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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V.배의 코리안데이
남쪽으론 뉴욕 맨해탄을, 북쪽으론 팰리세이드 절벽에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눈을 뜬다. 그리고 불타오르는 저녁 노을이 떨어지는 허드슨의 강변에 몸을 누인다. 돌아갈 고향이 없어 태극기를 보면 목이 메고 바람에 날리는 성조기를 보면 울먹해지는 나는 진정한 코리안-아메리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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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만에 찾은 모국

글쓴이 : 재이 V. 배 날짜 : 2011-10-14 (금) 00:13:04

미국 시민이 가장 선호하는 민속화가 노만 락크웰은 그의 回顧展(회고전)에서 ”통통 소리를 내고 물살을 헤쳐가는 그 배가, 내 조국 아일랜드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희미해지는 섬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다시 가봐야 돌아갈 고향이 이제는 없다.(There is no home to go back to)”라고 했다. 그는 다시는 그 고향을 보러가지 않은 채 눈을 감았으리라.

 

‘아침 동녘에 떠오르는 해의 조용한 나라’,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자랄 때 맑은 목청으로 되뇌고 불러봤던 모국의 모습이었다.

42년만의 15일간의 여정. 짧은, 그러나 실로 길게 느껴졌던 미국 촌뜨기 “아줌마”의 나홀로 모국 방랑기이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지인들이 다그쳤다. “한마디로 한국 여행은 어땠니?” “한국은 지금 어떠하디?”

한동안 답변을 미루다 이렇게 말했다.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경이로움의 극과 극을 이루는 나라.”, “똘똘 뭉쳐진 실오라기들이 여러 타래로 흩어져 있는 모습의 나라.” “‘oxi moron’이 뚜렷이 존재하는 사회의 나라.”

사실 언어로 형언하기에 내게는 조금 벅찬 ㅡ시간이 조금 흐르기전까지는 도저히 정리되지 않았던, 그런 이방인의 나라가 모국의 모습인지도 몰랐다.

   

작은 트렁크 하나를 이끌고 매일 밤 숙소를 轉傳(전전)했다. 인천-서울-강릉-평창-포천-주문진-안동-경주-부산-마산-합천-진주-경주-문경-통영-전주-목포-군산-대구-대전-천안–수원-부천-서울-인천.

아직도 아물지 않은 발바닥에 맺힌 피멍, 따뜻한 오후 햇볕 아래서 깜빡 졸아대는 내 머릿속에선 화장실을 찾아 헤매고 있다.

퍼뜩 머리를 든다. 졸고 있던 동안 내 입에서 혀 끝에 아직 묻어있던 녹아내리는 맛의 홍시 - 전주 한옥마을을 거닐다 담장 밑에 떨어져 있던 –맛을 다시 吟味(음미)했었나보다. 아니면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먹었던 담배연기와 먼지를 혀로 긁어내려고 애쓰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입술 밖으로 나와 있는 혀를 남이 볼새라 낼름 집어 넣는다. 한동안은 시내버스 속에서 밀리고 전철에서 부대끼다 깨어나기도 했다.

 

꼬박 앉아 잠을 청하다 이른 새벽 한국오기 전 인터넷으로 예약해 두었던 호텔(?)을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어두침침한 복도에 놓인 장난감 모양의 이상한 것들이 들어있는 벤딩 머신에 ‘쿵’ 소리를 내며 트렁크가 부딛쳤다.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그곳을 황급히 빠져나와 숨을 ‘휴~‘하고 몰아쉬었다.

 

아스팔트 대로에 물을 ‘좌-악’ 끼얹으며 어제밤 도시가 만들어놓은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정신’을 이어받은 장년 남자의 싱그러운 그 모습. 그 기분은 새벽공기를 타고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달리는 ‘불렛 트레인’으로 이어졌다.

 

해가 中天(중천)에 걸려있는 서울역 광장, 술에 젖어 느긋이 팔자를 그리고 들어누운 남자를 뒤로하고 첩첩이 가려진 국보 제 일호를 망연히 쳐다보았다. 세종대왕의 육성이 울려퍼질듯한 국제 도시에서의 출발점을 찍었다. 어린 시절 수없이 지나다니던 이 길. 광화문 뒷전의 屛風(병풍)처럼 둘러싸인 북한산의 웅장함, 그것이 뿜어내는 精氣(정기), 왜 그때는 깨닫지 못했을까?

