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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임의 뒷골목 뉴욕
중앙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뉴욕대학 대학원에 유학, 미국의 유명 광고회사에 취직해 미국동포 소릴 들으며 산지 17년. 기자로 출발,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공연기획자, 또 구멍가게 주인으로, 그것도 모자라 연극 연출에 자유기고가로 사는 자유인. 그럼에도 불변하는 한 가지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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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 맨과 뒤렌마트가 함께 무대에 오르는 브로드웨이

글쓴이 : 앤드류 임 날짜 : 2015-10-18 (일) 13: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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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에서 여행 온 한 지인이 여행책자를 보여주며 꼭 가봐야 할 곳을 골라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발간된 그 여행책자에는 뉴욕시에서 봐야할 필수 관광 코스 중 하나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소개되고 있었다. 한국 뿐 아니라 뉴욕을 여행하는 전 세계의 관광객들에게 브로드웨이 공연은 반드시 봐야할 뉴욕의 명물(名物)로 인식되고 있다.

 

뉴욕의 필수 관광 코스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면에 브로드웨이 공연은 이제 관광상품으로 전락했다는 인식 또한 자리하고 있어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뉴욕에서는 매일 250편 이상의 작품이 공연되고 있다. (이는 뉴욕타임즈에 리스팅되는 공연만을 기준 삼은 것이므로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공연이 뉴욕시 전역에 펴진 소극장들에서 매일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오프 브로드웨이 공연이 약 120,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 작품이 약 90편 가량이다. 나머지는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큰 규모의 공연들을 의미하며 대략 50편이 넘는다.

 

이해를 돕기 위해 브로드웨이와 오프 브로드웨이 그리고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의 구분을 간략히 설명하면, 사실 이 구분은 지역적 개념이 아니었다. 추구하는 성향(性向)에 따른 분류였다. 예술성이나 앙상블 보다는 유명 배우들을 내세워 흥행을 도모하는 스타 시스템과 대자본의 공연이 주류를 이뤄 소규모의 순수 연극이 설 자리를 잃는 것에 반기를 들고, 연극 본연의 예술성을 찾자는 연극인들의 운동으로 시작된 것이 오프 브로드웨이이고 오프 브로드웨이 마저도 브로드웨이의 문제를 답습(踏襲)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오프 브로드웨이도 벗어나야 한다는 연극 예술가들의 더 급진적인 공연 창작 움직임이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를 태동시켰다. 브로드웨이 주변의 극장 구역(Theater District) 내에는 대규모의 공연장들이 들어차 있고 그러다 보니 비주류의 소자본 연극 단체들은 당연히 그 외곽 지역의 작은 극장들을 공연장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을 터, 지역적 구분은 그 결과로 생겨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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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런 역사적 개념은 사실 다소 모호해진 면이 없지 않다. 경향이 아닌 제작 규모와 공연되는 극장에 따라 오프 브로드웨이를 구분하기도 한다. 연극인들 심지어는 뉴욕 내에서도 지역적 개념으로 브로드웨이의 외곽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을 단순히 오프 브로드웨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오프 브로드웨이가 브로드웨이에 진출하지 못했거나 진출을 꿈꾸는 연극인들의 활동 무대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의 연극인들과 대화를 통해 이런 문제는 자주 발견된다.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겠지만 한 가지 바로 잡아야 할 것은 연극 예술인들이 브로드웨이 진출을 위한 전단계로 오프나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를 거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두 경향은 각자 독자적인 의미와 의도를 가진 창작자들의 활동 무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바깥에서 바라보는 브로드웨이가 뉴욕의 관광 상품 정도로 평가절하 되는 인식 속에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오늘 날 더 극단적인 모양으로 관객들 눈에 비춰지는 현상이 한 몫을 하는듯싶다. 요즘 브로드웨이 광고를 보면 뮤지컬들이 주를 이루고 그 마저도 라이온 킹이나 스파이더 맨같은 영화나 심지어는 만화를 원작으로 삼는 공연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보니 요즘 브로드웨이가 관광객들이나 흥미를 가질법한 놀이공원의 를 공연하는 곳으로 전락했다고 인식되는 것이 아닐까싶다. 과거 미스 사이공이나 캣츠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등과 함께 장기 흥행을 하던 시절에 비해서 그 레퍼토리가 경박(輕薄)해졌다는 느낌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브로드웨이가 일반에게 주는 인상만큼 관광 상품 정도로 전락한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파이더 맨이나 알라딘’, ‘라이온 킹같은 공연만이 브로드웨이 무대를 대표하는 게 아니다. 사실 스파이더 맨이나 라이온 킹도 제목만으로 평가 절하할 수는 없다. 이 공연들도 브로드웨이의 한 경향으로 상당수의 관객들을 극장에 모으고 있다. 각각 다른 언어권에서 온 관광객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가벼운 내용의 공연들이 뮤지컬의 형태로 제작된다고 해서 브로드웨이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공연에 대한 평가는 공연의 완성도에 가장 큰 평가의 비중을 둬야한다. 물론 라이온 킹에서 고전 작품들이 주는 문학적 깊이나 감동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볼만하다. 가족들이든 관광객이든 관객들을 실망시킬 정도의 완성도는 아니다. 예를 들어 라이온 킹에서 배우들이 동물의 탈을 쓰고 각 동물들의 움직임을 무용적으로 형상화한 부분에서는 아름다움이 느껴지고 분명한 감상 가치가 보인다. 오히려, 디즈니 만화든 공상과학 영화의 소재든, 이 정도 수준의 공연만 되면 브로드웨이에 올라갈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의 비중은 여전히 크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만큼의 절대적 비율은 아니라는 점 또한 의외라 느끼실지 모르겠다. 브로드웨이에서 매일 올라가는 50여 편의 공연 중에 반 조금 넘는 정도가 뮤지컬이다. 나머지는 창작극 또는 고전 희곡을 공연하는 정통 연극들이다.

