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이 대개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먼저 안정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가족 역시 아이들 학교 문제를 우선순위로 꼽아 지역을 고르게 되었다.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남편이 2달 정도 앞서 미국에 도착한 관계로 우리가 살 지역을 나머지 가족이 도착하기 전에 고르게 되었다. 여러 집을 보러 다니면서 그때마다 사진을 찍어 메일로 보내주었지만, 사진만 갖고는 확신을 할 수 없어 세탁기가 있는 집으로 고르라고 하였다. 아무래도 살림을 하는 나로서는 빨래하는 것이 큰 일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셋집에 기본적인 전기제품이 갖추어져 있긴 하지만 세탁기가 없는 집이 많다. 그래서 런드로멧 이라는 세탁장이 마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아마 이건 내 생각이지만. 돈이면 뭐든지 다하는 이 나라 습성에 의한 또 하나의 경제적 창출에 의해서였지 싶다. 지금도 역시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아무튼 남편의 직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집을 보러 다니다가 주위에서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어 남편의 출퇴근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아이들 교육환경을 위주로 뉴욕시 북쪽 외곽에 고르게 되었다.
부동산 브로커를 통해 남편이 결정한 집은 월$1900의 낡은 투패밀리하우스로 방 3개와 부엌, 거실 등이 딸린 2층이었다. 입이 쩍 벌어졌다. 뉴욕은 워낙 대도시이고,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라 미국 내에서도 웬만한 집의 렌트 값은 상상을 초월 한다.
그 때 당시 환율이 1,250원 정도였으니,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우리 가족은 강남의 번듯한 아파트에 세를 든 셈 이였지 싶다. 물론 주위 경치는 그림 같은 동네이긴 하더라도 합리적인 삶을 지향하는 미국에서 월세를 내는 만큼의 조건에 합당하다면 별 불만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집주인의 횡포를 볼 때면 돈 밖에 모르는 수전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시세에 따라 월세는 올리면서 절대로 세입자를 위한 집수리는 하지 않는다. 역사가 오래 되고 유서가 깊은 동네일 수록 더욱 그렇다.
수십년은 지난 듯 카펫이 아예 떡이 돼 삐걱거리는 마루 바닥. 부엌 씽크대는 물론, 냉장고에 욕실 수준 등등. 일일이 표현 할 수조차 없다. 우리나라의 세련된 아파트 구조에 비하면 어림도 없는. 그래도 신기한 것은 그냥 그대로 세가 잘 나간다는 거다.
뉴욕의 예를 들자면, 월세를 얻을 때 부동산에 의뢰를 하면 반드시 몇 가지의 기본적인 양식에 사인을 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나 같은 이민자들은 묘한 기분이 든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셋돈을 못 받을까 염려되니까 신용이 확실한 세입자들을 원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반복된 금전적인 확인이 몹시 못 마땅했다. 이럴 땐 우리나라의 전세 제도가 얼마나 좋은지 새삼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계약이 성사되면, 보통 한 달에서 두달치의 월세를 보증금으로 받고, 한달치 월세에 해당하는 금액을 부동산 수수료로 내게 된다. 세입자가 수수료를 부담하는 것은 정말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었는데 달리 방법이 없으니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는 주인이 부동산에 자기 집을 내 놓을 때 일부 부담도 하는 등 조건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타민족인 우리에게 절대로 유리하진 않다. 계약 조건도 그렇고.
부동산 브로커가 친절을 베푼다고 생각진 말아야 한다. 돈 되는 쪽으로 항상 유리하게 작용을 하니까 말이다. 여러 가지 일 들을 겪은 후에 드디어 미국 이민살이 첫 집을 결정하게 되었다.
나중에 뉴욕에 도착해서 남편이 내미는 계약서를 보니 정 떨어지는 내용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모든 조건이 죄다 집주인을 위한 것이었다. 시간이 급한 탓도 있었지만, 남편은 한국에서 살 때 이런 경험이 전혀 없어 그저 브로커가 내미는 대로 사인을 한 모양이었다.
역시나, 미국의 삷은 보통의 인내심으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나라인 것 같다는, 어쩐지 불길한 생각이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