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남편 리챠드는 나에게 테이블을 만들어 준다며 원하는 모양을 그리라고 했다. 그래서 디자이너의 실력을 발휘해 우리 집 뒤뜰쪽으로 난 창문 코너에 딱 맞는 책상을 그려서 주었다.
그로부터 몇달이 지난 4월 15일, 생일 선물이라며 지하실에서 한참을 걸려 만든, 빨강과 검정이 세련되게 조화를 이룬 꼭 이태리 사무가구 같은 멋진 책상을 만들어 줬다.
▲ 남편이 생일선물로 정성껏 만들어준 책상
결혼하고 얼마 안됐을 때 시어머님께서 “남자는 40살이 되면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새 사업을 하든지, 새 취미를 갖든지, 전혀 다른 쪽으로 사람이 변한다”고 충고하셨을 때 무슨 말인지 몰랐다.
파슨 스쿨의 구두 디자인 코스에서 1984년에 만나서 2년 간 데이트 하다가 결혼했고 내가 가자고 하는 모든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결혼식이나, 교회나, 음악회나, 전시회도 잘 같이 다니던 사람이었다.
▲ 연애하던 시절의 남편
그런데 결혼 10년 후, 더 이상 한국 사람들 모여서 모두 한국말로만 서로 대화하는데, 혼자 말없이 점잖게 앉아 있는 미국 사람의 역을 그만 하겠다고 선언하고 모든 한인 행사에는 불참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40세가 되자 록큰롤 음악 마니아가 되어서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자주 갈 때는 두 번씩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아무리 말려도, 다퉈도 소용이 없고 계속해서 7~8년을 다녔다.
프랫 인스튜트에서 그래픽 아트를 전공한 남편은 시삼촌(媤三寸)의 권유로 시작한 빈타지 의류사업이 평생 사업이 되고 현재의 패션의 트렌드를 리서치하고 사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며 줄기차게 다녔다.
경영하는 사업체가 이스트 빌리지에 위치해서 오후 1시에 오픈해서 밤 10시에야 마치게 되고 주말에는 밤 11시가 되야 폐점(閉店)하니까 새벽 2시경에 들어와도 퇴근 후 몇 시간 늦게 들어오는 게 아니라며 정당성을 주장하며 인디밴드와 유명한 밴드 등 맘에 드는 콘서트는 다 구경하러 다녔다.
작년에는 옆집에 살고 있던 고급 주문 가구를 만드는 대목인 미스터 하트가 갑자기 누나가 살고 있는 플로리다로 간다며 혹시 사용하던 목공기계를 사지 않겠느냐고 남편에게 제안을 해서 아주 좋은 가격으로 구입하게 됐다.
그 후 시간만 있으면 남편은 지하실에서 무언가를 만들었다. 원래 전공인 그래픽 아트를 접어두고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며 직업전선에서 열심히 일하던 남편은 새 취미를 찾은 듯 했고 첫 작품으로 의자를 하나 그럴듯하게 만들더니 두 번째 작품으로 멋진 내 책상을 만들어 준 것이다.
남편하고 나는 서로 다른 성장 배경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유학 왔다가 결혼하게 됐고 친정식구 모두 한국에 있어서 그 애정을 뉴욕의 한인들에게 나누는 나의 한인 사회 활동을 항상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이해해 주었다.
결혼 한지 20년이 넘고 큰딸과 작은딸이 대학으로 훌쩍 떠난 요새는 나에 대한 배려(配慮)와 이해가 많아지고 같이 시간을 보내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 지난해 12월 큰딸 사라 생일 때 작은딸 백희와 함께 다정한 세 모녀
처음 결혼해서 신혼이 지나니 서로의 단점이 들어나고, 문화와 풍습과 언어 사용의 오해에서 오는 다른 점도 너무 많고해서 한 동안 결혼을 잘못한 것 아닌가하고 골똘하게 고민도 많았다. 내가 이렇게 안 맞는다고 생각이 되니 남편도 역시 나의 다른 점에 대해서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아무리 싸워도 해결이 안 되어 새벽 기도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된 계기가 될 정도로 의견 차이가 심했지만 내가 뉴욕시 교육국 학부모 조정관이 되어 학교에서 근무한 후부터 생각을 바꾸게 됐다.
부모의 이혼으로 깨진 가정에서 겪어야 하는 어린 사춘기 학생들의 어려움과 부모들의 엄청난 후회와 고민, 자녀들은 부모의 이혼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가 하는 자책감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보았다. 한증막(汗蒸幕)의 불같이 뜨거운 고난이 있더라도 가정을 잘 지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남편과 자식들을 사랑하리라고 결심했다.
어느 가정이건 불만이 있을 때도 있고 남편과 의견이 안 맞아서 다투기도 하고, 사랑하는 자녀들이 가끔 마음을 아프게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큰 축복(祝福)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캔디같이 달콤한 것만 먹으면 어떻게 골고루 맛을 느낄 수가 있겠는가.
즐거움과 기쁨, 슬픔, 외로움, 행복이 모두 골고루 섞여져 있어서 전혀 지루해 지지 않는 이 황홀(恍惚)한 인생에 감사하며 매일 기쁘게, 힘차게, 열정적으로 살고 있다.
▲ 한달전 어느 모임에서 남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