 

먼저 뮤지컬을 살펴보면,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이나 얼마 전 다시 리바이벌된 레 미제라블등은 여전히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있으며,’시카고역시 장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티켓 구하기가 어려워 몇 달을 기다려야 볼 수 있는 몰몬의 책(The Book of Mormon)’, ‘왕과 나’, ‘지붕 위의 바이올린’, ‘져지 보이스등도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성황리에 공연 중인 일반에게 낯익은 뮤지컬들이다. 이 밖에 올해 토니상 최우수 뮤지컬 상을 수상한 킨키 부츠나 장기 흥행 중인 마틸다등이 여전히 성황(盛況)을 누리고 있다. 새로 쓰여진 뮤지컬 작품들 중에는 ‘Gotta Dance’네버랜드를 찾아서그리고 ‘Allegiance’가 등이 골수 뮤지컬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작품들 말고도 훨씬 많은 수의 공연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고 라이온 킹알라딘은 이 오십여 편의 작품 중 일부다.(참고로 스파이더 맨은 수많은 사건 사고로 화제를 뿌리다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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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킹알라딘같은 뮤지컬들이 브로드웨이의 한편에서 관광객들과 가족 관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오페라의 유령레 미제라블같은 뮤지컬의 고전들이 두 번 세 번 같은 공연을 찾는 뮤지컬 매니아들의 향수를 달래주고 있다. 동시대의 민감한 이슈인 동성애의 정당성을 통렬한 방식으로 웅변하는 킨키 부츠같은 공연은, 작품이 갖는 설득력에 보수적인 관객들은 섬뜩함마저 느낀다. 이런 점에서 몰몬의 책의 장기 흥행은 놀라움을 더한다. 특정 종교(종파)의 제한된 소재로 자신들의 신념을 매일 수천명의 관객들에게 이토록 강렬하게 전파하고 있다는 사실은 연극과 뮤지컬이 갖는 위력을 실감케 하고도 남는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뮤지컬들이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공연되고 있는 곳은 그러나 브로드웨이의 반쪽에 불과하다. 브로드웨이에 있는 절반의 극장에서는 고전과 새로 창작된 순수 연극들이 진지하게 또는 경쾌하게 때로는 소름끼치는 냉소(冷笑)를 머금고 무대에 오른다. ‘밤으로의 긴 여로’(유진 오닐 작), ‘다리 위에서의 조망’(아더 밀러 작) 등 연극사에 남은 고전들이 동시대의 무대에서 삶과 사회에 대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을 쏟아내고 있고 ‘China Doll’,‘The Gin Game’ 등의 신작들은 알 파치노나 제임스 얼 존스 같은 유명 배우들을 출연시켜 헐리웃의 공상과학 영화 부럽지 않은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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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연극 무대에 이처럼 수많은 관객들이 몰릴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스타 시스템에 의한 것이라 해도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타 시스템 아니라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작품이 시원찮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공연들만 놓고 보면 스타 시스템은 상업성 보다는 자신감과 더 관련 있어 보인다. 얼마나 확신이 있었으면 검증되지 않은 신작에 이처럼 유명한 배우들을 엄청난 출연료 지불하며 캐스팅했겠는가. 연기는 커녕 제대로 연기 훈련조차 안 된 아이돌 스타들을 출연시켜, 흥행에는 성공하지만 정작 작품은 실망 그 자체인, 그야말로 스타가 전부인 스타 시스템과는 분명히 구분되어야하지 않겠는가.

