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0년을 주기로 전국 인구조사(센서스)를 한다. 지난 2010년이 인구조사의 해였다. 그때 뉴욕, 뉴저지 한인 커뮤니티는 공동으로 인구조사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범동포 캠페인을 벌였다. 인구조사 참여의 중요성이 큰 탓이다. 인구조사는 단순히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쪽수만 집계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인구조사의 통계가 각종 정책의 지표(指標)로 사용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인구조사는 지역별 복지비 배분을 비롯한 정부정책의 근간(根幹)이 된다.
인구조사 이후 추진하는 정책변화의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선거구 재조정이다. 선거구 재조정은 연방하원과 주의원 및 시의원에 이르는 각급 선거구의 경계선을 새로 획정하는 절차를 말한다. 인구조사 자료를 근거로 각 지역의 생활권, 인종분포, 경제권 등을 두루 고려해 선거구 지도를 새로 그리는 작업이다. 대통령은 전국이, 연방상원은 각 주 전체가 단일 선거권이므로 재조정이 필요 없다.
2010년 인구조사 이후 2011년엔 연방하원과 뉴욕주상원, 주하원 선거구의 선거구 재조정 절차가 본격 진행됐다. 뉴욕주 선거구 재조정은 ‘뉴욕주선거구재조정의원위원회(LATFOR, New York State Legislative Task Force on Demographic Research)’가 전담한다.
문제는 LATFOR가 양당에서 지명한 주상원과 주하원 의원 각 3명씩 6명으로 구성된 협의체라는 점이다. 객관성을 담보해야 할 선거구 재조정을 이해 당사자들이 직접 담당한다는 뜻이다. 본인과 자당 후보들이 출마할 선거구를 직접 디자인하는 형국이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기존의 LATFOR를 폐지하고 ‘독립위원회(Independent Commission)’ 설치를 제안하는 법안을 상정했었다. 정당과 정치인의 이해에 경도된 주의원들을 배제하고 커뮤니티 대표자를 포함한 각계의 인사들로 구성된 독립위원회의 손에 선거구 재조정을 맡기자는 방안이었다. 주지사의 개념만땅 제안은 당빠 주의회로부터 개무시 당하며 독립위원회 구성안은 변변히 논의도 못된 채 사장(死藏)됐다.
자신들의 정치생명에 심각한 타격을 줄지도 모르는 제안을 주의원들이 찬성할리 없었다. 여기엔 공화, 민주가 따로 없었다. 평소엔 상대를 혐오하며 대립하던 공화, 민주 주의원들은 쿠오모의 독립위원회 구성안엔 서로를 얼싸안고 블루스를 추며 반대를 외쳤다. 부패와 불합리의 온상(溫床) 알바니(뉴욕 州都)의 면모가 다시 한번 드러난 사례다.
▲ 게리 멘더링의 기원이 된 1812년 메사추세츠 선거구 지도를 묘사한 그림
정치인들이 주물러 온 기존의 뉴욕주의원 선거구는 전형적인 ‘게리멘더링’의 형태다. 게리멘더링은 특정 후보나 정당에 유리하도록 자의적으로 선거구를 그리는 행태를 지칭한다. 게리멘더링의 유래는 1812년 메사추세추 주선거에서 시작된다. 당시 주지사였던 엘드브리지 게리는 선거에서 자당 후보들이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했다 그 결과 선거구 모양이 마치 도룡뇽처럼 생긴 기괴한 형태가 되어버렸다. 이를 두고 언론이 주지사 이름인 게리(Gerry)와 도룡뇽(Salamander)을 합성해 게리멘더링이란 신조어(新造語)를 탄생시켰다.
