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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범의 ‘We are America
90년대 초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미국에 도미, 현재까지 뉴욕에서 살고있다. 그동안 여타 이민자들처럼 자영업, 회사생활 등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한편 94년부터 커뮤니티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민권운동 활동가의 시각으로 본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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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의 표상, 한국 군대

글쓴이 : 차주범 날짜 : 2011-07-24 (일) 11:56:08

1989년 4월의 어느 봄날. 그날따라 푸른 하늘은 맑았고 잔잔한 미풍은 쾌청했다. 그때 나는 서울을 출발한 호남선 남행열차에 친구들과 함께 몸을 실었다. 어디 봄나들이라도 가는 길이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만 최종 목적지가 논산이었다. 군대에 입대하는 중이었다는 말씀이다.

논산역에 도착해 제일 먼저 찾은 장소는 이발소였다. 입대 전에 헤어 스탈을 빡빡이형으로 바꿔야했기 때문이다. 길었던 머리가 잘려나갈 때 마음속으론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가 절로 흘러나왔다.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에 굳어진다 마음까지…”

친구들과 밥을 먹고 헤어져 훈련소로 들어가는 나는 마음은 심란했다. 도살장(屠殺場)에 끌려가는 소처럼이라는 표현이 완벽하게 이해되는 심정이었다. 그랬다. 논산 훈련소는 도살장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 사람을 실제로 죽이거나 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한 인간이 입대전 20여 년의 세월동안 간직했던 인격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그 모든 것들을 철저히 파괴한다는 점에서 도살장과 다름 없었다.

사단이 일어난건 훈련소에 입소한 지 이틀만이었다. 훈련소의 관습대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빡센 저녁점호를 막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다. 그날 밤에 당직을 보던 하사관 하나가 내 옆에 눕더니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내 손을 집어 자기의 ‘정액 파이프’에 갖다 댔다. 그의 파이프는 빳빳이 서 있었다. 순간 나의 길지도 않은 머리카락도 같이 빳빳이 서 버렸다. 참으로 더러운 경험이었다. 다음날 아침 그가 멀쩡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을 때 어린 시절 이불속에 숨어 전설의 고향을 보면서 느꼈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나의 논산훈련소 시절은 열흘만에 마감됐다. 입소 다음날 실시된 신체검사에서 과거의 병력이 드러나 4급 방위판정을 받고 귀향조치를 당했다. 정말이지 운과 노력이 겹쳐진 끝내주는 행운이었다. 2년전 신체검사에선 병력이 현역판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데 훈련소에서 신체검사를 담당한 군의관이 혹시나 싶어 나를 불러 면담한게 화근(?)이었다.

나는 면담 자리에서 대한민국 어느 배우도 따라오지 못할 생애 최고의 연기력을 발휘했다. 너무 엄살을 떨면 오히려 군의관에게 밉보일까봐 연기 수위를 적당히 조절하며 끝내 방위판정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날은 입대하는 날보다 더 맑고 쾌청했다. 나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다른 녀석들 십수명과 논산 훈련소를 나서며 세상을 다 가진 듯이 좋아했다. 이제 이 끔직한 도살장을 나가서 방위정신에 충실하며 대충 18개월을 때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출근에 실패한 방위는 용서할 수 있어도 퇴근에 실패한 방위는 용서할 수 없다는 그 방위정신 말이다.

이런 나의 기쁨은 슬픔으로 마감됐다. 동사무소 근무 정도로 생각하던 방위복무가 하필이면 수도권 인근의 전투방위 부대로 확정됐기 때문이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이었다. 이른바 ‘송추 방위’로 소집되어 버린 비극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茫然自失)했다. 논산 훈련소에 그냥 있었으면 비록 현역이지만 복무하기 쉬운 부대로 배정받을 가능성도 있었을 텐데. 방위소집을 기다리며 허비한 6개월을 더하면 기간으로나 복무강도로나 전혀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첫 끝발이 개 끝발이라는 인생의 소중한 진리를 배우는 순간이었다.

전투방위 생활은 끔찍했다. 아침에 출근해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맞다가 구르고 구르다가 맞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나의 방위생활이 힘들었던 이유는 같은 소대내 한 고참의 역할이 컸다. 지금도 이름 석자를 또렷히 기억하는 그 쉐이는 인간이 아닌 미친개였다. 그 미친개에 맞아서 생긴 상처자국이 아직도 내 오른 손등에 남아있다. 당시 나는 부대에 출근할 때 마다 그 쉐이를 대면할 생각에 치를 떨며 집에 있는 식칼을 떠 올리곤 했다.

 

역시 군대얘기는 밤을 새도 모자른다는게 사실인가 보다. 이 글 서두에 나의 군대 경험을 간략하게 소개한다게 그만 너무 길었다. 나의 경험담을 읽은 특히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쉐끼, 별로 고생도 안했으면서 주구장창 엄살은..” 그리고 월남 스키부대부터 시작해 자신들의 엄청난 무용담(武勇談)을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한국 군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아찔한 순간을 한번은 맞이해야 하는 온갖 위험으로 점철된 목숨 내놓고 가야 하는 장소다.

사실 나는 군대얘기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한다. 단순이 나의 경험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한국군대는 정상의 정신상태를 가진 사람이 감내(堪耐)하기엔 너무 벅찬 광기의 집단이다. 최근에 이런 나의 진단을 증명하는 사건이 속출하고 있다. 귀신잡는 해병이 아니라 사람잡는 해병의 속사정이 시리즈로 드러나는 중이다. 한국 군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대다수의 대한민국 남성들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지 않나싶다. 한국 군대의 이런저런 병폐(病弊)는 유구한 전통으로 굳어진지 오래다.

