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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엄마와 독수리 오형제가 다채롭게 펼쳐가는 삶, 지구끝 대륙 남아프리카에서 전하는 달콤쌉싸름한 이야기. 20여년의 정형화된 문화생활과 딱딱한 책상을 훌훌 털고 방목된 자유를 아름다운 빛깔, 무지개 나라의 사람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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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기러기엄마

글쓴이 : 최경자 날짜 : 2010-10-31 (일) 22:49:21

한국에서의 생활은 하늘의 운도 많았지만 사회생활, 가정 생활… 모든 것이 순탄한 생활을 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행복인줄 몰랐습니다.

그런 생활들이 더욱 자신감 있는 나를 만들었고 어디를 가더라도 행복만이 항상 나의 옆에 존재할 것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어떠한 시련이 오고 어떠한 장애물이 엄습(掩襲)할지언정, 즐기면서 정착할 수 있을거라는 돈키호테 같은 자신감이었습니다.

지난번 한 칼럼니스트가 하셨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20년 전, 영국 남아공 대사관에서 폭파범으로 지목이 되어 많은 고생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절대 이 세상 어디를 가도 남아공화국 너그 나라는 절대 안갈끼다"라고 다짐을 했다지요.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히 짐작이 가는 부분입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내가 처해 있는 곳이 최상이며, 내가 가진 것이 최고이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으로 항상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그런 저이기에 어두운 일을 당해도 가능한 밝은 면을 보고 격려하기를 즐겨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긍정적인 사고는 때로는 현실에서 동떨어져 후회도 낳곤 하더군요. 이미 던져진 주사위이기에 현실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이민과 유학이 항상 동경의 대상이 아니고 외국 생활의 빛과 그늘에 관한 정확한 실상을 보여줘야 하겠기에 기러기 엄마 생활의 문을 열어 봅니다.

소수의 기러기 엄마는 욕정(欲情)에 힘들어 하고, 어떤 이는 무료한 시간을 드라마로 시간을 달래고, 골프로 여가 시간을 즐기고, 또 영어 공부에 전념하는 엄마들도 꽤 있습니다. 저는 남성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3년차가 되니 이제는 서서히 남편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편의 얼굴이 있는 사진을 잘라 지갑에 잘 보이는 곳에 꽂아 두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웃으면서 하는 말이 “너는 이제 꽂아 두었냐 나는, 총각 시절부터 지금까지 너의 증명사진을 지갑 깊은 곳에 가지고 다닌다”고 합니다. 못생겼던 나의 증명사진을 말입니다.

오늘은 제가 경험한, 상상하기 힘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실생활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제일 힘들었고 황당했던 사건은 2008년 10월 말 즈음 여름이었습니다. 참고로 한국과는 반대 계절이 됩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이맘때인 2년 전 할로윈데이 날이군요. 오후 6시 경, 애들은 가라데를 막 끝나고 나는 바로 옆, 짐(운동센타)에서 연회비를 현금으로 막 지불하고 올라오다가 하나를 잊고 온 것이 있어서 그날에만 애들에게 자동차 열쇠를 주면서 먼저 차에 가 있어라 하고 나는 약 10분 정도 일을 다 보고 혼자서 계단으로 올라 오는데..

아무도 없었던 곳에서 갑자기 누가 가방을 잡는 듯하여.. 뒤를 돌아보니 흑인이 칼을 들고 당장이라도 찌를 듯이 노려보면서 가방을 잡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너무 놀라 멍하니 가방을 놔 주었습니다. 쏜살같이 비상계단으로 도주하더군요.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정신이 돌아와 애들을 불렀더니 큰 딸, 조카가 범인을 잡겠다고 말릴 새도 없이 뛰어내려 갔습니다. 다행히도 애들이 중간에 돌아와 주었습니다. 바로 경비원을 부르고 건물 입구를 차단했지만, 이미 강도는 유유히 사라진 뒤였습니다.

 

▲ 강도를 당한 운동센터 빌딩

그 자리에서 은행에 카드 분실(紛失)을 알리고 경찰서에 신고하고 집에 돌아왔지만, 막내 아들만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놀았고 온 식구들이 저녁도 잊은 채 멍하게 있었습니다.

며칠 굶은 듯한 윤기 없는 얼굴에 ‘나도 좀 먹고 살자’ 라는 눈빛의 흑인강도 모습이 한편으로는 불쌍하면서도 한동안 몸과 마음을 떨게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남편도 없는 곳에서 난생 처음 당해본 강도 사건이니 말입니다.

