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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토너 에반엄마'는 현재 뉴욕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사랑캠프 참가와 '민들레 에세이'가 계기가 되어 아들 에반이와의 이야기를 풀게 되었습니다. 자폐와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많은 이해와 공감이 생겨나길 소원합니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분들!!! 언제든지 말 걸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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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어서 이민가고 싶어요

글쓴이 : 마라토너 에반엄… 날짜 : 2012-03-08 (목) 13:40:29

에반이 엄마에게 글을 쓰는 것은 혼자 완전 폼나게 우아한 척하면서 녹차를 홀라당 들이키는 새벽녁 쯤입니다. 머리는 완전 뻗치고 너덜너덜한 추리닝을 입고서 말이죠(^^). 에반이도 푹 자겠다 기분이 완전 업이 될 때기에, 글을 써내려갈 때 만큼은 제 명랑발랄천방지축이 손끝을 타고나와 자판을 톡톡톡톡 하면서 사샤샥~하고 초스피드로 써내려갑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이의 자폐로 이민을 고민하고 물어보는 이메일을 받고 답장을 할 때 만큼은 제 톡톡 스피드에 브레이크를 천만번 걸어 두고 꾹꾹 붓글씨를 눌러쓰듯이 천천히 자판을 누르게 됩니다.

꾸욱 꾸욱 천천히 누르는 자판에는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한 저에게 뉴욕에 산다는 그 이유만으로 아이의 자폐에 가슴이 무너져갈 것 같은 절대적인 시급함에 이메일을 쓰셨을 한국에 계실 엄마아빠님들에 대한 저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조심함이 배어져 있으며, 한글자 한글자를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함에는 마음이 시급한 엄마아빠님들에게 자칫 콧대 높은 조언으로 비추지 않으려는 配慮(배려)가 깔려 있는 것을, 제 이메일을 받으신 엄마아빠님들은 아실까요?

이민에 관련된 이메일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첫번째는 워낙 한국에서는 자폐에 관한 서비스나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니, 아무래도 제도가 잘 되어 있다는 미국에 가면 우리 아이가 좋은 교육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민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구요.

두번째는 내가 죽고 나서 아이가 혼자 살아야 할 때 한국은 도무지 자폐인이 살 수 있을 곳이 못되니,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앞서가는 미국이라면 그래도 아이가 사람 대접은 받고 살 수 있으니 이민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입니다.

 

에반이는 에반이입니다. 중증자폐사실을 알았을 3년 전의 에반이나 자폐아로 2년을 살아온 지금의 에반이나 쌔끈하게 웃을 때 그 누구보다 행복한 아이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에반이가 두살이었을 때의 자폐를 보는 사람들의 눈과 다섯살인 지금의 자폐를 보는 사람들의 눈은 확연히 달라져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폴짝폴짝 뛰는 2살의 에반이는 지하철 모든 사람들이 다들 자기 눈에 한번 쯤은 넣으려는 듯 ‘저 녀석 귀여워 죽겠군’하는 눈빛 가득한 웃음꽃이 함박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섯살이 되어 엄마가 계속 앉으라고 하는 말은 아주 가뿐히 안 들어주시면서 쿵쿵 뛰는 에반이에게 사람들은 눈꼬리를 제법 올려줍니다. 앞으로 에반이는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여 많은 발전을 이루어나가겠지만, 에반이의 자폐가 더이상 귀여운 어린아이의 패스로 넘어가지 않게 될 때가 아마 눈 깜짝할 사이에 오겠지요.

그럴 때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아빠님들이 끊임없이 내 아이 그대로를 사랑해주면서도 사회에서의 냉랭하기만 한 눈총들을 툭툭 떨쳐내버릴 수 있는 묵직한 긍정적인 마인드를 명치 끝에 꾹 묻어놓고 놓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는 것, 자폐를 안고 있는 우리 아이를 가진 엄마아빠님들 다 아시지요.

그런데 이민이라는 요 놈이 만만한 놈이 아니라서 안그래도 자폐아를 키우면서 멍들어 있는 엄마아빠님이 새로운 미국 땅에 발을 디뎠을 때, 자칫 마음에 큰 흠집을 낼까 에반이 엄마는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그 마음의 흠집이 커져서 스스로 너무 힘들어 아이를 보듬어 줄 마음 한구석의 빈 자리마저 내주지 않을까 많이 걱정됩니다.

영어 친구가 입에서 편하게 나오지 않으신다면 더욱더 이민 놈은 엄마아빠님을 잡고 휘둘겠지요. 아무리 주머니에 두둑한 돈 친구가 있다 하더라도 아이의 좋은 서비스나 학교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영어 친구 도움이 절실한데 언제까지 교포사회에 한국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안주할 수도 없는 일인거구요. 그리고 영어 친구가 입에서 편하게 나오시는 엄마아빠님들의 경우에도 새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가끔씩 한국이 눈물나게 그리울 정도로 닭가슴살처럼 퍽퍽할 따름입니다.