 

현대의 고전이라 불리는 유진 오닐이나 아더 밀러의 작품들이 공연되는 극장도 늘 만원이다. 사실 이러한 공연들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고전의 깊이를 향유하고픈 골수 연극 관객들(theatergoer)들이 객석을 가득 메운다. 그것도 최소 서너 달은 되는 공연 기간 동안 매일 말이다. 천석이 넘는 극장에 순수 연극 공연이 매일 만원을 이룬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브로드웨이에서의 만원 관객은 뮤지컬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양해를 구하며, 최근 관람한 한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보탤까 한다.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현대의 고전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작 노부인의 방문이었다. 브레히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아 구조와 형식면에서 독특한 희곡들을 남긴 뒤렌마트가 어떻게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질 것인가에 대한 연극인으로서의 기대는 결코 실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원작보다 더 브레히트적이어서 놀라기도 하고, 동시대의 관객들을 위한 축약(縮約)과 변형(變形)에는 아쉬움도 있었던,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연출가의 독창성에 감탄하고 동의하게 만들었던, 한마디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공연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뒤렌마트의 작품을 용감하게 동시대 무대에 실험한 공연이었다. 본래부터 독특한 뒤렌마트 작품의 권위에 심지어는 연출적 독창성을 감히입혀가면서 말이다. 이 역시도, 브로드웨이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Hand to God’이라는 신작 연극도 평론가들에게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는 볼만한 공연이다. 손에 끼우는 인형(Puppet)을 복화술로 연기하며 조종자가 인형과 두 개의 인격을 연기하는 코믹하고 재치 있는 방식으로 선과 악 그리고 악의 필연적 탄생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 작품이다. 아이들이 보는 인형극의 이미지를 섬뜩한 그로테스크로 변모시켜 작가는 근원적 악에 대한 날선 질문을 원초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인형극이라는 흥행에 결코 도움 되지 않을 법한 도구를 빌려왔지만 이 공연은 연일 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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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에는 오늘도 요약하기 어려울 만큼의 다양한 공연들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브로드웨이가 오늘도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라이온 킹스파이더 맨에 몰리는 관광객들 때문이 아니다. 브로드웨이 생명력은 다양성에 뿌리를 둔다. 반목(反目)도 질시(疾視)도 폄하(貶下)도 없다. 내가 뒤렌마트를 공연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스파이더 맨을 공연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브로드웨이의 다양성은 건강한 혈액으로 브로드웨이의 혈관 속을 힘차게 흐르고 있다. 유진 오닐, 아더 밀러와 뒤렌마트가 라이온 킹’, ‘스파이더 맨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관객들에게 선택의 즐거운 고민을 매일 매일 안겨주는 다양성이 브로드웨이를 여전히 브로드웨이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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