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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밭 한 가운데 서서…

글쓴이 : 김치김 날짜 : 2013-11-01 (금) 11:50:38

얼마 전 장보러 나갔을때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온 게 있다. 영양가도 높고, 칼로리는 낮고 뭐니뭐니 해도 가격이 저렴한 건강한 먹거리이지만 아무리 작은 것을 고른다 해도 한개의 크기가 장바구니를 가득 채워 버리기 때문에 목록에 적어간 다른 먹거리들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은 살 생각을 할 수 없는 품목이라 포기해야 했다. 공간이 있었어도 워낙 살려고 점찍어 둔 것의 무게가 수박 이상으로 무겁다 보니 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캘리포니아 북부의 국도 변을 지나다닐 때마다 눈을 뺏기는 풍광(風光)이 있는데 바로 ‘할로윈 펌킨' 밭이다. 날씨는 그리 쌀쌀하지 않지만 그래서 10월 말의 느낌도 덜하지만 동부 못지 않게 가을 분위기가 물씬 한데 그 이유는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호박 농장과 줄지어 선 수백개의 호박들을 수시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초대형 펌킨부터 감자알만큼이나 작은 것 까지 종류도 다양했고 빛깔과 생김이 천차만별이라 호박의 신세계를 접하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도 할로윈이 지나면 뚝 떨어지는 몸 값 때문에 시월 말에 접어들면서는 서둘러 처분하려는 'SALE' 덕분에 파격적인 가격에 살 수 있어 좋았다

 

 

 

 

 

차에서 내려 널직한 호박 밭으로 들어가 보았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무성하던 잎들 모두 시들어져서 덩그마니 남은 호박들이 여기저기 구르고 있는데 그 모양새가 가히 장관(壯觀)이다. 가장 맘에 드는 모양새의 것을 고르고 다니는 모습이 누가 본다면 마치 선 시장에 나온 처녀 총각 얼굴들을 번갈아 훓어보는 중매장이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다. ‘바닥이 펑퍼짐한 것을 보면서 이 처자는 후덕하게 생겼고……’ ‘키가 훤칠한 펌킨은 씩씩한 총각을 닮은것 같고 ……’ 하면서 품평(品評)을 하는 모양과 별반 다를게 없을것 같다.

 

 

 

▲ 북 캘리포니아에서는 호박 농장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할로윈 무렵 펌킨 조각들을 하고 품평을 하며 즐거워 하는 가족 단위나 어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밭을 한참을 돌다가 나오면서 밭에서 딴지 오래된 이미 썩고 뭉그러지고 있는 것을 보려니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펌킨이 있다면 바로 저런것들이 아닐까 보였다.

 

 

 

 

 

▲ 이쯤되면 에일리언이 따로 없다. 썩어 문드러지는 호박만큼 그로테스크한 형상은 없는것 같다.

 

 

 

인위적인 조각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얼굴과 표정이 살아있어서 만약 누군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오싹한 할로윈 펌킨을 원한다면 조각일랑 하지 말고 그냥 놔두면 된다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고 싶어졌다.

 

 

 

  

 

 

서부의 호박 농장은 동부에 비해 생각보다 많았다. 반달만(Half Moon Bay) 에서는 서부에서 가장 큰 호박 축제가 열린다는 광고등도 많이 눈에 띄었다. 호박 밭에 들어가서 호박들을 구경하다말고 '호박밭 속의 호박꽃들' 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우리 여고를 일러 ‘호박 밭 속의 호박 꽃’ 이라고 불렀던 그 시절……. 교화(校花)는 지고지순을 상징하고 부덕(婦德)을 강조했던 ‘은방울 꽃’ 이었음에도 사람들은 주로 남학생들은 우리를 향해 '호박꽃도 꽃이냐?' 라며 비아냥 거리곤 했다. 어쩌다가 교정 어디에도 호박은 커녕 수박하나도 자라지 않는데 호박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을까.

 

 

 

 

 

1920년대 개교한 학교가 반세기 만에 시내 중심에서 시 외곽으로 교정(校庭)을 옮겼을 때 학교 담장을 사이에 두고 화훼(花卉)와 농업을 가르치던 농림고등학교가 있었다. 거기엔 여름이면 초록 바탕에 노오란 탐스런 빛깔의 호박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는데 그때부터 우리 학교를 일러 호박밭으로 부른다고 느꼈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이유는 전혀 엉뚱한데 있었다.

 

 

 

 

 

고교 평준화가 시작되었어도 국내에 고교 시험을 치던 학교가 몇몇 있었는데 우리 학교도 포함되어 있었다. 추첨제가 아닌 시험제여서 다른 도에서 올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너나 할것 없이 야간 자율학습으로 자정 무렵 하교를 하는 일들도 다반사였고 학교 근처에 서 하숙하는 적지 않은 아이들은 아예 새벽부터 등교해서 책을 파며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공부로 이름을 날리던 때 였다.

