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손으로는 날 달걀 하나를 가볍게 쥐고 오른손에는 바늘을 집어 들었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점과 같은 크기의 작은 구멍을 뚫기 위해서 여러 차례 같은 동작을 반복하지만 날달걀에 구멍뚫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것도 그냥 구멍이 아닌 말 그대로 ‘바늘구멍’을 뚫기란 정말 어렵다.
강도(强度)가 약하면 뚫리지 않고 여차하면 바늘에 손가락 끝이 찔리기 십상이다. 강하면 여지없이 금이 쫙 가버려서 깨져버리는 달걀의 속성(屬性) 때문에 정신일도(精神一到) 해서 집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쩌다 뚫긴 뚫었는데 콩알만한 크기의 큰 구멍이 나버리면 보기도 안 좋고 그림 그리기에도 여간 모양이 나질 않기 때문에 작은 구멍을 내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
양쪽에 구멍을 뚫었으면 다음 순서는 달걀 불기인데 이게 진짜 난관이다. 적어도 쇠 젓가락으로 툭 쳐서 낸 정도 크기의 구멍이라면 불기가 수월한데 바늘구멍을 통해 날달걀을 반대쪽으로 흘려 내보내기란 정말 어렵기 그지없다. 마치 바람을 잔뜩 불어넣은 맹꽁이 배 마냥 양쪽 볼따구니가 빵빵해지면서 힘을 주어야 하는데 마치 중세시대 유리병을 부는 기술자를 연상(聯想)시킨다.
그뿐만이 아니다. 눈의 압(壓)이 올라가는지 눈도 뻑뻑해오고 양쪽의 하악골은 얼마나 뻐근해오며 침이 한꺼번에 고이는지 모른다. 순간, 머리는 갑자기 혈액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대낮에 낮술 한 사람마냥 벌건 모양새라 당사자도 힘들지만 보는 입장에서도 염려스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 달걀 바늘 구멍/ 초록색 물감으로 그린 달걀 그림. 가장 큰 어려운 일은 보일듯 말듯 바늘구멍 크기의 점과 같은 크기의 구멍을 통해서 달걀을 불어 내야 일로 인내와 끈기를 요구하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해마다 빠짐없이 이른 봄에 하는 연례행사처럼 ‘부활절(復活節) 달걀 이벤트’를 기쁘게 하는 이유는 겨울을 벗어난 봄맞이 입춘대길(立春大吉)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먼저, 그림 그리기에 적합한 달걀을 선별하고 깨끗이 씻은 다음, 구멍을 내고, 달걀을 불어 내고, 씻고, 말리는 기본 과정이 끝난 다음 본격적으로 착색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들어가게 되는데 대략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달걀 놀이’ 가 아닐 수 없다.
▲ 아주 오래된 달걀 껍질에 종이를 붙여 만든 달걀공예. 달걀 하나하나 마다 각기 다른 캐릭터와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달걀에 대한 몇가지의 긍정적인 또, 부정적인 기억들이 있다. 첫째로 예닐곱살 무렵 서울 나들이 때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청와대근처에 삼촌집이 있었다. 그 집 작은 닭장에서 ‘꼬끼오’ 소리가 나면 어김없이 둥지에 달걀 한 알이 놓여있었다. 그 때 손에 쥐어본 막 낳은 알에서 전해오던 따뜻함은 생경함과 동시에 묘한 느낌으로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지금도 냉장고에서 방금 꺼내 서늘하기 짝이 없는 달걀을 쥐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착각은 바로 그 때문인듯 하다.
▲ 장성의 시골 농가에서 짚 속에 암탉이 낳은 '닭 알(달걀)' 하나를 보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년전 처음 접해본 따뜻한 날 달걀의 생생했던 하마터면 잊혀질 뻔 했던 추억을 다시 길어올리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아버지가 날달걀을 아침에 드시던 것을 보고 엄마 몰래 날달걀에 구멍을 내어 훅 흡입했다가 비릿함에 토해버린 기억도 있고 중학교 무렵에는 도시락에 달걀 후라이가 얹혀 있고 없음으로 해서 도시락에 미치는 가정경제가 가늠되기도 했다.
▲ 생명을 잉태하는 부활절. . 옆에 나와 있는 두 알은 다른 암닭이 나은 알이어서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자신이 낳은 알을 품고 있는 암닭 한마리.
