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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살아 가는 의수보다는 지구인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나, 그래서 다인종이 살고 있는 뉴욕으로 유학 결정을 했으며, 틈틈히 지구촌 구석구석을 돌아 다니고 있다. 지구에는 여러 인종이 있고 그 사람들은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간다. 그 테두리를 벗어나면 더 멋진 세상이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플래츠버그 뉴욕주립대 졸업. 지금은 도쿄에서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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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언어다..오스트리아의 추억

글쓴이 : 장의수 날짜 : 2010-06-30 (수) 22:09:57

 

전세계가 축구로 술렁이고 있다. 판정 오심과 준비 미흡 등 여러가지 문제를 떠나 지구촌의 축제로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공 하나로 서로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 놀랍기만하다.

축구와 여행을 함께 즐기셨던적이 있나요? 축구만큼 다른 운동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여러명이 즐길수 있으며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스포츠도 없기에 언어도 관습도 다른 외국인들과 축구 하나로 교감했던 기억이 있다.

때는 2000년 여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방문을 해봤다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오스트리아의 즈베틀(Zwettl)이라는 생소한 도시로 어학연수를 갔다. 김포공항을 떠나 독일을 경유 Zwettl에 도착했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고 유럽의 대륙성 기후의 싸늘한 바람은 반바지 사이로 드러나 있는 다리를 스쳐 지났다.

코 속 가득한 풀냄새와 함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간 곳은 우리 학교와 자매학교인 에델호프(Edelhof)라는 농업고등학교의 아담한 기숙사였다. 불편한 점은 없었으나 첫 날 밤의 긴장 때문일까 시차 때문일까 피곤함에도 잠이 들 수 없었고 이내 심심함에 켠 텔레비전에 나온 것은 반나체 여자들의 광고 였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광고 전화번호는 6이라는 숫자를 유난히 포함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독일어로 숫자 6은 ‘Sechs’ 이고 ‘젝스’ 라고 발음한다. 외국어가 서툰 우리에게 ‘sex’라는 단어를 연상시켜 18살인 우리들은 충격적이었지만 몇 번 보니 금세 흥미를 잃었다.

야한 광고를 뒤로 하고 나와 친구들은 다른 놀거리를 찾아 학교기숙사를 돌아 다니기 시작했고 불 빛 하나 없는 완전한 어둠이 깔린 기숙사 밖에까지 이르렀다. 어둠속에서 느낀 것은 친구들의 목소리와 엄청난 풀 냄새였다. 모래나 흙바닥 운동장이 익숙한 우리는 정체모를 풀냄새의 원인을 알지 못했지만 호기심보다는 낯선 곳의 어두움에서 오는 두려움에 기숙사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빛은 용기를 주었고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기숙사 밖을 확인하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잔디 구장이 있는 것이 아닌가! 구장 주변을 둘러싼 사과나무속 잔디구장엔 새하얀 두개의 골대가 양쪽 끝에 서 있었다.

고등학교 운동장에 잔디라니 한국에서는 상상 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곧 바로 친구들에게 알리고 모두들 수업이 끝나고 축구하기만을 기다렸다.

태클을 해도 아프지 않고 마법의 프리킥이라도 구사할듯한 생애 첫 잔디구장에서의 축구를 신나게 즐기고 있는데. 사과 하나가 날라들었다. 한 입 베어먹은게 누군가 던진게 분명했다. 불끈해서 범인을 찾아봤지만 일부러 놀리는건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그냥 기숙사로 돌아가려 하는 순간 또 하나의 사과가 날라왔다.

백인 아이 4, 그들은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신기할 법도 한 것이 우리의 방문으로 Zwettl 라디오 방송에 소개될 정도로 이곳에서 아시아인을 보기는 정말 힘들다.


독일어과 임에도 내가 할수 있었던 말은 “안녕” “이름이 뭐야” 가 전부였고 서로의 호기심에 양 국가 아이들이 만났지만 절망적일 정도로 답답했다. 원어민 선생님 이후 내 인생의 첫 외국인과 무엇인가 하고 싶었고 우리의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공 그 아이들의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사과, 공통점은 둥글다는 것이었고 그 아이들이 사과를 우리에게 던졌듯이 우리는 축구공을 살짝 굴려 주었다.

자연스럽게 팀을 이루어 저녁을 먹기 전까지 공을 차고 놀았고 비록 말은 안 통해도 급속도로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축구의 힘은 대단했다.

내가 공을 잡았을 때 달려들던 외국 친구들의 숨소리는 아직도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 축구의 저력을 보여주기 위해 다들 죽기살기로 뛰었는데 왠지 유럽인하면 다들 축구를 아주 잘 할 것 같지만 그들이 개인기로 우리를 뚫고 지나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물론 힘 하나는 압도적으로 좋았지만 유연성이 떨어졌다.

Zwettl에서 만났던 한 친구는 우리가 ‘바죠’ 불렀는데 1998년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말총머리의 이탈리야 선수 ‘로베르토 바죠’와 머리 스타일이 비슷해서 그렇게 불렀다. 축구를 같이 할 때 마다 ‘바죠’는 리더쉽도 있고 개인기가 아주 뛰어난 아이였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번번히 막히면서 시합 중 가끔 짜증을 내곤 했는데 경기가 끝나면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축구선수가 되어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쉽다고 했던 그 친구 혹시 지금 독일의 한 프로팀에서 선전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항상 바죠라는 별명을 불러 실명을 지금 모르는 것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는다.

 

Zwettl을 떠나기 전날의 축구 시합이 끝날 무렵 난 한국 기념품을 그들에게 전해 주었고 처음에는 나의 선물이 부담스러운지 거절을 했지만 결국에는 ‘당케 쉔’ 이라는 말과 맑은 미소를 보였고 다음을 기약했지만 그것은 우리의 마지막 축구시합이 되었다.

짧은 시간에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친구들과 친해 질 수 있었던 것은 축구라는 세계인이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어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이번 월드컵을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우리에게 축구는 곧 언어였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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