그 날이 할로윈 데이라고 놀러 가 있는 둘째 딸을 데리고 와야 할 시간이 되었지만, 손과 발이 떨려 운전이 되지도 않는데 딸아이와 같이 있었던 친구아이의 아빠는 내가 어떤 상황인줄도 모르고 자기는 멀리 있어서 올 수가 없다고 부탁을 합니다.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나, 집꾸러미 열쇠와 신분증이 들어 있던 가방을 통째로 뺏겼으니 집을 비운다는 것이 불안했습니다. 행여 그 강도가 집에라도 들이닥치는게 염려가 되어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떼고 아이들을 남긴 채 나갔습니다.

그날은 정말 운이 없었습니다. 친구 아이를 데려다 주고 나오는데 그 집 앞에 넓게 움푹 패인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뿔싸, 전진도 후진도 못하고, 몇 차례 시도를 해보았지만 시커먼 연기와 냄새만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때가 밤 9시, 여기는 밤 6시만 되면 인적(人跡)이 드물고 사람들이 거의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운행하는 차량도 잘 보이지 않고 도둑님 외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시간에 누구에게 부탁을 할 것이며 설사 온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이 차를 빼내야 하나….

머릿속이 텅 빈듯 하얘지고 시커먼 연기는 타이어만이 아니라 내 머리에서도 나오는 듯 했습니다. 이러다 또 강도에게 당하면 어떡하나. 길거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내 처지에 외마디 비명를 지르며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시커먼 옷을 입은 흑인들이 어쩌다 지나가면 차에 들어가 몸을 숨기고 다시 나왔다가 숨기를 반복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백인이 보여 도움을 청했지만 평소에 그렇게 친절하던 백인도 그 시간엔 절대 차에서 내리지 않고 답도 없는 몇 마디 말만 하고 가버리더군요.

무방비(無防備)로 놓인 토끼같은 애들의 얼굴이 한시도 머리에서 떠날 줄 모르고 할 수 없이 예의고 뭐고 간에, 앞에 있던 플랫(아파트형) 20여곳 집의 벨을 다 눌렀습니다. 그렇게 해서 웅성웅성 모인 사람이 6~7명이었습니다.

그 아파트의 장이라는 백인도 나와 상황을 알고나서 오히려 나에게 정중히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그 모습이 고마웠습니다. 그는 예전에도 여기에 몇 번이나 빠진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서 아직도 공사를 하지 못해 이렇게 불편함을 주었다고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모인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해 차를 들어 올려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아파트 길 건너 살던 한국인 한 명이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나왔다며 자기 친구도 여기서 같은 일을 당했는데 견인차를 불러서 빼냈다고 하더군요. 두 번의 놀랜 가슴을 진정시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 날밤은 그렇게 밤손님 없이 무사히 보냈음에 감사했고 밝은 아침을 맞을 수가 있었습니다.

다음날, 첫째로 해야 할 일이 집 열쇠를 전체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가방속에 은행카드와 여권, 신용카드, 지갑, 수첩 등 모든 것들이 있었고 수중엔 한 푼의 돈도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가까운 지인(知人)이 자기 돈을 들어서 열쇠를 바꿔주었고 필요한 경비라도 보태라고 주는 그 배려가 너무도 감사하더군요. 머나먼 이역땅에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배달민족이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 엄웅용 사장님은 집에서 방치(放置)했던 알람 시스템 사용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고 알람 작동으로 많은 평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당장 걱정인 것은 통장에 들어 있는 생활비를 사용 할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경찰서에서 강도를 맞았다는 확인서와 여권대조필 사본을 갖고 은행에 가도 원본 아이디(여권)가 없으면 캐쉬 카드를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 여권을 신청 한다고 해도 두 달이 걸리는데 그 동안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까마득한 현실이 나를 짓눌렀습니다. 이민사회에서 오늘 내일을 장담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을 뿐만이 아니라 재정적으로 넉넉한 이가 역시 많지 않기에 누가 그 많은 돈을 빌려 줄지도 만무했구요. 한국 가족에게 걱정을 주기 싫었지만, 할 수 없이 남편에게 SOS를 쳤습니다. 믿을만한 사람의 계좌로 당장 필요한 돈만 그 통장으로 보내기로 하고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몇 번 만나지도 않은 한 선교사님이 당장 필요한 생활비 남아공 돈 몇 천 랜드(Land)를 빌려줬지만 오래지 않아 바닥이 났습니다. 은행에 잠겨 있는 돈을 찾으려고 은행의 매니저를 만나 부탁을 해보았지만 야멸차게 거절하더군요. 마침 어학원에서 친하게 지내던 현지인 백인이 그 매니저를 안다고 하여 자기가 보증한다는 letter와 몇 가지의 서류를 첨부해 일주일에 천 랜드 정도만 매니저 싸인 하에 인출(引出)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 돈을 내가 찾는데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인 지라,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하다고 인사했습니다. 일주일에 천랜드는 이 나라에서 거금으로 통하기 때문에 그것도 많다고 허락을 해주지 않을 때가 있더군요.