 

 

 

 

 

공부벌레들이 집중적으로 모인 탓에 교련시간이나 체육시간 조차도 아까워 아프다는 것을 핑게삼아 교실에 부러 남아서 공부하는 아이들도 다반사였고 체육복 입은 채로 운동장에서도 틈틈히 단어장을 꺼내 들고 외우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어쩌다 체육시간임에도 운동장 구석에서 암기장을 들여다보다가 걸릴 때면  “너희들 이렇게 운동은 싫어라 하면 하루종일 앉아만 있는 저 학교 호박밭에 있는 호박들과 무슨 차이가 있냐?”라며 역정을 내시면서 운동을 독려(督勵)하시며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기도 했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책만 파다보니 줄창 앉아만 있어서  운동부족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우연하게도 하체가 펑퍼짐한 애들이 평균적으로 많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겨울철에도 치마를 입어 옷맵시가 나던 다른 여고들과 달리  동복 바지 차림의 우리는 멀리서 봐도 단박에 알아볼 정도로 대비가 되긴 하였다. 학교 분위기상 외모를 가꾸거나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수학 공식 한 개나 숙어 하나 더 외우려는 욕심으로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외모와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 같다.

 

 

 

▲ 미국에서 할로윈 무렵에 가장 인기있던 챨리 브라운의 ‘거대한 펌킨(It's The Great Pumpkin)’ 이라는 만화가 있다. 애어른 할것 없이 이 이야기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그런 우리들을 호박꽃이나 호박밭으로 도매값 넘기듯이 이죽거리는 애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기죽지 않고 무시하고 살았던 것은 그 단어 속에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의 신포도’ 처럼 우리들을 못생긴 꽃의 대명사인 호박꽃으로 ‘땡처리’를 하지만 그 속내에는 겉으로 들키고 싶지 않은 부러움과 질시가 같이 묻어 있음도 알았기에 호박밭이란 단어에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사람을 호박에 빗대거나 비유를 할 때 보면 거의 예외없이 긍정적인 쪽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서 호박이란 단어에 친근감을 가질 수 없었지만 미국에서 살면서는 정감있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그 이유 바닥에는 ‘호박’과 ‘펌킨(Pumpkin)’이란 잘못된 뉘앙스의 차이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지만.......

 

 

 

▲ 2012년에 뽑힌 거대 펌킨 중의 하나.무게가 무려 1700 파운드를 육박했는데 성인 10명의 무게를 합친 정도라고 하면 가늠이 될까.

 

 

맨해튼 유기농 먹거리들을 파는 가게에서 만난 개당 1달러가 넘던 ‘호박꽃’도 내겐 너무 놀라웠고 불란서 식당에서 접해본 호박 꽃 샐러드를 보면서 호박꽃 튀김을 맛보면서 호박의 새로운 맛에 빠지게 되었다. 그뿐이랴? 부드러운 호박 파이와 미국인 할머니가 끓여준 호박 죽도 맛이 훌륭했으며 달지 않은 맛의 호박 사탕도 맛있었다.

 

 

 

 

 

호박이란 단어는 내 기억에 그저 저렴하고 흔한 먹거리로 별 특별한 추억이 없지만 요즘처럼 비만(肥滿)이 심각한 즈음에 낮은 칼로리와 원활한 신진대사의 촉진과 이뇨(利尿)작용의 우월성을 생각하면 현대 먹거리의 모범답안이 아닐까? 오늘처럼 날씨가 꾸물하거나 안개가 자욱한 날 뜨끈한 호박죽 한그릇 먹으면 속이 풀릴것 같다. 특히나,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마른 달달한 호박고지로 만든 ‘호박 팥 시루떡'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공상에 빠진다. 사람들의 나이와 음식은 정말 뗄래야 뗄 수 없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보기에도 실하고 먹음직스럽게 생긴 분이 뽀얗게 나있던 늙은 호박. 살까 말까 내 망설이다가 결국 무겁다는 핑게로 내려놓고 돌아 나왔는데 아직도 팔리지 않고 있나 가봐야겠다. 발코니에 내어두고 눈이 짓무르게 보다가 서리라도 맞고 날이 더 쌀쌀해지면 호박고지로 만든 떡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못 꿀지언정 따끈한 호박 죽 한그릇이라도 끓여내기엔 충분할 것 같다. 호박의 깊은 맛을 새삼 발견하고 호박이 상징하는 진가와 묘미를 그 맛과 즐거움을 새로 터득하는 그런 시월을 보내고 있다.

 

 

 

 

 

 

 

여러 호박 밭 속에서 어우렁더우렁 뒹구는 호박들과 어울려 있고보니 바야흐로 ‘호박 그 자체’가 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호박밭 속의 그 많던 호박꽃 중의 하나였음에도 진면목(眞面目)을 무시한 채 모르쇠로 살지 않았나 싶다. 호박꽃으로 불리울 때가 그래도 호시절이었다는 것을 아는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절상 꽃은 졌지만 이제 시월의 호박처럼 씨가 여물고 속이 찰 일만 남은 것 같다.

 

 

 

 

 
 

 

 

▲ 제목/ A Woman Figure. 종이에 물감. 2012. 설명/ 호박을 연상하면 그 생김에서 일단 푸근하고 넉넉한 느낌이 제일 먼저 전해져 오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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