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미국이 북한문제를 두고 골치를 앓던 2002년 무렵, 예기치않게 내 사무실의 전화에 불이 붙었다. 이유인즉슨, 철갑을 두른 북한과 김정일에 접근할 수 없었던 미국언론이 북한관계전문가로 신상옥감독을 점찍어 놓고, 신감독과의 인터뷰에 몸이 달아 내게 보내는 신호였다.
그 해 초 봄, 현대미술관(MoMA)에서 마친 ‘신상옥감독회고전’의 큐레이터였던 내게, 신감독의 연락처와 근황을 묻던 텔레비젼의 프로듀서는 대뜸 “서울에 살고 있는 신감독을 만난 후에 약 3시간정도 시간이 있는데 한국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정치적인 프로그램에 뜬금없이 웬 문화얘기?’하는 나의 의중을 꿰뚫은 듯, “북한에 대해 정보도 없지만, 사실 한국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어요. 그 나라를 빠른 시간내에 파악하려면, 문화와 예술을 봐야 합니다”하는 그의 말에 “내가 문화기획자 맞어?’를 자문하며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재래시장과 이천의 도자기마을을 소개하는 내 얘기를 듣고 있던 그 프로듀서는 “이해하기 어렵군요. 잠깐 들었지만, 이토록 재미있고 수준 높은 문화가 묻혀 있다니...”로 내 말을 받았다.
일단 연락이 됐다 하면 집요하게 따라 붙는 저널리스트의 근성때문인지 당장 만나자는 그의 제안에 그를 한국식당으로 초대했다. 꽤 오랜 시간, 내가 설명하는 한국문화와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던 그는 스스로를 ‘우물안 개구리’라고 불렀다.
현재 뉴욕에 살고 있는 한인이 어림잡아 40만이요, 그동안 한국 예술공연도 뉴욕무대에서 자주 올려 졌다는데, 공연을 한번도 본 적이 없음을 통탄해 했다. 게다가 그 날 처음 맛 본 한국음식도 훌륭하다는 칭찬을 곁들이며.
▲ 사진=뉴스로 DB
쉬지 않고 한국 문화와 예술을 추켜세우는 유명한 프로듀서 앞에서 ‘숨겨진 보물지도’가 묻혀 있는 곳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처럼 내 마음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대중매체, 그 중에서도 유력한 방송국의 프로듀서답게 그는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쏟아 냈다.
유럽은 물론, 중동지역과 티벳, 인도 등 여러 지역의 문화,예술에 대해 피력하던 그가 “또 하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인이 없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되요”하는 말에 내 귀가 뜨끔거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인...’을 더듬는 내게 “엄밀히 말하면 그 사람들은 한국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두 외국에서 자기의 커리어를 쌓은 사람들이니까요”로 받는다. 궁하면 생각치도 않던 말이 불쑥 나온다.
갑자기 세종대왕, 이순신장군, 신사임당, 황진이, 유관순, 안중근의사 등 평소에 존경하는 인물들에 대해 입심좋게 풀어가자 그의 얼굴이 환해진다. 한글과 금속활자를 자랑하는데 저절로 어깨가 쭈욱 펴지는 나를 보며,“그것봐요. 한국은 위대한 사람들과 자랑거리가 너무 많아요. 그것을 제대로 알리는 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하며 그는 크게 웃었다.
외국인 프로듀서와 대화를 나누며 ‘나-한국인은 누구인가?’를 배운 귀한 클래스의 추억을 되새기는 요즘이다. 문화와 예술기획을 天職(천직)이라 믿고 사는 나의 가을은 수북이 쌓이는 초청장으로 시작된다.
더욱이 해마다 급격히 늘어가는 한인 예술가들의 갤러리 오프닝, 공연을 열심히 찾아다니다 보면 24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지경이다. 늘어난 숫자만큼 작품수준도 대단히 높고, 예전과 비교도 안될만큼 기획력도 우수하다.
그러나 이른바 뉴욕의 문화, 예술계와 당당히 경쟁해도 손색이 없는 뛰어난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아 아쉽다. 아무도 자신있게 검증할 수 없는 “한류열풍”의 신화에 젖어 정작 겨루어야 할 싸움터인 뉴욕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덤비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점검해야 할 때다. 뉴욕은 미국에 있는 한 도시가 아닌, 바로 세계 문화, 예술의 메카이기 때문이다.
뉴욕의 화랑, 무대에 서기 전에 만반의 준비가 우선되야 한다. 실력으로나, 기획준비단계에서 뉴욕에 남을 한국의 빛깔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야 한다. 뉴욕무대에 도전한다는 것은 바로 심장에 태극기를 달고 뛰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국가대표선수는 개인의 영광이자 그 나라의 얼굴이다. 그 얼굴엔 개인욕심을 앞세워 세상을 기만해서도 않되며, 자신의 역량부족을 남의 탓으로 돌려서도 안된다. 허황된 욕심으로 뉴욕을 향해 덤비는 일부 예술, 문화인들의 행동거지를 아슬아슬하게 지켜보게 된다.
한국영화하면 한복을 휘감고, 기와집과 가야금으로 도배한 영화만이 국제영화제에 나가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각 분야에 권위있는 그 누구를 만나도 한국 문화, 예술의 뒷 배경을 설명하지 않고도 작품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있는 한국의 예술정신과 비전이 절실하다.
* 이 칼럼은 뉴욕중앙일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