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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선교사, 시인으로 가족과 함께 몽골에 살고 있다. <시인>이란 명칭이 더욱 마음에 드는 이유는 "깃털 같은 가벼움, 맑은 개울물의 낭랑함, 그리고 바람 같은 자유로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몽골생활의 희노애락과 몽골인들의 이야기로 글벗을 만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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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그트의 독백

글쓴이 : 황선국 날짜 : 2012-01-09 (월) 09:06:05

오래 전,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H.W.Longfellow)는 이렇게 읆었다.


 

나에게 슬픈 곡조로 인생은 한낱 공허한 꿈이라 말하지 말라.

.......

인생의 광대한 싸움터에서, 인생의 야영장에서

말없이 쫓기는 가축의 무리는 되지 말자!

이 투쟁에 앞장서는 영웅이 되자. -(인생찬가 중)


 

  


같은 대지 위에서 살아가지만 서로 다르게 펼쳐지는 두 종류의 인생이 어쩌면 이렇게도 절묘하게 표현됐을까! 인생의 광대한 싸움터에서는 말없이 쫒기는 가축의 무리가 있다 한다. 그저 하루 뜯어먹을 풀만 있으면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침묵하는 무리가 있다 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무리에 휩쓸려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안전하고 가장 의미있는 삶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축의 무리는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 한다. 혹시 그 무리 중 하나가 야수의 먹이가 된다해도 그저 위기를 모면한 것에 위안을 받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정도다. 이런 무리들은 설사 큰 건물을 짓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해도 인생이란 한낱 공허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슬픈 곡조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니 그 노래소리가 아무리 우렁차고 크다해도 그 속내는 공허할 뿐이다.

자기 자리와 체면만 유지할 수 있으면 법이나 정의 혹은 비전이니 하는 말들은 귓전으로 듣고 흘려버린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誤算)이다. 이 쫓기는 가축무리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이 살 길을 찾아 열심히 생각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면서도 다른 놈에 대해선 잔인할 정도로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또 한가지 사실은 이처럼 조롱과 비난을 받는 ‘가축의 무리’ 속에 바로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내가 이 무리 속에 들어와 서성이고 있는 것일까? 그건 나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에게도 할 말은 있다. 그건,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아직도 나는 종종 꿈속에서 영웅의 꿈을 꾸곤 한다는 것이다. 영웅, 모름지기 수컷으로 태어난 놈이라면 한번쯤은 밤잠을 설쳐가며 궁리하고 궁리했을 법한 낱말이 아니던가! 수컷이라면 한번쯤은 깊이 생각하고 전략을 세웠을 법한 낱말이다. 나 역시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오래 전의 그 어느날로 기억되지만, 수백의 말무리의 앞장에 서서 휘날리는 갈기 뿌연 흙먼지로 폭풍처럼 내달리는 꿈에 한껏 가슴 부풀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사 뒤늦게 깨닫게 된 삶의 비밀이 있다. 그것은...그것은 슬프게도 누군가가 나의 고환을 이미 빼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 나이쯤이면 한 떼 말무리를 이끄는 종마(아자락가,GPGJUG)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내게는 그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먼 꿈으로만 느껴졌다. 더욱 이상한 것은 어느날부터인가 내게서 생식의 욕구도 사라지고 그저 누렇게 색바랜 풀일지언정 먹을 것만 보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여느때처럼 풀이나 더 뜯어먹으려고 초원을 서성이다가 모든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도 우연히, 아주 우연히 말이다. 치기 어린 소년들과 장정(壯丁) 몇몇이 이제 갓 세상에 대해 막 눈을 떠가는 어린 말들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날카로운 비수로 그 어린 놈들의 사타구니에서 피묻은 고환을 빼내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내 몸에서 사라진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아니 내 정신과 영혼에서 무엇이 사라지게 되었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저 고환이었던 것이다. 그랬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갑자기 나는 슬픔 어린 분노로 온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년들은 낄낄거리며 그 피묻은 고환을 불에 구워 진한 농담을 섞어 맛있게 먹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큰 목소리로 울부짖고 싶어졌다. ‘히힝-’, 그런데 목소리가 이상했다. 그렇구나, 내 목소리도 바뀐지가 벌써 오래 되었구나! 그런데도 나는 내 목소리가 종마의 울부짖음과 같을거라고 착각하며 살았었구나! 그런데 왜 여태 몰랐다가 이제야 알게 되는걸까? ‘키힝’하고 울어야 하는데 왜 ‘히힝’이라는 소리가 나는걸까? 나는 그 날 내 생전 처음으로 풀도 먹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불현듯 스치는 불길한 생각에 또 한번 몸서리쳐야만 했다. ‘이 눈물도 분명 종마의 눈물보다 염분이 더 적을거야! 이건 진한 눈물이 아니라 묽은 눈물일거야!’

나는 그 날 눈물도 맘껏 흘리지 못하고 밤새 울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이 다가올 무렵, 난 이렇게 다짐했다; “내 고환을 기필코 다시 찾고야 말리라!” “이제 다시는 인생이란 한낱 공허한 꿈에 불과하다는 노래는 듣지도 부르지도 않으리라!” “이 광대한 인생의 싸움터에서 결코 쓰러지지 않는 영웅이 되리라!”

<해설>

gum(아그트) 는 거세(去勢)한 수말들을 가리킨다. 몽골에서는 우성(優性) 유전자를 지닌 종마(gpgjug 아자락가)로 선택된 수말을 제외한 모든 수말들은 거세한다. 말하자면 종마를 제외한 모든 수말들이 ‘아그트’인 것이다. 좋은 후손을 보기 위한 거세는 말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소위 몽골에서 오축(五畜)이라 불리우는 ‘말, 소, 낙타, 양, 염소’로 태어난 모든 수놈들이 공동으로 맞이하게 되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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