뉴욕선거구의 게리멘더링
2000년 인구조사를 근거로 재조정되어 2010년 주선거까지 사용된 뉴욕주 선거구 지도를 보면 한마디로 가관(可觀)이다. 2011년의 선거구 재조정으로 이제는 옛날 지도가 된 이들 선거구들은 매우 이상한 모양으로 그려져있었다. 여기선 게리 멘더링이 유구한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플러싱, 베이사이드 지역을 포괄하는 주상원 11선거구와 16선거구가 게리멘더링을 설명하는 확실한 예다. 이 두 선거구는 2010년 선거까지 두 현직 의원이 독점적 지위를 누린 지역이다. 11선거구는 공화당 프랭크 패다반 의원이 2010년 선거에서 현 토니 아벨라 의원에게 패할 때까지 무려 38년을 지배했다. 16선거구는 부부가 릴레이로 의원직을 계승한 훈훈한 러브 스토리로 유명하다. 1964년부터 레오나드 스타비스키가 의원직을 유지하다 그가 사망하자 부인인 토비 스타비스키가 1999년부터 현재까지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 두 선거구는 2001년 선거구 재조정에서 LATFOR위원들이 야합(野合)한 결과가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준다. 11선거구는 플러싱 북부와 베이사이드 지역 대부분을 포괄한다. 그런데 선거구 지도를 보면 베이 테라스 지역은 이상하게도 16 선거구로 편입되어 있다. 지도를 보면 베이 테라스는 다른 11선거구 지역에 둘러쌓인 채 홀로 16선거구에 편입되어 이곳은 마치 섬처럼 고립된 모양새다.
▲ 2010년 선거까지 뉴욕주상원 11선거구 지도. 지도 상단의 베이테라스 지역이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선거구 모양이 그지경이 된 데에는 당연히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베이 테라스 지역은 민주당 등록 유권자 비율이 공화당 등록 유권자를 압도한다. 10년전 선거구 재조정 당시 11선거구 현직 의원은 프랭크 패다반 공화당 의원이었다. 공화당측에선 민주당 유권자가 많은 이 지역를 패다반의 선거구에서 배제되도록 꼼수를 부렸다. 커뮤니티의 이해보단 자신들의 당선 가능성을 기준으로 멋대로 선거구를 그린 안면몰수의 행동이었다.
게리멘더링은 한 개의 선거구를 넘어 인접한 다른 선거구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 선거구가 기괴한 형태로 그려지면 당연히 옆의 선거구 경계도 덩달아 이상해진다. 2010년 선거까지 사용된 몇 개의 뉴욕시 주상원 선거구가 엉망으로 획정되는 바람에 이들 선거구와 이웃한 16선거구는 웃기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16선거구는 경계가 사방팔방으로 뻗친 납득하기 어려운 모양으로 해석하기 힘든 추상화를 연상시킨다.
선거구 경계는 가급적 동질성을 가진 커뮤니티를 한 데 묶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치인들의 이익에만 복무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다 보니 같은 커뮤니티의 유권자들이 여러 개의 선거구로 나뉘는 예도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브룩클린 남부지역의 경우 2010년 선거까지 아시안 유권자들이 5개 이상의 다른 주하원 선거구로 분산되었다.
▲ 2010년 선거까지 뉴욕주상원 16선거구 지도. 인접지역 선거구 경계의 영향으로 동질성이 결여된 여러 지역을 두루 포괄하는 기괴한 형태다.
게리멘더링 선거구의 또 다른 폐해는 정치적 대표성의 실종이다. 역시 2010년까지 사용되었던 주하원 25선거구가 극적인 예다. 이 선거구는 위로는 퀸즈 북부로부터 아래로는 브루클린까지 한없이 늘어진 형태다. 이 선거구엔 서로 다른 인종과 계층이 마구 뒤섞여 있어 이곳에서 주하원의원을 해 먹으려면 성격이 슈퍼 오지랖이어야 한다. 다른 측면으로 보면 뚜렷한 커뮤니티 대표성과 정책현안을 대두하기 힘든 처지라는 말이다.