 

그 무엇에 항거함없이 지극히 자연과 풍요로운 조화를 이루었던 우리 고유의 건축 양식. 지혜로운 선조들이 만들어놓은 훌륭한 이것이 왜 현대의 모국인들 일상생활에 반영되고 전수되지 않는 것인가? 수백년 수천년 찬란한 역사의 흔적은 잘 보관된데 비해 우리 부모와 그들 부모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을까?

 

한강변 줄기를 쌓고 늘어서있는 아파트를 외면하고 太極(태극)의 기운을 이어받은 동해로 실어다줄 시외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록키산맥의 스펙타클함은 없으나 아름답기만한 산 봉우리들이 산맥으로 이어진다. 그 아래로도 파랑과 초록색의 슬레이트 지붕을 한 농가들이 놓여있다. 평화로워 보이는 평야와 농가들의 지붕이 조금 언발란스인양 어색해 보인다.

어느 도시마다 보여지는 20-30년 안팎으로 볼품없이 마구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들에 붙어있는 건물, 그 크기와 엇비슷하게 같은 사이즈의 간판 사이에서 擴聲器(확성기)를 통해 구성진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그 가사가 아니였으면 내가 남미, 아니면 중동 신도시에 와 있는게 아닐까 했다. 허벅지가 다 보이는 미니 스커트에 높은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21세기의 한국 여성이 “님과 함께 같이 산다면…” 하는 어설픈 求愛(구애)에 넘어갈까 하는 생각을 하며 혼자 길거리에서 희죽 웃어본다.

 

해가 진 늦은 시각에도 버스정거장에 여학생들이 몰려있다. 버스 행선지를 물어보자 정류장에 세워진 컴퓨터로 다음 버스의 동향을 점검해 본다. 시간이 있는지 얼른 몸을 돌려 모락모락 김이 뿜어나오는 통만두 집으로 들어간다.

금방 저녁을 먹었건만 뽀얀 김 속에서 나오는 만두를 보니 침이 꼴깍 넘어갔다. 만두 옆에서 젊은 여인이 한 손으로 김밥을 드르륵 밀어 옆으로 밀어논다. “얼마동안 말아야 저렇게 될까?” 만두집에서 나오는 여학생을 따라 시내버스에 올랐다. 트렁크를 들고 균형을 잡으려고 꾸물거리는 나를 향해 소리질렀다 “아줌마, 1200원이야 100원 더 넣어”, “네 죄송합니다, 기사님”.

출발한지 일분도 안되어 갑자기 덜커덕 소리를 내며 ‘기사님’이 브레이크를 확 밟았다. “저 씨XX, 운전도 하나도 못타면서 좋은 차는 타고 다녀?” 창밖을 보니 BMW 운전석의 젊은 여자는 귀에다 셀폰을 대고 운전하다 우리가 탄 버스를 추월하려다가 그냥 받아버렸다.

신기함과 고달픔이 교차되는 旅程(여정)이 지속되던 어느날 밤 늦게 호텔에 들어와 잠을 청했다. 왠지 피곤한 몸과 달리 잠에 빠질 수 없었다. TV를 틀자 “극락에 갈 수 있는 묘지를 사라”고 스님이 거침없이 떠들어대신다. 불교방송인가보다.

얼마 남지않은 방랑의 시간을 위해 다시 잠을 청했다. 눈꺼풀 사이로 며칠전에 들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성웅 이순신 장군 동상아래서 “주님이여 강림하소서…” 라고 아름다운 포즈로 두 팔을 하늘을 위해 올린 소녀들. 그 뒤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축복하소서…”라고 열광하던 청소년들. 젊음의 권한을, 자신의 존엄과 판단보다는 종교가 지향하는바에 매달려 노래하듯, 가엾은 영혼의 울부짖음같은 목소리를 통영 앞바다에 퍼붓듯, 몸을 흔들던 젊은이들.

 

부유한 남자들과 사랑을 나누며 돈을 번다던 압구정에서 만난 아름다운 용모의 30대여인. 해인사 가는길 만난 “니가 옆에 있어 장사 느무 잘된데이. 이런 막걸리는 죽었다 깨나도 핑생 못 묵을끼라. 어서 퍼뜩 마시봐라 ”하며 새콤달콤한 막걸리를 부어주던 86세의 다정한 주름진 얼굴의 할머니. 콩잎가루와 소나무 가루를 곱게 갈아 팔러 나오신단다. 숨도 쉬어지지않을 만큼 고귀한 신라문화가 담긴 진열장 위에 팔을 얹고 낄낄대던 천박한 여인네들, 박물관에서 마구 뛰어다니던 아이들.