한국의 현대사는 근대성의 축적과정에서 꾸준히 실패해 왔다. 압축 고도성장 시대를 거치며 합리성이 아닌 불합리성에 기반한 권위가 사회의 모든 영역을 지배해 왔다. 그 중에서도 군대는 아직 박정희시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이성에 기반한 어떠한 질문도 거부하는, 까라면 까야된다는 막무가내식 지배방식이 미덕으로 통용되는 곳이 군대다.

한국군대에서 ‘군기확립’의 미명하에 자행되는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 바보로 만든다. 군대에서 상급자가 폭력을 행사하며 제일 많이 동원하는 이유는 하급자들이 소위 “빠졌다”는 것이다. 이 빠졌다는 개념은 도무지 실체가 없고 기준이 없이 오로지 상급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한다. 하급자가 무슨 행동을 하건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이성적 분석은 생략된다. 그저 하느님과 동격인 상급자의 감정이 수틀리면 하급자의 모든 행동은 빠졌다는 한 마디로 수렴(收斂)된다. 그리고 하급자에겐 잔인한 폭력과 가혹행위가 가해진다.

따지고 보면 한국군대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다. 군대의 운영원리는 사회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계급이 높은 자가 무한한 권력을 갖는 상태에서 힘있는 자에게 비굴하고 힘없는 자에게 잔인해야 살아남는 곳, 그곳이 바로 군대다. 한국의 남자들은 계급사회의 생존원리를 온 몸으로 체득하는 체험 삶의 현장 군대를 갖다오면서 본격적인 마초의 길로 접어든다.

군대에서 폭력으로 유지되는 사회화 교육을 받고 나온 대한의 아들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부모들은 재잘거린다. “어휴, 우리 애가 군대 갖다 오더니 사람이 됐어요….” 군대가야 사람된다는 농담이 진리로 통용되는 사회는 죽은 이성의 사회다. 오늘도 수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진정한 남자가 되어오라는 주변인들의 당부를 안고 군대로 향한다.

한국에서 군복무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또 다른 농담으로 표현된다. 신성(神聖)은 이미 숱하게 모독(冒瀆)됐다. 그것도 애국을 말하기를 밥먹듯 하며 자신들이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음을 못내 자랑스러워 하는 바로 그 ‘사회 지도층’에 의해서 말이다.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작자들은 자기 새끼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군대를 회피하도록 하면서 힘없는 보통 사람들의 자식들만 사지(死地)로 몰아넣는다.

임명 청문회에 출석한 고위 공직자나 재벌의 자식들이 극소수를 제외하곤 한결같이 군면제를 받은 사실 앞에서 나는 늘 한 가지 의문을 품어 왔다. “잘난 부모 덕에 엄청나게 잘먹고 병원치료도 잘 받고 컸을 녀석들이 왜 이렇게 환자가 많은 거야?” 누구의 말마따나 마님 자식이 회피한 군복무를 머슴의 자식들이 대신 채우고 있는 현실에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웃기는 개소리다.

징그러운 자식사랑에 군면제를 시켜준 부모도 문제지만 그 자식새끼들이 어떤 의미에선 더 비난받아야 한다. 겨우 스물을 갓 넘긴 나이에 빽있는 부모의 더러운 짓거리에 편승(便乘)해 일신의 안위를 도모한 새끼들이 장년의 나이가 되어 얼마나 더 큰 부정을 저지를 지는 안봐도 DVD다.

군대의 시스템이 대한민국 남자들을 또라이로 만든다고 하지만 그래도 대개는 제대후 사회밥을 먹으며 다시 ‘빠진’ 사회인으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직업군인도 아니면서 천년만년 군대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슨무슨 동지회의 간판을 달고 보수단체 집회에 가스통까지 들고 출몰해 광분하는 아저씨들이 바로 그들이다.

요즘에는 ‘어버이연합회’라는 단체의 활약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누가 자기 자식이라고 어버이를 참칭(僭稱)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종류의 아저씨들은 군대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으며 애국질에 한창이시다. 이런 경우는 군대가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깊이 살펴보아 할 연구과제다.

해병대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이 논란이 되자 얼마전 국방부는 부랴부랴 ‘병영문화 혁신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관련 뉴스를 살펴보니 이 토론회도 역시 한국군대답게 진행됐다. 그릇된 병영문화의 최대 피해자인 일반 사병들은 그저 들러리로 참석했을 뿐이었다. 대신에 대학교수와 자살예방 전문가에다 해병대 사령관과 해군참모총장까지 참석한 상태에서 국방장관의 장광설(長廣舌)과 실효성 없는 대안제시로 시종일관 토론회가 진행됐다.

흔히들 말하기를 군대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라고 한다. 한국 군대의 문제점을 증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개죽음이 그동안 발생했다. 군대에서 비명횡사(非命橫死)한 장병들에게 훈장을 추서(追敍)한들 그것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아무 의미없는 명예다. 그간 한국 군대에서 벌어진 죽음들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그야말로 개죽음이다.

한국 국방부는 군대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군대 부적응자들에 의한 우발적 사태로 애써 의미를 축소해 왔다.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태를 반복할 것인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면 정작 가려지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자신의 시야다.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군대가 필요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게 만약 비현실적인 발상이라고 생각된다면 최소한 군대를 인간이 지낼만한 장소로 만드는 차선책은 마련되야 한다. 애국과 의무의 명분으로 새파란 청춘들을 착취(搾取)하고 억압(抑壓)하는 지금의 병역제도는 분명 개혁(改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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