2010년 인구조사가 끝나고 2011년에 LATFOR는 선거구 재조정에 착수했다. 관습대로 밀실야합과 비밀주의가 혼합된 그들만의 리그를 꾸려 진행했다. 각 커뮤니티는 지역별로 단 1회 개최된 공청회의 참석이 선거구 재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마감기한을 넘겨 1년이 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애 연방하원과 뉴욕주상원, 하원 선거구가 새롭게 획정됐다. 다음 인구조사 때까지 앞으로 10년 동안 적용될 새 선거구 지도는 일부 개선된 지역도 있지만 대체로 게리멘더링의 형태다. 이번 선거구 재조정도 연방하원과 주의원들의 밥그릇 보존의 원칙이 철저히 관철됐다. 정말이지 징글징글한 생존본능이다.
▲ 2010년 선거까지 뉴욕주하원 25선거구 지도. 남북으로 한없이 늘어진 형태로 여러 커뮤니티가 뒤섞여 있다.
다만 한가지 고무적인 결과는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의 정치적 대표성이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아시안단체들은 선거구재조정아시안협의회(ACCORD)를 결성해 서명운동, 대규모 청문회 참석, 정치인 면담 등의 전방위 활동으로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의 요구를 LATFOR에 적극 개진했다. 이런 노력이 일정정도 힘을 발휘해 선거구 재조정으로 4개의 아시안 인구 다수의 선거구가 새로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현재 그레이스 맹이 현직의원인 구(舊) 주하원 22선거구 만이 유일한 아시안 다수 선거구였다.
아시안연방의원 탄생 낙관은 금물
이번 선거구 재조정으로 주상원 16선거구(아시안 인구 비율 53%), 주하원 25선거구(52%), 주하원 40선거구(62%), 주하원 49선거구(51%)가 아시안 다수 선거구로 새롭게 획정(劃定)됐다. 앞의 세 선거구는 플러싱과 베이사이드 지역을 포괄하며 49선거구는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브룩클린 선 셋 파크 지역을 포함한다. 이전 주하원 22선거구는 새 40선거구로 대부분 편입됐다.
여기에 덧붙여 한인과 아시안의 밀집 거주지역인 플러싱과 베이사이드 지역 대부분을 한 데 묶어 연방하원 6선거구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이 선거구의 아시안 인구 비중은 38%로 미동부에서 아시안이 가장 밀집한 연방하원 선거구가 되었다.
▲ 2011년 선거구 재조정으로 새롭게 구획된 연방하원 6 선거구 지도. 한인과 아시안이 다수 거주하는 플러싱과 베이사이드 지역이 한 데 묶여있다.
아시안 다수 선거구의 출현은 곧바로 효과를 발휘했다. 오는 9월 13일에 실시된 주예비선거를 앞두고 위에 설명한 주상원과 하원 선거구에에 복수의 한인과 중국계 후보들이 출마를 선언했다. 비록 아시안 다수 선거구는 아니지만 연방하원 6선거구도 뉴욕주 최초의 아시안계 연방하원 의원의 출현을 기대하게 됐다. 지난 6월 26일 연방 예비선거에서 그레이스 맹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다.
그레이스 맹의 승리는 아시안계 유권자들의 몰표에 힘입은 바 크다. 통상 예비선거는 투표율이 낮은데 금년에는 전래없이 6월에 연방 예비선거를 실시하는 바람에 극소수의 유권자들만 투표에 참여했다. 뉴욕주 통틀어 5%가 안되는 역사적으로 낮은 투표율을 보였던 이번 연방 예비선거에서 다수의 아시안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낸 그레이스 맹이 세 명의 백인 경쟁자들을 여유있게 따돌렸다.