에반이 엄마는 다행히도 영어 친구에 대한 고민은 없기에 이곳에서 자폐아를 둔 1세 부모님들을 많이 도와드릴 수 있는 감사한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오는 1세 부모님들은 먼저 이민을 오셔서 열심히 살아가시다가 아이를 낳은 후 아이의 자폐사실을 안 경우입니다. ‘열심히’ 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살아가시는 우리 부모님들에게 이민 놈의 문화적, 언어적,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펀치를 꿋꿋이 버텨내시는 가운데, 아이의 자폐사실은 절대적 고통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오는 표현할 수 없는 우울함과 무력감의 늪은 끝을 알 수가 없을 정도라 하셔서 제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합니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로 마음이 너무 힘이 드셔서 좋은 학교 좋은 서비스를 아무리 알아다 보고 가져다 드려도 그대로 다 흘려보내시며 ‘나 솔직히 포기했어요 그저 똥오줌이나 제대로 가리기나 했으면 좋겠어요’ 라고 눈물바람을 하시는 엄마님을 보고 에반이를 보면서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저는 그렇게 흘렸습니다. 도저히 집에서 발한치를 뗄수 없을 정도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이 드는 그 마음이 아픈 분에게 아이를 보듬어줄 마음한 켠이 그렇게 닫혀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폐를 안고 있는 아이만을 위해서 이민을 오신 부모님들께 이민 놈의 펀치는 아마 갑절로 매울 것입니다.

 

작년 여름 한국에 나갔을 때 저는 많은 좋은 움직임을 보았습니다. 자폐아를 가진 엄마아빠님들은 제 생각을 훌쩍 깨뜨릴 정도로 적극적으로 쿨하게 사회에 발을 내딛고 계셨거든요. 특히 한국자폐인사랑협회에서 개최하는 자폐아와 가족들을 위한 사랑캠프에 참여했을 때 보았던 한국에서의 장애아를 둔 엄마아빠님들은 너무나 멋있으셨습니다. ‘다름’을 타고난 우리 아이들을 사회가 그대로 보아주게끔 묵묵한 개미군단으로 남아 있던 그들. 그들의 멋진 모습에 감동했으며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쿨한 모습이 계속 사회에 보여질수록 우리 아이들을 보는 시각도 부드러워질 것이고, 나아가 정책적으로도 아이들이 보듬어질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 곳 뉴욕에서도 눈에 눈물을 맺히게 하는 사건들은 튀어져나옵니다. 발달장애/지체인에게 부모 동의 없이 약물 과다 투여를 한 그룹홈과 시설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읽을 때, 성인이 된 자폐아가 엄마아빠가 죽자 갈 곳이 없어 보호자를 찾고 있다는 지역뉴스를 들을 때, 정부에서 마련된 일자리가 충분치 못해 고등학교를 마치고 하루 종일 엄마랑 있는 자폐청년을 둔 엄마들을 만날 때, 저의 머리털은 머털이 마냥 곤두서면서도 그러한 현실을 뿅하고 고칠 수 있는 道術(도술)이 없어 마음이 먹먹하고 갑자기 막 조급해져 옵니다.

미국이 한국보다 장애인에게 따뜻한 곳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장애아를 둔 엄마아빠님의 노력이 몇십년 전부터 꾸준히 쌓아져왔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저는 반드시 이러한 노력이 한국에서도 꾸준한 결실로 나타날 거라 믿습니다. 제가 작년 한국에서 본 짧은 시간의 靑寫眞(청사진)이었지만, 엄마아빠들의 눈물이 뿌려진 이 곳 미국에서의 움직임이 한국에서도 의미깊게 나타나는 것을 저는 보았구요. 그 움직임이 계속 쌓여갈 때 충분히 한국은 우리 아이들이 한결 보듬어질 수 있는 사회로 거듭날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금은 힘들어도 아이를 끌어안고 엄마아빠가 이민놈이라는 강력 펀치에서 비껴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붙잡을 수 있는 한국 땅이 저는 그래도 엄마아빠님들이 아이들을 키울 곳이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미국 내 자폐 커뮤니티의 움직임을 한국에 알려서 한국에 계신 쿨한 엄마아빠님들의 쿨한 자폐인을 위한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쉬워지게 하는 노력이겠지요.

아 글이 길어졌어요. 쓰는 시간도 평소보다 훨씬 많이 걸렸어요.

글을 쓰는 마음이 아마 조심스러워 그랬나 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칼럼은 한국자폐인사랑협회(http://www.autismkorea.kr) 해피로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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