일본말로 인사했다, 중국말로 인사했다, 또다시 어설픈 영어로 인사해대는 고급 백화점 직원들. 전주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라며 우리의 깊은 전통을 한 시간 넘도록 나에게 강의하듯 열변을 토하던 아름다운 영혼의 청년, L.A.에서 교수를 하며 강남에 있는 집을 왔다갔다한다며 서울 관광을 시켜주겠다던 중년의 여자.

소주가 “뜨물 맛같다” 고 내가 말하자 “소주맛이 세계 최고의 맛”이라고 벌컥 화를 내던 정겨운 경상도 아줌마, 명동성당 뒷길에서 ‘중국과 미국 시장의 비교론’을 성토해대던 모 증권회사 사장, 꼴뚜기젓 먹어보라고 내 팔을 끌어부치던 재래시장 억순이 언니, 고려시대 청자가 아직도 몰래 해외로 반출돼 팔려지고 있다고 걱정하던 사양길에 접어든 고 미술품 상인, 낙산사 지는 해에 절벽에 세워진 정자에 앉아 극락을 얘기해주던 땡추, 천안은 예로부터 교통의 도시오, 교육을 숭상하는 최고의 도시라며 입에 침이 마르던 충청도 아저씨.

 

75평생을 농사에 매달리다 오늘 안동 장에 야채를 들고 나왔노라며 “하루종일 다 팔아 봐야 겨우 4만원이야, 너무 팔다리가 아파서 언제까지 할 수 있을런지...” 가만히 미소 짓던 어깨선이 가느다란 노인의 얼굴에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졌다.

집앞, 창밖으로 비치는 허드슨 강가 펠리세이드 절벽을 굽어보며 아침해가 붉게 떠오르다. 초 가을하늘 바다를 오렌지색으로 조용히 칠하며 내려앉는 롱비치의 저녁 바람도 그대로 불어댄다. 명분이 뚜렷치 않은, 그러나 애정이 가는 월스트리트의 시위도, 가난한 자들의 안위도, 중산층의 하락도 외면한채 다음 해 선거 캠페인을 하러가는 오바마 대통령을 질책하는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목소리. 이 모든 것들이 존재하든 말든 옆집 사람들은 술에 취해 허드슨 강물을 바라보며 웃어댄다.

다 그대로였다. 그냥 나를 낳아준 어머니의 나라가 경제대국을 이룬 것에 비해 의식이 아직은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달라진 것일뿐. 개발, 발전이란 이름 아래, 잘사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최신식 아파트를 더 많이 짓기 위해, 錦繡江山(금수강산)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질주하는 모습이 이곳에서도 보인다.

 

어쨌든, 그들은 내가 모국을 등지고 사는동안 한국을 경제12대강국에 올려놓고, 선조의 찬란한 문화재를 보호해 오지 않았는가?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 물려준 조상들의 기상, 문화유산, 아름다운 강산, 그것을 그들 나름대로 지키며 자손들에게 무엇인가를 물려주기 위해 에너지 넘치게 하루하루 투쟁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땅을 지켜나가기 위한 어떠한 형태의 몸부림도 그들의 몫이다. 그들과 내가 지고 갈 다른 형태의 십자가이다.

수없이 많은 간판, 사람 ,식당, 자동차가 역동하는 모국의 脈(맥)을 힘차게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흩어진 실타래의 맥에 나도 한부분이 되어 “다시는 돌아 갈 고향은 없다”고 말한 노만 락크웰의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다녀 올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노창현 2011-10-14 (금) 00:23:00
42년만에 찾은 모국을 너무도 유려한 필치로 묘사하셨네요..잔잔한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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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 2011-11-01 (화) 07:11:38
글로라도 마나니 너무 반갑네요. 항상 메세지가 들어 있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후러싱에 오시면 식사라도 같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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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이뷔배 2011-11-02 (수) 09:08:53
항시 커뮤니티와 뉴스로 가족을 위해 힘쓰시는 회장님도 웨스트체스터 카운티를 오시게되면 방문하여주십시오. 감사합니다. JV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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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리마사 2011-12-29 (목) 21:08:22
배선생님의 한국여행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여행기 잘 읽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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