이번 선거구 재조정은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의 정치력 신장에 분명 일조하겠지만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각 선거구의 인구 대비 유권자 숫자가 상당히 부족하다. 인구는 과반수가 넘지만 등록된 유권자 수는 그렇지 않다. 자세히 살펴보면 주상원 16선거구에선 아시안 인구비율은 53%이지만 등록된 유권자 비율은 30%에 그친다. 주하원 25선거구(인구비율 52%, 유권자 비율 32%), 주하원 40선거구(인구비율 62%, 유권자 비율 38%), 주하원 49선거구(인구비율 51%, 유권자 비율 30%)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레이스 맹이 11월 6일 본선거에 민주당 대표선수로 출전할 연방하원 6선거구는 아시안계 유권자 비율이 고작 20%다. 그러니 아시안 유권자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선거전략은 자충수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공화당 후보로 나올 상대가 댄 핼로란 뉴욕시의원이다. 댄 핼로란은 2009년 시의원 선거에서 케빈 김 민주당 후보를 꺾은 인물로 백인 유권자 규합에 능한 만만찮은 상대다.
그레이스 맹은 케빈 김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2009년 시의원 선거에서 케빈 김은 한인과 중국계 유권자만 집중 동원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래서 고만고만한 백인 후보 세 명이 난립한 예비선거에선 요행으로 이겼지만 본선거에선 ‘듣보잡’ 정치신인인 댈 핼로란에게 허망하게 무너졌다. 당시 공화당은 댄 핼로란의 경쟁력을 신뢰하지 않아 후보교체까지 심각하게 추진했었다.
그럼에도 핼로란은 거뜬히 승리했다. 그는 케빈 김과 똑같은 전략을 이용했다. 케빈 김이 아시안 유권자만 결집하는 행태를 비판하며 노골적인 언사를 동원해 백인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했다. 그 결과 민주당 소속 백인 유권자들마저 공화당 후보인 핼로랜을 대거 찍는 사태가 벌어졌다.
민주당 유권자가 공화당 유권자보다 훨씬 많은 선거구에서 케빈 김 후보는 근시안적인 선거전략으로 패배했다. 민주당 유권자 다수 지역의 예비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 후보가 본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에게 깨진 흔치않은 블랙 코메디였다.
오는 2013년에 뉴욕시는 시선거를 치룬다. 시 정부기관 랭킹 1,2,3위 선출직인 시장, 공익옹호관, 감사원장을 필두로 뉴욕시의회를 구성할 시의원들을 뽑는 선거다. ‘빅쓰리’ 선출직은 뉴욕시 전체가 단일 선거구지만 뉴욕시의원은 51개 선거구로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금년에는 뉴욕시의원 선거구를 재편하는 선거구 재조정이 실시된다. 뉴욕시의원 선거구 재조정은 LATFOR가 주도하는 연방하원과 뉴욕주의원 선거구 재조정과는 절차가 다르다. 뉴욕시의원 선거구는 시의원이 아닌 사람들로 구성된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Districting Commission)’가 담당한다.
위원회는 총 15명으로 뉴욕시의회 추천 8명(민주당 5명, 공화당 3명)과 시장 추천 7명으로 구성한다. 위원회에 참여할 인사들의 명단이 최근 확정됐으며 이 중에는 2명의 아시안도 포함됐다. 위원회는 지난 7월 17일에 대중들에게 공개된 첫 번째 회합을 가졌고 앞으로 51개 선거구를 새롭게 획정하게 된다.
주목되는 뉴욕시선거구 재조정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의 입장에선 뉴욕시의원 선거구 재조정의 결과도 귀추(歸趨)가 주목된다. 2010년 인구조사 통계에 따르면 뉴욕시의 아시안은 이전 인구조사 대비 30%가 증가해 뉴욕시에선 성장세가 가장 높은 인종그룹이다. 뉴욕시 인구의 13.9%를 차지하는 인구 숫자에 걸맞는 정치적 대표성이 요구된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퀸즈 지역에 현 피터 구 시의원의 선거구말고 또 하나의 아시안 다수 시의원 선거구의 출현이 관측된다.
▲ 파란 동그라미 정당과 빨간 세모 정당 소속 유권자들을 다른 선거구 경계선으로 나눈 가상의 상황을 표현한 그림으로 선거구 재조정과 선거판도의 연관성을 설명한다.
