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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
뉴욕에서 1991년 문화이벤트사 ‘오픈 워크’를 설립한 필자는 20여년간 북미 지역에 한국 영화, 공연, 전시를 기획해 왔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 회고전을 비롯, 최은희, 김지미, 고은정, 박완서, 안숙선씨 등 쟁쟁한 한인 예술가들을 미 주류 무대에 알린 주역이기도 하다. 한인예술인부터 주류사회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뉴스메이커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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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새색시의 ‘로마의 휴일’

글쓴이 : 한동신 날짜 : 2012-06-25 (월) 11:53:07

세상기준으로야 기절할 나이의 신부였지만, 신혼여행에 잔뜩 부풀어 있는 새색시가 나였다. 초여름이긴했지만, 로마의 기온은 이미 후끈 달아 있는 내 체온보다 훨씬 뜨거웠다.

공항에서 호텔이 있는 시내까지 버스를 타자고 우기는 신랑에게 못 이기는 척, 순순히 굴었던 것은 냉방장치 잘 된 버스에서 3년 안에 재벌사모님 되는 꿈이나 꾸어 보자는 속셈에서였다.

 

▲ Novana Plaza: 로마인들과 세계인들이 만나는 나보나 광장

‘이토록 근검절약이 몸에 배인 남자를 만나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가!’- 달콤한 잠에 푹 빠진 나를 흔들어 깨운 사람은 다름아닌 운전기사였다. 쏠라쏠라대는 이태리말은 나만 내리면 빈 버스라는 “아줌마, 종점이요!”라는 듯, 이미 남편은 버스 밖에서 지도를 훑고 있었다.

 

허겁지겁 버스에서 뛰어 내리며 “아저씨, 내 신랑맞아요?” 로 괴성(怪聲)을 지르는 내게 “새색시답게 머리 먼저 빗으셔.”로 받으며 앞서 걷는 무정한 남자의 뒷통수가 낯설기만 했다.

“지도를 볼만큼 또 한참 걸어야 되는거야?”

목청을 돋우며 헉헉 뒤쫓는 색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신랑을 졸졸 따라 가야만 하는 내 처량한 신세는 어둡기만 한 내 길눈 탓이었다.

  

“근데, 약도가 잘못된 거 아니야? 자꾸 언덕으로 올라가잖아?”

가도가도 도무지 시내같이 생긴 곳은 보이지 않고, 자꾸자꾸 으슥한 언덕배기로 접어들었다. 급기야 남편도 당황하는 눈치였다. 바로 이때였다. “부릉부릉, 부르르릉.......”

갑자기 개미떼처럼 줄지은 스쿠터족들이 언덕을 향해 질주해 오고 있었다. 햇볕이 쨍쨍 내리 쬐는 대낮에 우리쪽으로 스쿠터족들이 떼지어 몰려 오고 있었다. ‘오냐, 순발력이란 지금 쓰라고 생긴 단어라니까!’ 영화 ‘도망자’에서 본대로 냅다 남편의 등을 떠다 밀고, 나역시 뒤따라 하염없이 언덕을 굴렀다.

 

▲ 로마의 명소 Spanish Steps. 위쪽에서 내려다 본 앵글이다.

“꽈당!” 시멘트바닥에 몸이 부딪혀 심한 통증을 느끼는데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스페니쉬 스텝(Spanish Steps)’에 앉아 우리의 언덕구르기를 지켜보던 청춘남녀들의 박장대소(拍掌大笑) 먼지를 뒤집어 쓴 우리꼴을 따지기에 앞서, 이유야 어쨌든 지름길로 시내중심에 들어 선 우리의 행운에 신바람이 난 나도 따라 웃었다.

“이 여자 정말 큰 일 낼 여자야. 언덕에서 그렇게 사람을 밀면 어떡해! 기가 막혀 말이 않나온다니까.”

털어 봐야 별 볼일 없건만, 남편은 먼지를 계속 털며 화를 버럭 냈다.

 

▲ Spanish Steps를 배경으로 한 영화 '로마의 휴일'

“더운데 열까지 받지 마셔! 아니, 가만..아니, 저런..!”

숨돌릴 틈도 없이 눈 앞에 진풍경(珍風景)이 펼쳐지고 있었다. 명품가방을 주렁주렁 몸에 걸고, 화려한 상점에서 쏜살같이 튀어 나오는 청년을 향해 여점원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소용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 영화 '로마의 휴일'의 한 장면 

도둑질도 괘씸하건만, 달아나면서 훔친 가방으로 사람을 치는 버릇은 더욱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언덕구르기로 온 몸이 욱신거리는 나를 그 단단한 가죽으로 치고는 달아나는 ‘도둑잡기’에 인사불성이 되어 따라 붙었다. 약이 오르니 거북이 뜀박질에도 가속이 붙고, 날으는 가방도둑에 달린 가방들의 끈을 있는대로 부여잡고 질질 끌려가는 나를 누군가 덥석 품어 안는다.

 

이제는 정말 할말을 잃었는지 남편은 나를 안고 소리내어 울기만 하는 그의 어깨너머로 가방도둑이 백차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백차의 사이렌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모여든 사람들이 희미하게 보이자 내가 잠시 정신을 잃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짜 계속 이렇게 사고칠거지? 만만치 않은 나이에 애들처럼 좌충우돌. 오늘 당장 뉴욕으로 돌아가서 다음 얘기를 하자구!- 기절초풍한 남편의 대사를 내가 선수치자, 남편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지금부터 고개 푹 숙이고, 벙어리 시늉을 하는거야. 저어기 왼쪽에 키 큰 남자보이지? 기자란다. 내일 조간에 당신이 헤드라인 후보래.”

나를 가슴에 파묻고, 살금살금 군중을 헤치며 걷는 남편에게서 진한 땀내를 맡는다.

 

▲ Roman Holidays!: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난투극을 벌인 뒤에 마침내 트레비분수 앞에서 즐기는 물맛!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휴일. 그 이후 또 얼마나 많은 여름이 오고 갔던가..그리고 그가 여전히 나와 함께 걷고 있다. 오늘도 어제처럼. 그래서 오늘, 그 사랑의 힘으로 나는 아침을 열고 있다.

 

▲ Mother & Child: 성모자상앞에서 남편이 찰깍 찍어 준 이 사진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진이 되었다.


김성아 2012-06-25 (월) 13:07:52

한동신선생님, 로마여행 잘하고 갑니다.^^;; 마지막 사진은 영화속 한장면 같이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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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신 2012-06-25 (월) 17:58:56
오래간만에 빛바랜 사진들을 보니, 정말 세월이 유수같이 흐르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93년이었으니, 이제 곧 20 년 전의 사진이 되겠지요?
지난 세월, 군말없이 옆에서 함깨 해 준 남편이 새삼 고마워 쓴 글입니다.
김성아선생도 언제나 꾸준히 봉사하는 모습에 멀리서 바라 보는 여러 어르신들의 칭찬이 자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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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춘 2012-07-14 (토) 00:30:45
그냥 ~ ~ ~ 아름답다 !!! 합니다 ! ^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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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 2012-07-27 (금) 01:57:34
한동신대표님, 쓰신글 보니 2009년에 로마에 갔었던 생각이 납니다. 로마에 들어 가자마자 뭔가 술렁이는 들뜨고 행복한 도시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트래비 분수에다 동전 던져 놓고 왔으니 다시 돌아 갈 날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항상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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