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가 잘못되었음이 분명했다. 불과 몇시간전 입소 할 때 기대와 긴장이 사뭇 교차되던 모습의 엄마는 온데간데 없고 굳어버린 얼굴의 '노인(老人)'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발 좀 봐 봐. 어디가 어떻게 차겁고 시려워?' 발가락 모두가 얼음처럼 느껴진다던 엄마의 발은 오히려 내 손이 가 닿은 것이 미안할 정도로 따뜻했지만 당신은 정작 내 손이 차가운지 따뜻한지조차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엔 경황(驚惶)이 없어 보이지 않던 방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4개의 침대, 옷장과 사물함들, TV, 미닫이로 된 화장실과 커다란 창문이 보였다.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젊은 분, 방을 드나드는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에만 빠져있는 파킨슨 환자 분 그리고 누워서 허공만을 멍~하니 바라본 채 주기적으로 외마디 소리를 내는 분이 눈에 들어왔다.
가족과 떨어진 고립감과 박탈감이 얼음장처럼 만든 것은 아니었을지, 어쩌면 자식들에 대한 배반감이 몸을 오그라들게 하고 무감각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지, 의식없이 누워있는 분에게서 미래의 당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절망케 한 것은 아니었을까 미루어 짐작해보게 했다. “노인들의 자살이 이해가 간다”라며 내뱉듯이 던지는 혼잣말을 들으려니 심장이 쿵 내려 앉는 것만 같았다.
불안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엄마를 말없이 끌어 안았다. 아무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속으로 오열(嗚咽)하고 있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우리가 잘못했어.....’
언제부터인가 의식적으로 화제에 올리기 시작한 단어 '요양원(療養院)'.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해서 앞으로는 아이도 적게 낳고 혼자 사는 독립세대가 많아진 만큼 나이가 들면 누구라도 시설을 이용할 수 밖에 없지 않겠냐며 자연스럽게 대화 속에 접목시키곤 했다. '자식도 가까이 있을때 보다 멀리 떨어지면 더 잘하게 되는법 아닐까' 라며 우회적으로 돌리기도 했고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던데 그게 다 사람 사는 인지상정(人之常情)아닐까 라며 반응을 살피기도 하였다.
요양원 한 곳으로 식구들의 의견이 모아졌을때 직접 둘러보시는 게 중요하겠다 싶어 봄에 방문을 했다. 마침 ‘다함께 노래부르기’ 시간이었는지 어디선가 합창소리가 들렸다. 평소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 취향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멀찌감치 보인 가지런히 놓인 꽃 화분들과 삶은 빨래들이 햇볕에 나부끼는 풍경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는지 그날 방문이 마음을 굳히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주었다.
보행이 자유롭고 밝은 모습들의 할머니들이 보였는데 ‘몇 명이 있는지, 나이대는 어떤지’ 등을 슬며시 물어보라며 관심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서 말동무가 생길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음이 읽혀지기도 했다. 덕분에 ‘요양원’ 입소에 대해서 자식들 누구하나 마음 다치지 않고 순조롭게 일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입실을 하고 맞닥뜨린 현실에서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실망한 모습이 역력했다. 입실 당일 실무자로 부터 그곳에 대한 간단한 안내라도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컸다. 1에서 10까지의 절차가 대부분 보호자와 이루어졌고 당사자는 제외되었다보니 인지가 있는 입장에서는 놀랍고 당황되지 않았을까. 찰나였지만 ‘차라리 치매였더라면..... 이 모든 과정들을 모르고 덜 힘들었을텐데~ ’라는 천벌을 받고도 남을 불충한 생각마저 스쳤다.
솔직히 말해서, 이 세상에 집보다 안락한 곳이 어디 있으며 혈육만큼 이물 없고 편한 관계가 또 있을까. 아무리 시설이 훌륭하다 한들 어찌 집과 비교 될 수 있으며 자식들로부터 받는 섬김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단점들을 애써 부각시키지 못했던(않았던) 것은 행여, 어렵사리 내린 결정이 번복될까봐 두려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들네와 살아야한다는 당위성을 빨리 벗어날수록 마음의 생채기도 덜 할 것 같아 마치 세뇌(洗腦)시키듯이 좋은 점만을 주구장창 읊어댄 나는 자식이전에 ‘입만 살아있는 전형적인 사기꾼’의 모습은 아니었을지.
