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전문점에는 주문을 기다리는 긴 줄이 입구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내 바로 뒤로 까르륵 거리며 들어오던 한 떼의 이십대
여성들이 줄을 섰다. 북적이는 이들로 상당히 소란스러운 곳이었음에도 한 여성의 유달리 튀는 흥분한 고음으로 해서 내 순서가 닿을때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10여 분 간 등뒤로 듣게 되었다.
대충 짜집기 해서 들으니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 관한 내용들로 왕수다를 이어가고 있었다. 누구누구를 두고 하는 말들인지
자세한 정황(情況)은 알 수 없었지만 선출된 결과에 대해 하나같이 용납하기 힘들다는 것이었고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또래의 여성들이다 보니 같은 관심사라 부러움과 찬사(讚辭) 질시(嫉視)도 섞이면서 공통의 화제인 미스아메리카로 뽑힌
여성에게 모아졌다. 안타깝게도 인도계라는 사실 하나가 비아냥거리의 중심에 있었는데 인도를 여행했던 이야기며 기내에서 ‘커리(Curry)’ 냄새를
풍기던 승객에 관한 경험담을 떠들면서 시종일관 까르륵 거리며 배를 쥐어잡고 웃어댔다.
하지만, 수다의 가장 밑바닥에는 인도인들로부터 당한 황당했거나 불결했던 나아가 짜증났던 경험들의 토론장처럼 인종적
편견(偏見)과 차별(差別)이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선발대회를 직접 보지 않았던 장면이라 '대체 어떤 여성이길래 이렇게 말들이
많을까' 싶어 관심을 가지고 뉴스 및 방송 그에 따른 댓글등을 둘러 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회가 끝난 뒤로 뒷말들이 무성하였다. 주로 여성들이 주로 시청을 하는 시간대나 연예계 소식을 다루는
가십거리와 관련된 방송 혹은 라디오 할 것 없이 선발대회에 관해서 풍성한 화제들이 이어졌다. 선천적으로 한 팔이 없는 장애를 가졌음에도 당당하게
뽑혀서 본선에 나온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전력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와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현재 직업군인이면서 대회에 출전했던 후보에 대해서는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또한, 사진기자나 방송 카메라에 잡히는 후보들의 크고 작은 ‘문신’들에 관해서도 세간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는
것이 목격되었다.
인도계 여성이 미스 아메리카로 뽑힌것 그리고 최종 본선에 오른 5명 가운데 아시아계가 3명씩이나 들어 있는 점은
유례(類例) 없던 일이라서 충분히 큰 뉴스가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 저변(低邊)에는 미의 기준이 ‘금발의 백인여성이 미인’이라는 정형화 된
사회 분위기와 잣대 속에서 탈피하지 못한 한계를 반영하고 있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긍정적인 이야기보다는 부정적이고 다분히 지역적 인종적 차별성 발언들이 난무(亂舞)하는 것이고 이는 다민족과
다인종으로 구성된 미국 속에 잔재하고 있는 유색인종에 대한 ‘묻지마’ 식 반감을 대변하는것 같아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도대체 그 얼굴과 몸매로 어떻게 뽑히느냐’ 는 개인 신상부터 시작해서 ‘911 추모가 지난지 며칠도 안된 싯점에
(중동계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그쪽 분위기가 물씬 나는 사람을 뽑을 수 있는가’ ‘아랍인이 당선되었다’ 등등 인종 차별성 비아냥은 기본이고
대통령이 흑인이다보니 이젠 미스 아메리카조차 비슷한 사람을 뽑았다며 미의 상징과 본질이 훼손(毁損)된 양 입방아들을 찧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미스 아메리카(Miss America 2014)’라고 부르지 않고 인디언 아메리칸(Miss Indian
American) 이라고 강조해서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인디언계’ 라는 수식어를 굳이 고집하는 그 배경에는 이 사회속에 만연한 피부색을
기준으로하는 인종적인 편견과 차별이 미인대회라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즈음 한국 가십거리 사이트에서는 인디언 아메리칸 이란 단어 때문에 재미난 소동도 있었다. ‘드디어 아메리칸
인디언(Indian American) 이 미인대회를 석권했군요’ ‘원주민이 뽑히다니. 놀랍네요’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다’ 등등 놀라운 반응
일색으로 뜨겁게 달구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한 사용자가 인디언 어메리칸을 원주민 표기인 '아메리칸 인디언(American Indian)'과
구분하지 못하고 잘못 표기한 결과로 생긴 작은 해프닝이었다.