그렇게 몇 주일이 지났건만, 한국에서 보냈다는 돈이 2주가 넘어도 도착을 하지 않는겁니다. 빠르면 2~3일이면 도착을 하는데...필요하다는 은행의 코드, 송금번호 한국에서 발송 했다는 영수증 다 갖다 주었지만 확인이 안된다는 말에 3주가 다 가도록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 평소 거래하던 케이프타운의 은행 

이 나라는 은행 시스템도 얼마나 답답한 부분이 많은지요. 성격이 급한 한국인이라면 속에서 불이 나도 몇 번은 납니다. 누구나 하는 말이 있는데 이 나라에 살려면 인내심을 많이 키워야 한다고 합니다. 나 역시 불 같이 화나는 날이 종종 있지요. 지금은 익숙해져 살다 보니 그 속에서 어울려 잘살고 있지만.

그렇게 은행에서 몇 번씩 1,000랜드를 찾아 쓰고 있는 어느날이었습니다. 여유 통장이 하나가 더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큰 딸과 함께 시내에 나갔다가 미리 1000 랜드를 찾으려고 은행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창구 아가씨가 하는 말, “당신의 계좌에는 돈이 한푼도 없다”고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소리를 합니다. 약 8,000랜드(150만원)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제로라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으니 다시 설명을 해달라. 지금 나는 카드도 없어서 다른 곳에서는 돈을 사용할 수도 없다”고 하자, “당신이 모르는 와중에 사인을 했을 것이고 은행에서는 모르는 일이다”고 딱 잘라 말하는 것입니다.

도통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또 돌아 버릴 것 같은 현실에 머리가 띵해지는 두통을 맛보며 어떻게든지 이성을 갖고 대처해야 했습니다.

“지금 나의 계좌에서 빠져 나간 돈이 어디로 갔는지, 빼낸 이가 누구인지 주소와 전화번호를 확인해달라”고 하자 그 아가씨는 저쪽을 가리키며 인콰이어리 파트로 가라는 것입니다.

직감적으로 매니저의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름을 대면서 그 매니저를 불러 달라고 했고 큰 목소리로 이야기 했습니다. “너는 나의 모든 계좌를 알고 있고 나의 모든 신상과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다. 오늘 이 건에 대해서 해결하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변을 달라”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네가 알다시피 여권도 없고 카드도 없고 어디에서 돈을 사용할 수도 찾을 수도 없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다. 그런데 어디에서 사용했다고 하냐, 지금 당장 확인을 해달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날은 주말과 월말, 연말이 가까워 오는 때라 많은 사람들이 은행에 와 있었고 모두 나를 주시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매니저가 하는 말, “ 만약에 통장에서 돈 인출이 잘못되었다면 이자와 함께 다시 네 계좌로 들어 갈 것이고 당신이 진짜 사용을 했다면 우리는 모른다. 저쪽 인콰이러리 파트에 가서 출금 내역은 확인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줄에서 가서 약 20분 정도 기다렸을까요. 내 차례가 되어 다시 그 이야기를 하고 상세한 연락처를 달라고 하는데 창구의 아가씨가 당신의 계좌에 돈이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진짜냐? 그러면 지금 내가 그 돈을 찾을 수 있냐고 물으니..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스테이트먼트 떼어 달라”고 하니까…8,000랜드와 이자가 거짓말처럼 통장에 들어 와 있는 것이 아닌가요..!!!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더군요.