소풍가서 내리 먹은 삶은 달걀로 토사곽락((吐瀉癨亂)을 경험한 적도 있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어딘가를 갈 때 마다 예외없이 빨간 망사 주머니에 든 석줄 짜리 삶은 달걀을 신문지에 쌓여있던 굵은 소금을 찍어먹던 기억도 새롭다.
31일은 ‘이스터(‘Easter)’라 불리는 부활절로 ‘봄의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부활을 뜻하고 죽은이가 다시 살아나서 죄를 사하는 것으로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 부활절에 만나는 ‘달걀’이 아닌가 싶다.
부활절을 앞두고 해마다 한번씩 꺼내보는 십 몇년 된 해묵은 달걀상자를 열어보니 얼추 그간 그린 달걀그림들이 한 바구니 가득한 정도의 양이다. 속이 빈 달걀들은 해를 더하면서 서로 부딪치기라도 하면 쨍~ 하는 맑은 금속성 소리가 나는데 오래 묵은 달걀을 꺼내보는 재미와 추억이 소록소록 담겨있다.
한국에서 부활절이면 성당에서 받곤 했던 ‘그림이 그려진 삶은 달걀 바구니’가 전부였던 것에 비해 미국에서는 ‘부활절 햄’, ‘부활절 빵’이 있으며 근래 들어서는 ‘부활절 쵸콜릿’도 생겨났다. 그 외에도 동네마다 계란 굴리기, 숨은 계란 찾기 퍼레이드 등의 행사가 있다.
미국의 한 카드회사의 통계에 의하면 크리스마스, 발렌타인, 어머니날, 아버지날 다음으로 가장 많이 주고받는 때가 부활절 기간이라고 한다. Easter 는 민족이나 종교적인 것을 떠나 누구나에게나 즐거운 행사이자 축제로 자리잡은 것 같다.
▲ 부활절 토끼가 달걀 바구니를 들고 나눠주는 이야기, 암탉과 병아리들이 식탁에 모여 앉은 이야기 그리고 믿기 힘들지만 기타를 들고 있는 노래하는 베짱이의 이야기까지도 담겨 있다. 이 달걀들은 1930-40 년대에 나무에 거는 장식용 부활 달걀이라고 한다.
아직도 한국의 아이들에게 달걀귀신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니던 무렵 가장 무서운 이야기는 단연코 ‘달걀 귀신’이었다. 일 보고 난 후 화장실에서 올라온다는 ‘파란 손으로 닦아줄까, 빨간 손으로 닦아줄까’ 내지는 ‘내 손 내놔라’ 라는 황당한 이야기가 왜 하필 달걀과 화장실이 연관되어졌는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재래식 화장실을 썼던 세대의 유년시절에 모두가 들었음직한 달걀귀신 이야기는 아직도 손사래가 쳐질 만큼 무서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 때문에 한동안은 밤에 화장실 가기가 끔찍하게 싫었고 혼자서는 무서워서 갈 수 없어서 꼭 누군가와 동행을 요구하곤 했었다. 달걀귀신의 정체가 나날이 커져가던 어느 날은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누군가 내 발목을 붙잡을 것 같은 환상까지 일어나곤 했을 정도다. 지금도 오싹했던 공포의 기억으로 남는 한국의 달걀귀신 이야기와 달리 미국에선 무서운 달걀 이야기를 들어보질 못했다. 오히려 미국인들의 유년시절의 추억의 공통분모(共通分母) 속에는 ‘험티 덤티’ 이야기가 있다.
▲ 험티 덤티를 봉제로 만든 캐릭터 이미지. 한국의 달걀귀신에 관해서 통용되는 이미지는 없다. 그 이유는 상상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있다면 달걀 형태에 팔다리가 나온 형국과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남편과 교제할 당시 그의 집에 가보고서 깜짝 놀랬던 것이 있었다. 책장 맨 윗쪽에 자리잡고 있던 그 물체를 본 순간 입에서 나온 말은 반갑기도 하면서 동시에 무서운 ‘앗, 달걀귀신이다’ 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달걀모양을 한 머리에 옷을 입은 뚱뚱한 모양의 땅딸보 인형일 뿐인데 느닷없는 달걀귀신이 겹쳐 보인 것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 였을까.
우리네 달걀귀신 이야기를 들려주자 “저것은 미국에서 ‘험티 덤티(Humpty Dumpty) 라고 불리는 캐릭터로 대부분 어린아이들 모두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나도 어려서부터 가지고 놀았다”며 남매가 아끼던 물건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심지어는 험티덤티 라는 재미난 노랫말을 부르고 자라면서 물건을 잘 간수해야 하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크기의 이것은 1960 년 대 부활절에 아이들이 젤리 빈을 담아서 먹었다던 캔디를 담아서 닫고 열수가 있게 만든 플라스틱 달걀.