하기사, ‘인디언 아메리칸’ 이란 단어와 ‘아메리칸 인디언’은 헷갈리고도 남을만큼 비슷하다. 순서만 바꿔져 있을뿐 똑같은
단어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 표기의 뜻은 엄청 다르다. ‘미스 인디언 아메리칸’은 인도에서 이민온 미국인을 일컫는 표현이고 ‘아메리칸 인디언’
은 아메리카 대륙에 살아온 이 땅의 원주민들을 가르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15세기의 컬럼버스는 자신이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믿었던 이 땅에 살던 원주민인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을 일러
‘인도인’들이라고 지칭하는 ‘돌이킬 수 없는 착각(錯覺)’을 했으며 이후 이들을 ‘인디언’이라고 부르면서 잘못된 표기가 시작되었다.
▲ 일반 미국의 도로와는 다른 나바호 네이션(Navajo
Nation) 자치지구에 들어가면 보게 되는 도로표지판.
미스 아메리카 대회가 열리기 바로 얼마전 ‘미스 아메리칸 인디언’ 선발대회가 현재 뉴멕시코 주와 애리조나 주에 걸친
자치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나바호 네이션(Navajo Nation) 에서 열렸다. 이 대회는 일주일 동안 열리는 북미 원주민 단합대회와 같은
성격의 행사로 미인 선발대회는 그 중의 하나에 해당이 된다. 공식 명칭은 ‘미스 나바호(Miss Navajo)’ 선발대회 였지만 원주민들은 미스
아메리칸 인디언 혹은 줄여서 미스 인디언 선발대회 라고 부르기도 했다.
▲ 황량하고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애리조나 주 나바호
네이션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바라본 풍경.
일주일 상관으로 열린 두 대회를 비교해 보았다. 미스 아메리카에 출전한 후보들은 3억이라는 인구가 있는 미국에서 50개
주에서 선발된 50명의 후보가 나왔다면 원주민 선발대회는 불과 십만이 넘는 한 부족의 인구 속에서 출전한 사람들로 최종 무대에는 8명이 올랐다.
▲ 그날따라 비가 오는 바람에 야외에서 열릴 행사가
취소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행사가 열릴 예정인 무대가 있는 곳으로 미인선발대회를 지켜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비록, 화려하고 근사한 곳은
아니었지만 원주민 모두가 함께 즐긴 시간이었다.
미스 아메리카대회가 도박으로 유명한 애틀랜틱 시티에서 거대하고 화려한 조명이 있는 컨벤션 홀에서 어마어마한 규모로 열린
반면 원주민 미인 선발대회는 낮에 가설 천막이 쳐진 작은 무대에서 조촐하고 소박하게 한시간 여만에 최종 심사 발표를 했다. 거기엔 물론, 화려한
조명도 실황중계도 없었다. 수상자가 받게 되는 상금과 부상 역시도 차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미스 아메리카는 기본적으로 수영복 심사를 통해 늘씬늘씬하고 육감적인 팔등신(八等身) 미인을 선출하는데 무게를 두는
자리였다면 아메리칸 인디언의 대회에서는 수영복이 아닌 전통 복장을 한 여성들이 몇날 며칠 그들이 가진 재주 외 지적인 면모를 가늠하여
경합(競合)을 벌이는 자리로 팔등신이 아닌 여덟가지 재주를 가진 팔방미인(八方美人)을 뽑는 대회라고 해야 맞겠다.
미인대회 출전하는 이들의 공공연한 비밀인 성형도 미스 아메리칸 인디언 대회에서는 눈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 없었다. 하물며
미인은 ‘화장발이고 치장발’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꾸미는데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이는 미스 아메리카와는 대조적으로 화장을 과연 했나 싶을정도로
거의 민낯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모습에 전통적인 복식이었다.
미스 아메리카에 출전하는 시력이 안좋은 후보는 렌즈를 끼지만 원주민들의 미인대회에는 안경을 낀 이들도 보였다. 미스
아메리카에 출전한 후보들은 한결같이 키가 크며 공장에서 찍어 나온 바비인형들처럼 똑같다 싶을 정도로 ‘쭉쭉빵빵’이 대부분이었지만 아메리칸 인디언
후보들은 각양각색이었다. 키가 큰이도 작은 이도 있었으며 마른체격이 있는가 하면 뚱뚱한 이도 있었다.