감각이 돌아올 때 까지 발을 주무르고 또 주물렀다. 무척이나 놀랬을 마음을 아이 달래듯이 다독이면서 당신이 보고 느끼는대로 시설의 한계와 불편한 점들 또한 적지 않다고 짚어내렸다. 당신이 맞닥뜨린 급 실망스럽던 상황은 ‘방금 전학을 온 학생의 입장’으로 비유하여 설명드리니 발도 녹고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음이 보였다.
휠체어를 밀고 이방 저방을 돌며 인사를 나누시도록 했다. 서로 얼굴을 익히자는 뜻도 있었지만 그곳의 상황을 전반적으로 가감없이 둘러봐야 할 필요성이 느껴져서 였다. 연배가 높은 분들에게는 ‘처음 뵙겠습니다’ 라는 말로 손 아래인 분들에게는 ‘띠동갑 아우님 되시네요’라며 인사를 건넸고 누워있는 분들에게는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힘든 그 마음 내가 누구보다 잘안다’ 라며 손을 맞잡아 주는 분 앞에서는 눈빛이 흔들리기도 했다.
건물을 나서려는데 한 요양보호사가 따라나오며 “걱정마세요. 처음엔 다 그러세요. 짧게는 1, 2 주, 길게는 두서너달 걸리는 분도 있어요. 적응을 하시기 위해서는 면회나 외출 외박은 좀 자제해주시는 것이 도움이 될거예요”라며 위로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했다. 베어가도 모를 정도로 아픈 칼바람을 맞으며 온 몸이 얼어가도록 정처없이 걷던 그 밤은 대학입시 발표날 이후로 맞은 가장 춥고 견디기 힘든 밤이었다. 최소한의 자존감과 자존심을 지키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못되지만 최고의 차선책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이 있음에도 섬기지 못하고 시설에 왔다는 자책감과 죄책감은 덜어지지 않았다.
염려어린 조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했다. 어느날은 오전 오후 두번씩 면회를 했고 추운 날 일 망정 휠체어로 산책도 나가서 최대한 이해의 간격을 좁힐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때로는 면회가 아닌 자원봉사자로 청소를 하면서 멀찌감치 어울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위안을 삼기도 했지만 그것은 허울일뿐, 덜어지지 않는 죄스러움을 조금이나마 노동으로 상쇄시켜 보려는 얄팍한 계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 스스로 적응해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고 생각도 점차 바뀌어갔다. 어느날은 ‘사범학교 때의 기숙사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며 말이 통하는 동갑내기들이 생긴것을 즐거워 하셨다. 유치원에 들어간 아이가 엄마 손을 놓고도 울지 않는 때는 같이 놀 친구가 생겼을 때 라고 했던가. 마음이 조금씩 놓이면서 이제 뉴욕 집으로 돌아가도 좋겠다는 확신이 섰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서울 지방 할것없이 ‘요양원’과 ‘요양 병원’의 숫자가 늘고 있음이 확연하게 보였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늘겠지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묘한 느낌도 들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족이란 개념 안에는 조부모가 있었다. 하지만 부부중심의 가족구조가 늘어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가정은 손꼽는 정도가 되어 가고 있으며 주택가나 상가 할것 없이 들어서는 요양원 간판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황금알을 낳는 고소득 업종’으로 소리소문 없이 자리가 잡혔는지 기원이 있고 당구장이 있는 층에도 들어서고 단란주점과 캬바레가 딸린 건물 안에서도 어렵지 않게 보였으며 심지어는 숙박업소를 부분 개조해서 만든 곳도 꽤 된다는 말까지 들었다.
늘어나는 숫자만큼 규모도 커지고 전문화되고 있음도 알수 있었지만 막상 가보면 덩치만 크고 화려했지 알맹이가 없는 부실한 곳도 보이고, 선전과 안내는 번지르르 했으나 상담을 받아보면 실망스러운 곳도 있었다. 어둡고 좁아보이는 곳들도 생각외로 많았고 환기(換氣)조차 잘 안되어 냄새 나는 곳도 적지 않았다. 건너건너 들은바에 의하면 함부로 대하거나 강압적인 분위기로 수용시설을 방불케 하는 곳도 있다하니 마침한 곳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요원하게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좋아 보이고 마음이 가는 곳, 호감이 가는 곳들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상위 1%나 해당될 법한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곳도 있었으며 모든 조건이나 환경은 좋으나 대기수가 많아 실질적으로 이용에는 한계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연세가 많은 어른이 있는 집이라면 알게 모르게 한번쯤 고민해보고 겪게 되는 ‘고령의 부모에 대한 거취’는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 할 수 없는 게 각기 다른 형태와 무게의 고민이 있고 각 가정마다 처한 상황과 곡절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족일지라도 직접 모시지 않는 입장에서 누가 누구를 책망할수도, 원망할 수도 없으며 힐난 할 수는 더더욱 없는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 정서에는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맡긴다는 생각 자체 만으로도 불효(不孝)이며 감내하기 쉽지 않은 일이고 일련의 과정들이 어찌보면 상(喪)을 당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고 심적 고통이 따르는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것 같다.
