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에게 가라데를 가르치는 센세이 브루스는 4단으로 케이프타운에서 최고의 실력자이자 뛰어난 리더쉽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가라데 사무라이를 긍지와 자부심만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가라데 경력이 20년이 넘은 그는 1997년에 사범이 되어 도장(道場)을 운영(運營)하고 있습니다. 아직 태권도를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현재, 웨스턴 케이프타운에 있는 가라데 사무라이 도죠(도장)는 모두 6개로 학생 수는 어른을 제외하고 약 800여명입니다. 남아공에서 ‘가라데 사무라이’(가라데는 두 종류가 있는데 그 중 하나)를 배우는 학생수는 약 1,000여명이 된다고 합니다.케이프 타운이 제일 많다고 하지요.
가라데는 남아공을 포함, 전 아프리카에서 학생들이 제일 많이 할뿐더러 가장 유명한 운동으로 인지(認知)돼 있다고 합니다.
구기(球技) 종목(種目)으로는 남아공이라면 럭비가 생각이 나지요, 맞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럭비 매니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음으로 크리켓, 축구, 농구 순입니다. 그리고 맨션 무술로는 가라데와 유도 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센세이 브루스가 3년째 저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라데 한번 해보시지요.”, ‘저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웃음만 지을뿐 입니다.
남아공의 가라데 전파자인 키무라는 남아공에서 가라데를 소수에게 전수하고 고인(故人)이 되었습니다만 지금은 이름이 남아공 전역에서 불리고 얼굴이 각 도장에서 영웅시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자신의 제자들을 통해 천 여명의 또 다른 제자들이 양성되고 있습니다.
키무라는 자기 이름만 알린 것이 아니라 일본의 문화와 정신을 알리는 데 사명을 다했습니다. 저 세상에 간 사람이지만 이것이 호사유피(虎死留皮)요 인사유명(人死留名)이 아니겠습니까.
가라데에 대한 자료들을 찾던 중 태권도와 합기도가 가라데를 원형(原形)으로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논란은 있지만 태권도가 전통무예인 태껸과의 연관성이 별로 없고 태권도라는 명칭을 만든 사람도, 보급한 사람도 가라데 유단자 출신이라는 점때문입니다.
하지만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태권도는 독자적인 기술개발로 가라데와는 완전 다른 형태의 무술이 되었습니다. 가라데와 유사성(類似性)을 갖지만 차이점(差異點)이 훨씬 많은 무술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라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라데는 오키나와 전통무술을 모태(母胎)로 근대에 만들어졌는데 오키나와 전통무술이 중국 남권에서 왔고 중국 남권 또한 인도무술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원래 무술이란 인접국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진화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태권도가 갖는 독창성(獨創性)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되었던, 우리 애들은 유년시절에 취득한 태권도 3품의 자격을 갖고 있지만, 아프리카에서 계속적인 태권도의 기량(技倆)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가라데를 하고 있습니다.
장차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남아공이든, 훈련된 몸으로 태권도를 계속적으로 영위해 가길을 바랍니다.
훌륭하신 태권도 사범님들이 하루속히 남아공에 오셔서 전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태권도 사범의 이름 세 글자가 머리에 새겨지는 날이 오기를 꿈 꾸어 봅니다.
************************** 가라데 역사 *****************************************
가라데에 대한 내용을 찾던 중에, 논리적이고 정리가 잘 된 것이 있어 소개합니다.
공수도(空手道)는 일본을 대표하는 타격계 격투술로서 일반적으로 ‘가라데’로 불리고 세계적으로는 ‘KARATE’라고 표기합니다. 사실, 가라데는 일본 본토에서 발생한 무술이 아니라 일본에 흡수되기 전의 류쿠왕국 (현 오키나와)의 토착 무술이 중국 남권과 결합되어 만들어진 격투입니다.
오끼나와 무사 집안 태생 ‘기친 후나고시(1868 ~ 1957)’가 명치시대에 일본 본토에 처음으로 가라데의 당시 이름, 당수(唐手)를 소개하면서 체계화 시켰고 1929년에 가라데(空手)로 이름이 바뀌면서 일본무도로 내세워졌습니다.
후나고시는 오끼나와 나히시우의 사무라이 집안에 태어났으나 본시 몸이 허약했던 탓에 당수(가라데)을 배웠습니다. 그는 무술 뿐만 아니라 유교를 진지하게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 학교 교사로 일한 그는 외국 여행을 하면서 정형화된 품새나 카타를 연습한 후 가라데를 체계화 했습니다. 1916년 가라데를 시연했고 1920년에는 유신적인 교육과정을 겸비한 가라데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후나고시는 도쿄에 머물면서 수 많은 학생들을 가르켰고 점점 가라데는 많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가라데는 맨손 무술이 특징이고 세계 곳곳에 펴져 있는 다른 무술과 달리 병기 특히, 일본도를 가진 자를 상대로 하는 맨손 무술이라는 특색이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그 당시 일본 지배하에 있었던 조선은 가라데 역시 수입된 상태였는데, 그때는 당수가 가라데로 바뀌지 않은 모양으로 해방후에도 가라데에는 당수라 불리고 있었고 그 당수를 수련한 분들이 미국에 건너가 보급한 관계로 미국에는 별도의 당수도협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 예로 UFC 2회 대회가 개최될 때 현지 사회자가 킥복서 패트릭 스미스의 무술 스타일을 열거하면서 “태콘도, 탕수도, 합키도” 라고 외치기도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