큰 딸은 입구에서 송금받은 돈을 입금하려다 이 일로 송금 중지 해달라고 통화를 하고 있는데 문제의 매니저가 밖으로 나가다가 10분 뒤에 다시 들어오더라는 말을 합니다. 엘리트 은행 직원이 서민의 푼돈을 울궈먹다니요. 외국인이라서 우습게 봤는지도 모릅니다. 나도 은행 일이라면 국내 기업, 외국인 지사 매니저를 오랫동안 하면서 모르는 바는 아닌데 말입니다. 사람을 잘못 본 것이지요.

그 은행과 매니저 이름을 만인에게 공개하려다가 그 사람도 가정이 있고 그 자리에 앉기 위해 얼마나 공부를 했을 것이며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는 불행을 주고 싶지 않더군요. 정의를 위해서라면 공개해야 하지만 돈을 다시 넣으면서 많이 반성도 했을 것이고 다시는 그런 과오(過誤)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또한번의 악몽을 넘겼는데 경찰서에서 수 차례 전화가 와서 범인 대조를 해달라고 합니다. 그 흑인강도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잘 먹지 못해 까칠한 피부에 지쳐 보였던 원망의 그 눈빛… 그 흑인이 불쌍했습니다. 하필이면, 내 지갑에 돈이 하나도 없는 날 그 가방을 낚았으니 나중에 얼마나 허무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날 3,000랜드의 현금을 운동센터에 지불하고 올라올 때라 잔돈만 얼마 남았 뿐이었는데 그가 범인이“맞다”고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계속된 경찰서 전화에 마지못해 갔더니 7~8명의 여성이 와 있더군요.

내가 아는 사람도 있었는데 강도에 저항하다가 칼에 어깨가 찔려서 다쳤다는겁니다.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만 무려 23건의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여성을 상대로 말입니다.

 

▲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 

지금은 그곳이 폐쇄되고 옥상으로 통하는 주차장도 사용금지입니다. 주차장이 항상 복잡하니까 약간 한가한 옥상이 타겟이 된 것입니다.

 

▲ 옥상 입구는 현재 굳게 잠겨있다

내가 당했을때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안된다고 가라데와 운동센터, 경비원 사무실에 가서 무비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때는 “돈이 얼마인데..”라면서 콧방귀를 뀌더니 그렇게 많은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 일로 두세 달이나 경찰서에 불려갔는데 한 번은 “네가 너무 고통이 심한 것 같다, 심리치료사가 필요하냐”는 친절까지 보이더군요.

이제 여윳돈이 생겨, 잃어버린 핸드폰 번호를 찾으려고 다시 갔습니다.

 

새 핸드폰을 얻을만큼 포인트 적립이 있었고 선불제 최고 금액(airtime) 250랜드가 들어 있던 것을 잠시 중지시켜 놓았는데 담당 직원은 늦게 오면 자동 소멸된다며 그 번호와 에어타임, 포인트를 몽땅 사라졌다고 합니다. 신고할 때만 해도 아무런 말이 없었는데.. 몸과 마음이 지쳐 버린 나는 더 이상 싸우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 그래..하고 넘겼지만 그 못된 사람을 생각하면 속이 쓰립니다.

연거푸, 대형 사건들이 몇 달 안에 다 겪은 것들이라 지금 흰 머리가 있다면 그때 다 생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폭풍우가 한꺼번에 몰아쳤으니 5년간은 조용하겠지… 라며 희망을 가졌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바랬지요. 그리고 연말에 남편이 위로차 방문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돈을 전달하려고 왔다는 것이 맞는 말 일 것입니다.

모든 악몽들이 잊혀질 즈음, 약 6개월이 지났을까요. 운동 센터에 일 년치를 미리 지불하고 열심히 운동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느때처럼, 동그란 카드를 찍으면 게이트가 열려야 하는데… 삐삐 소리를 내면서 거부합니다. 이건 뭐야!!

직원에게 물어 보았더니 “너는 들어 갈수가 없다”나요. 확인을 해보니 이미 사용기간이 끝났다는 것인데 일년치를 페이했는데 6개월치만 납부된 것으로 나옵니다. 이곳 직원이 돈을 받고 장난을 친 것입니다.

 

‘아!!! 옛날이여…’또 실랑이를 벌이며 싸워야하나? 긴 한숨과 질식할 것같은 답답함을 느끼면서 기러기 엄마의 고단한 사연(事緣)은 이렇게 저물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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