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통 만델라다. 신문, 라디오, TV는 물론이고 각종 행사에서도 만델라의 추모(追慕)와 애도(哀悼)로 가득한 것을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큰 별이 이 시대를 마감했으니.., 어찌 아니 슬플까!!! 비단, 남아프리카공화국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글로벌 뉴스로 도배되고 있다.
15일 8만석 규모의 축구경기장에서 열리는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 부부가 총출동하다시피한 것을 보면 새삼 만델라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부는 조지W 부시 전 대통령 부부와 빌 클린턴 전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동반하고 왔다.

지난번 요하네스 버그에 갔을 때, 만델라가 병상에 누웠던 메디 클리닉 심장병원을 한번 가보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로 그는 나 같은 외국인에게도 영웅(英雄)이다.
남아공에선 넬슨 만델라가 타계하면 이른바 ‘무지개 나라’로 불리는 흑백 화합이 깨지고 다수이지만 소외된 흑인들이 백인에 대한 공격 사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남아공에서 만델라의 타계가 현실화되는 것을 두려워했고 그런 논의가 금기시 되다시피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병세가 악화됐고 이미 준비가 되어진 임종이었기에 이렇다할 동요는 없는 상황이다. 넬슨 만델라가 지난 6월 8일 병원 입원했을 당시에는 온 국민이 깜짝 놀랐고 병원 앞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쾌유를 비는 기도를 했다. 그 이후로 국민들은 만델라의 서거를 마음속에 대비하고 있었다.
만델라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남아공의 미래를 위한 배려를 한 셈이다. 그는 흑백이 화합하는 남아공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온 국민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던 것이다. 떠나면서도 나라의 뒤안길을 걱정한 만델라는 진정 위대한 거인이다.

흑인의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희망의 정치인’으로 절대적인 추앙을 받고 있는 넬슨 만델라가 남긴 유산이 “단합된 남아공을 계속 영위해 가는 것”임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지난 7일 CCITC(컨벤션무역센타)에서 만델라의 사진 전시회가 무료 개장되어서 방문을 했다. 마침, 에이즈 예방 운동이 같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몇 사람을 인터뷰해서 “만델라 사후 남아공의 분위기,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해 보았다.
하지만 당초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백인도 흑인들도, 칼라(혼혈)들도 차분히 준비되어진 모습을 엿 볼 수가 있었다.
최고의 명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는 남아공에서는 오는 15일까지 애도기간을 갖는다. 애도기간이 끝난 직후, 경제와 시장의 변화가 어떤 변수가 생길지 또한 만델라가 없는 2014년에는 어떤 정치가 펼쳐질지 베일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아직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라서 추측만 나오고 있지만 부디 만델라의 유산이 남아공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이끌어주길 희망한다.
넬슨 만델라 Nelson(Rohihlahla) Mandela 의 일생을 간략히 소개하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민권운동가, 아프리카 민족회의 (ANC) 회장, 최초의 흑인대통령
1918년 7월 18일 트란스케이 움타타에서 탬부족 족장의 아들로 출생.
1940년 포토헤어 대학재학중 시위를 주동하다 퇴학.
1944년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청년연맹 창설.
1952년 요하네스버그 법률상담소 개설해 아파르트 헤이트(Aparthied:인종격리정책을 뜻하는 아프리칸스어) 반대운동에 앞장. 본격적인 흑인 운동 가담. 두 차례 체포.
1960년 샤프빌 흑인 학생 학살사건을 계기로 평화시위운동 중단.
1962년 다시 체포되어 5년 형 선고.
1963년 ~ 1964년 범죄혐의 추가로 재판을 받고 종신형 선고.
1990년 2월 27년의 형기를 살고 석방.
1991년 아프리카 민족회의 의장 추대.
1993년 노벨 평화상 수상.
1994년 5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