엔 권총까지..... 하고 많은 문양중에서 칼이나 총 무기를, 그리고 섬뜩한 핏빛을 그려 넣는 것은 왜일까? 무서운 것들로 자신을 지키고 싶다는 욕구로 해석해야 하나?
▲ ‘HEBA’ 라는 애인의 이름을 팔뚝에 새겨 넣은 남자. 사랑의 맹세를 꼭 피부에 해야 할까? 나중에 애인이 바뀌거나 본인의 마음이 바뀌면 어쩔려고? 언젠가 미드타운 헬스클럽에서 만난 남자 팔뚝에 크게 새겨진 ‘김0경’ 이라는 또렷한 한글 이름. 너무 신기해서 누구냐 물으니 ‘고무신 거꾸로 신은 애인 이름' 이라고 했다. 불편하거나 신경쓰이지 않느냐고 물으니 “너무 크고 진해서 5번은 해야 없어진다는데 비싸서 포기했다. 같은 이름의 애인을 만나면 되지 않겠느냐?”며 싱거운 그러나 씁쓸한 대답만 돌아왔다.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추억도 좋지만 때론 망각도 필요하다. 때가 되면 잊어주고 잊혀져야 하고 할 일 들이 많기 때문이다.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사람의 신체, 터럭, 살갗은 부모로 부터 받은 것이니 손상시키지 말고 온전하게 보존해야 한다)’라는 유교의 덕목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영원히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것이 있거든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여 가슴 속 그리고 머릿속 기억장치의 힘을 빌면 어떨지? 피부가 아닌 마음에 오롯이 새기는 것, 그것이 진정 가치있는 아름다운 문신이 아닐까?
▲ ‘에스텔(Estelle)’ 이라는 딸래미의 이름을 새긴 엄마는 타투가 무척 맘에 든다며 기쁘게 포즈를 취했다.
올 가을은 유난스레 더욱 반갑다. 길고 무더운 여름을 지나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좋고, 서늘한 기운이 머리를 차갑게 해줘서 고맙다. 여기에 하나 보태면 이제부턴 긴 팔 옷과 긴 바지 옷을 찾아 입어야 하는 '가려서 차라리 아름다운 문신'을 적어도 내년 여름이 올 때까지는 보지 않아도 될테니 말이다.
▲ 제목 Portrait Croquis 종이에 물감 2009 설명/ 귀걸이도 몸의 문신도 개인의 취향이고 멋이겠지만 모델만큼은 자연인이었으면 좋겠다. 문신으로 몸을 도배하기 앞서 자신의 몸이 정녕 자신만의 것인지 그 '생명을 넣어 작품을 빚어준' 작가인 부모와 적어도 상의는 해 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