대부분의 미인대회에서 하는 인터뷰에는 ‘세계 평화를 위해 무엇을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는가’하는 다소 뜬구름 잡는 질문과
답이 오고가는 반면 이 대회에서는 ‘가사를 도와 빵을 만들 줄 아는 여자아이의 나이는 어느때가 적당하다고 보는가’라는 구체적이면서 실질적인
질문들이 오가는 것 또한 큰 차이로 다가왔다.
▲ 한사람씩 이름이 불리면 후보들이 한 명씩 무대 앞으로
나온다
이렇게 겉으로 보이는 대회 규모나 성격만을 놓고 본다면 비교라는 것 자체가 무색할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곳은 도심에서 치뤄진 화려하고 세계적인 행사였던 것에 반면 한곳은 작은 동네의 마을 잔치 쯤이라고도 말 할 수도 있었으니까.
▲ 대회가 끝나고 기다리고 있던 가족과 만나는 미스 나바호
중의 한명.
하지만 미스 아메리칸 인디언이 선출되는 과정은 여느 미인대회와는 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몇날 며칠 지켜본 심사 과정과
더불어서 발표장에서의 분위기는 말로 다하기 힘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 미스 나바호 후보중 한 명이 긴장을 많이 한탓인지 두
손을 맞잡고 있다. 보들 모두가 예외없이 한 치장이 있다면 원주민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나바호 부족의 터키석 장신구들
이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원주민 미인 선발대회는 1952년 이래 현재까지 자그만치 6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애리조나 주와 뉴멕시코의 건조한 지역에 있는 나바호 네이션은 미 원주민 부족중에서 현재까지 멸하지 않고 살아남은 가장 큰 원주민 자치지역으로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대명사 격으로 통하고 있으며 해마다 인디언 관련하여 많은 대회와 행사가 치뤄지고 있다.
▲ 사람들이 사인을 받거나 좀 더 가까이 미스 아메리칸
인디언 을 보기위해 무대 뒷편으로 모여들고 있다.
일주일간에 벌어지는 여러 행사를 위해 북미 대륙의 아메리칸 인디언 여러 부족들이 모이는 행사로 미인대회도 이즈음
치뤄진다. ‘미인대회는 이래야 한다’ 라는 공식에 길들여져 수영복 심사도 없는 게 무슨 미인대회냐, 외모도 수수하고 게다가 안경까지 낀 이를
최고미인 으로 어떻게 부르냐고 눈 흘길 수도 있지만 심사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런 의구심은 사라지며 미인을 생각하는 관점도 달라질 것으로
믿는다.
즉, 미스 아메리칸 인디언은 ‘팔등신’을 뽑는 자리가 아닌, 그들의 자랑이자 긍지가 될 건강한 ‘팔방미인’을 선출하는
자리이기때문이다.
▲ 2013~2014 미스 아메리칸 인디언(나바호) 에서
선발된 최고의 여성은 애리조나주 헌터포인트( Hunter’s Point, AZ)에서 온 24살의 나타샤 하디(Natasha Hardy) 양에게
돌아갔다.
한국의 가십거리 사이트에서 원주민이 선출되었냐고 벌어진 소동은 한바탕 웃음으로 싱겁게 끝났지만 두 대회를 비교해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시대가 열리면 미국에서 지역적인 인종적인 편견이나 차별없이 미인을 대할 수 있을런지......얼마가 지나야 미국에
‘미스 아메리카’ 외에도 ‘미스 아메리칸 인디언(나바호)’ 대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런지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경계없이
열려야 치장하지 않고 가공하지 않은 ‘미스 아메리칸 인디언’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것을 깨닫게 될런지....... !
▲ 제목 Beauty Pageant Figure. 종이에
먹물. 2013. 설명 / 미인을 가늠하는 기준이나 잣대에 피부색이 문제가 되거나 걸림돌이 되는 일은 하루빨리 없어졌으면...... 뭐니뭐니
해도 미인을 만들어주는 최고의 덕목은 건강함이 아닐런지!
kimchikimny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