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K-Pop의 전 세계적인 인기가 언론에 의해 실제 이상으로 과대 포장되고 있다고 여기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특히 한국에 계신 뉴스로 독자분들 중에 말이다. 한국의 언론이 주는 불신이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활약상마저 믿기 어렵게 만드는 현상이다. 도움은 못될망정...
K-POP의 실제 미국 내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미국에 사는 필자가 직접 증언한다면 신빙성이 더해지려는지. 그것도 평소 미국 가요든 한국 가요든 대중음악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말이다
한국가요 즉 K-POP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선풍(旋風)을 일으키고 있고 미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 것은 작년에 있었던 추석 대잔치 때의 일이다. 매년 미동부 뉴저지주에서는 한국의 연예인들을 초청해 추석대잔치라는 동포들을 위한 행사가 열린다.
행사가 열리는 곳은 내가 사는 곳에서 불과 한 블락 떨어진 야외공원이다. 지난 해 열렸던 행사에도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다만 예년과 차이가 있었다면 인파 중 상당수가 외국인(한국인이 아닌)이었다는 사실이다. 족히 3분의 1은 되어 보였다.
일요일이고 하여 담배 한 갑 사려고 나서는데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일찍 행사장에 나와 기다리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대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외국인들의 대화 속에는 낯익은 한국 이름들이 오르내렸다.
효리가 이번에 오기로 했었는데 안 왔다느니 걸즈 제너레이션의 어느 노래가 좋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오가는 걸 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노래 제목이 분명 한국 말 같은데 나는 그런 제목을 들어 본 적도 없다. 나보다 그 외국인들이 한국 연예인들과 대중가요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어색하고 놀라웠다. 전혀 다른 얼굴과 눈을 가진 그들이 어색한 한국 발음까지 써가며 한국의 연예인과 노래 제목을 얘기하고 있다니…. 물론 그 낯설음은 유쾌했고 은근히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나 같은 대중문화 문외한에게도 말이다.
한류, 특히 K-POP의 선풍을 미국에서 실감케 해주는 사건이 최근에 있었다. 바로 소녀시대의 미국 공중파 토크쇼 출연이다. 켈리 리파(Kelly Ripa)의 Live with Kelly라는 쇼에 이어 데이빗 레터맨이 자기 이름을 따 만들고 진행하는 유명한 토크쇼에도 출연했다. 둘 모두 미국의 공중파 방송 토크쇼를 대표하는 인기 있는 프로그램들이다.
소녀시대의 무대는 한국의 젊고 재능 있는 아가씨들이 보여준 최상의 쇼였다. 춤을 추면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데 어느 한 곳 삐걱거리는 부분이 없었고 스튜디오의 관객들과 시청자들을 매료(魅了)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국적 아름다움과 경쾌하고 섹시한 노래 세련된 춤까지 흠잡을 데 없었다. 만일 그들이 일본의 걸그룹이었다고 해도 나는 같은 칭찬을 했을 것이다.
소녀시대 무대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인터뷰였다. 노래 잘하고 춤만 잘 추는 아가씨들이 아니라 잘 배우고 명민(明敏)한 재주꾼들임을 보여주었다.
홍콩의 영화배우 등 동양의 연예인들이 미국 방송의 토크쇼에 출연한 예는 많이 있지만 이처럼 유쾌하고 재치있고 여유만만하게 인터뷰 한 사례를 본 일이 없다. 미국의 토크쇼에 출연하는 동양의 연예인들에게서 이상하리만치 흔히 발견되는 과장되고 우스꽝스런 몸짓-아마도 언어적 한계를 메워보려는 의도에서 나타나는 현상-도 없었다.
켈리 리파는 사전에 소녀시대 멤버들이 영어를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거침없이 영어로 질문을 했다. 티파니와 제시카가 인터뷰에 응했는데 사회자인 켈리 리파와 함께 진행을 맡고 있는 남자 진행자 하우위 멘델이 티파니에게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했다. 외국인임을 염두에 두고 당연히 영어를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때문에 한 말이 아닌가.
그다지 칭찬 같지도 않은 썰렁한 질문에 티파니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이쯤되면 진행자가 무안을 당한 셈이 된다. 사실 출연자에 대한 정보부족을 드러낸 것이니까.
멘델이 재차 큰 소리로 칭찬을 했다. “영어 잘하네요.” 그냥 고맙다고 한번 해주지 사전 정보나 준비 없이 나온 걸 들통내서 사회자를 무안하게 만드냐는 뜻을 담은 장난스런 항의였다.
티파니의 방송감각과 순발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남자 진행자의 의도를 정확히 눈치 채고는 방금 한 말은 잊어버린 것처럼 과장된 목소리와 몸짓으로 “아 고마워요. 영어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했거든요”하고 응수했다. 사회자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토크쇼의 게스트다운 재치를 발휘한 것이다.
많은 미국인 관객들과 카메라를 앞에 두고 긴장하는 빛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속된 말로 사회자와 관객들을 쥐고 흔들고 한 것이다. 그녀의 재치에 관객들은 박장대소(拍掌大笑)하며 박수를 쳐댔음은 물론이다.
자유로움과 폭넓은 국제 문화 속에 성장한 대한민국 젊은 세대의 영특함과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바로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세계의 눈을 한국의 대중문화로 돌리게 만든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한류와 K-POP의 열풍이 이유 있음을 보여준 아주 단편적인 예였다. 우리 젊은 연예인들은 기성세대가 모르는 사이에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과 나이답지 않은 여유, 청중을 압도하는 실력까지 겸비하고 있는 것이다.
비의 사진을 전화기 바탕화면에 담아서 다니는 파란 눈의 아가씨와 K-POP을 아이팟으로 감상하며 정확한 한국말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흑인 청소년을 보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다.
일부 특이한 취향을 가진 일부 외국인들의 수요가 아니라 그 나라의 연예인들과 경쟁을 하며 당당하게 대중적 수요를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류와 K-POP 열풍은 바야흐로 실제 상황임을 뉴욕의 뒷골목에서 나는 보았고 들었고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