몇 해 전 한 장난감 경매에서 남편이 어릴적 물건이라며 찾아낸 것 중의 하나가 험티덤티 였다. 본인 물건을 누나에게 준 이유가 ‘달걀귀신 이야기’ 때문이라서 아깝지만 포기했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내겐 아직도 영락없는 달걀귀신이 옷입은 모양새로 보이지만 다른 이에겐 유년시절의 추억이 살아있는 물건인지라 그것을 욕심내던 할머니와 치열한 경쟁을 해가며 무려 예상가의 3배나 주는 금액을 주고 구입하게 됐다. 그것을 매일 방을 들고 나면서 보는 이제는 무섭지 않은 달걀캐릭터가 되었다.
아무튼, 부활절을 맞는 횟수가 늘수록 달걀에 대한 부정적이고 무섭던 이미지도 많이 엷어지면서 달걀에 대한 재미난 추억과 이야기도 조금씩 늘려가고 있는건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옆지기가 하는 말이 웬만하면 건너뛰고 싶은 축제중의 하나가 ‘Easter’ 라는 것이 아닌가? 종교적인 의미는 차치하고 그저 달걀 그림 그리는 재미를 가진 마누라 때문에 달걀 말이, 달걀 찜, 달걀 지짐, 달걀 스크램블, 달걀 국 등을 돌아가며 먹어야 하는 고충 때문이라니 슬며시 웃음도 나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두 끼 내리 먹으면 물리는 법인데 몇 날 며칠을 아무리 다른 요리법으로 한들 달걀로 만든 음식을 먹는 일이 어찌 아니 질리겠는가. 하여, 올 해 2013년 이스터 주간에는 달걀 요리 없음을 선언하였더니 횡재(橫材)라도 한 양 반기고 좋아라 했다.
그런데 그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달걀 속 비우는 일을 올 해는 하지 않을 것이니 달걀 요리 물리게 먹을 일 없는 것은 사실이나 지난 해 부활절 전남 장성 농가에서 달걀 껍데기를 모아서 애지중지 뉴욕까지 가져온 것들이 자그마치 열개나 있음을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달걀 요리가 없다고 달걀 그림 그리기도 안한다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 커플에그 / 부활절 달걀 그림을 그리려다 말고 만들게 된 한복을 곱게 입은 달걀 신랑과 달걀 아내.
끝으로, 부활절하면 달걀이 자동으로 연상되는 미국에서 세대를 이어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험티 덤티(Humty Dumty) 전래 동요(童謠)를 소개한다.
Humpty Dumpty sat on a wall,
(험티 덤티가 담장에 앉아 있었네.)
Humpty Dumpty had a great fall.
(험티 덤티가 심각하게 추락해 버렸네.)
All the King’s horses, And all the King's men Couldn't put Humpty Dumpty Together again.
(임금님의 말들과 신하들 모두 부서져버린 험티 덤티를 다시 맞춰내지 못했다네.)
노래는 계속 반복된다.
Humpty Dumpty sat on a wall……
▲ 책 이미지/ 'Humpty Dumpty Story' 동화 책에 나오는 이미지는 이렇게 생겼다. 이 동화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재미와 더불어 한번 부서진 것들은 영영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진실을 배우게 되지 않을까?
‘험티 덤티’ 라는 이름의 대포가 1600 년대 있었는데 성벽에 설치되어 도시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적들의 공격으로 모든 게 망가졌고 와중에 대포도 땅바닥으로 떨어져 부서졌다. 신하들이 조각난 대포를 고쳐보려 했으나 고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험티 덤티 노래이다. 하고 많은 것 중에서 하필 달걀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아마도 그 뜻은 한번 부서진 것은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달걀이라는 캐릭터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 2013년 맞는 올 해의 이스터는 새 교황인 프란치스코 1세의 즉위로 해서 더욱 뜻깊고 특별한 부활절이 될것 같다.
▲ 제목/A Figure Croquis. 종이에 크레용. 2013 March. 설명/봄의 빛깔로 상징되는 여러가지 색이 있겠지만 생명을 키우는 봄에 부활절 달걀에 어울리는 색깔들은 뭐가 있을까? 모델의 몸을 통해서 겨우 내내 웅크려있던 자세의 몸을 이제 서서히 깨울 일만 남은것 같다.
kimchkimnyc@gmail.com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09:53:15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