몇 년간 주변에 소문내며 찾다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발품을 최대한 파는 일이 그나마 실수를 줄이고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인터넷 상의 정보나 후기를 100%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주변의 말, 소문, 평판에 참고는 하되 전적으로 의지해서도 안된다는 것은 단언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상담을 하러 온 사람들에게 속속들이 내부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여러번에 걸쳐서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가보고 혼자만이 아닌 여러 사람의 눈을 빌리는 것이 판단에 도움이 되며 패쇄적이거나 보호자 방문이나 면회에 까다롭거나 사전약속을 요구하는 곳은 경계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시설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도 더 따져봐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분위기’이다. 책임자는 물론이거니와 요양보호사와 간호조무사 나아가 공익이나 자원봉사자들까지의 분위기도 읽어낼 수 있다면 도움이 된다. 운영방침은 무엇인지, 어떻게 대하는지, 말이나 행동 나아가 표정까지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족과 같은 존재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받는 입장이어서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간과해서는 안되는 어쩌면 제일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여겨지기 때문이다. 웃는 얼굴의 환한 표정의 직원들이 많은 곳은 그곳에 사는 분들도 웃으며 지낼수 있다는 ‘바로미터’라고 봐도 무리는 아닐것 같다.
좋은 요양원을 고를때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이냐고 한마디로 묻는다면 이런 말은 자신있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부모가 들어가서 지낼 곳을 찾질랑 말고 ‘내가 들어가서 살고 싶은 곳’을 찾으라고 말이다.
백세시대는 차치하더라도 한국은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노인문제(老人問題)나 복지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가깝고 심각하게 와 있다고 느껴진다. 이미 각 가정의 한계를 넘어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만큼 다함께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단언하건대 절대적으로 노인의 문제는 늘어나는 요양원의 숫자로는 해결될 수 없다. 가능하다면 시설의 문제와 더불어 돌보는 이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대할 수 있도록 처우가 개선되어지고 '존엄(尊嚴) 케어'가 가능할 수 있도록 그에 걸맞는 교육과 노인을 대하는 인식이 바뀌고 사명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군으로 자리 잡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노인은 내일 모레 닥칠 바로 내 모습이고 우리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것을 스스로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밝은 목소리의 엄마로부터 잘 도착했냐는 전화를 받았다. ‘그간 잠도 못잤을 것 아니냐. 이제는 엄마 걱정 그만하고 잠 좀 푹 자라’는 말을 듣자니 나도 모르게 죄어진 긴장의 끈이 풀리면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내리 대엿새를 자고났더니만 2015년 양의 해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맑은 정신으로 새로 넘어온 을미년(乙未年)을 제대로 맞을 일만 남았다.
▲ 제목 A Figure Croquis. 2010. 재활용 엽서 뒷면에 연필. 설명/ 노쇠해가면서 각각 다른 이름의 병명을 얻는다. 노인이 될수록 돈이 있어야 한다고 즉, 돈이 힘이라고들 믿고 있다. 하지만 노화가 진행될수록 놓치지 말아야 할것이 있다. 삶이 지속되는한 끝까지 잡고 가야 할 것은 돈의 힘이 아니라 바로 ‘다리 힘’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삶의 질적인 가치면에 있어서 걷는다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고 값어치 있는것이 또 있을까? 힘있는 두 다리를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장수는 따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 제목/ Hand Croquis. 2008. 재활용 종이에 연필. 설명/노인이 되는것 보다 더욱 힘든것은 노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손 크로키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것......손짓으로 불러 주고, 힘들고 어려울땐 서로 토닥여주고, 슬프고 아플땐 감싸주고...... Emotional Security, Comfort, helping.....e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