선거구 재조정은 ‘게임 체인저’다. 선거라는 게임의 근본 조건을 바꿀 수도 있다. 새롭게 구획된 선거구의 유권자 정당등록 비율, 인종분포, 소득계층 등 여러 변수들은 선거결과에 지대한 규정력을 발휘한다. 지난 연방예비선거에서 연방하원13선거구에서 벌어졌던 푸닥거리가 이를 증명한다. 이 지역 현직의원은 한인사회에도 친숙한 올해 82세의 노정객 찰스 랭글이다.
랭글의원은 1970년에 처음 당선된 이래 지금까지 이 선거구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해 왔다. 2년마다 있는 선거에서 강력한 도전자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랭글의원은 흑인 정치인의 대부이자 워싱턴의 거물로 활약해 왔다. 이런 랭글의원에게 선거구 재조정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2011년 선거구 재조정으로 13선거구에 도미니칸계 유권자들이 대거 포함됐다. 덕분에 예비선거에서 재검표까지 하는 소동끝에 도전자였던 애드리아나 에스파야 주상원의원에게 990여표 차이로 간신히 신승했다. 랭글 할아버지는 이참에 정계은퇴를 할 뻔했다.
정치인에게 선거구 재조정으로 인한 최악의 사태는 본인의 선거구가 증발하는 경우다. 앞서 게리멘더링의 전형으로 예를 든 뉴욕주상원 16선거구의 현직 의원인 토비 스타비스키가 여기에 해당한다. 선거구 재조정으로 스타비스키 의원의 자택이 졸지에 11선거구로 편입됐다. 본인의 주소지 선거구에서 출마해야 하는 선거법를 따른다면 11선거구 현직의원인 토니 아벨라와 한판 붙어야 하는 상황이다. 일생을 쉬운 선거만 치러 온 그녀에겐 끔찍한 악몽이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임에도 솟아날 구멍이 스타비스키 의원에게 주어졌다. 선거구 재조정 이후 첫 번째 선거에 한해 현직의원은 본인의 주소지가 다른 선거구로 바뀌어도 이전의 자기 선거구에서 출마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선거구 재조정으로 본인 선거구가 날라간 현직 의원들의 지랄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 규정을 이용해 스타비스키 의원은 현재 16선거구에 출마한 상태다.
선거구 재조정은 정치인의 책임성 강화와 커뮤니티 정치력 신장에도 기여한다. 스타비스키 의원의 경우를 한번 더 인용해 보자. 예전 16선거구 시절에 스타비스키 의원의 가장 유력한 지지기반은 와잇스톤, 아스토리아, 프레쉬 메도우의 백인 커뮤니티였다. 앞서 말했듯이 선거구 재조정으로 16선거구는 아시안 다수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이런 환경변화에 지금 스타비스키 의원은 기민하게 대응하는 중이시다.
후보등록 후 한인 보좌관을 긴급 채용하더니 얼마전엔 한인 단체들을 초청해 정책 간담회까지 주최했다. 뿐만아니라 본인의 홈페이지에 한국어 번역 안내문까지 게시했다.(번역 수준은 개판이다.) 예전에는 이민자 정책현안으로 지역구 사무실을 방문해도 우리를 심드렁하게 대하던 그녀의 극적인 태도변화다.
한인단체 관계자들은 전에없이 살갑게 다가오는 스타비스키 의원을 보며 “아니 이 할머니가 왜 이러시지?”하며 선거구 재조정의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 다음 선거부터는 출마 선거구에 거주해야하므로 이번에 당선된다면 이 할머니가 정든 와잇스톤을 떠나 플러싱으로 이사하는 장관(壯觀)을 목격할지도 모르겠다.
정치인들, 특히 현직의원들에게 선거구 재조정은 피하고 싶은 웬수다. 본인 선거구가 어떤 형태건간에 이미 그들은 선거를 치러 해당 선거구에서 이기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선거구 재조정으로 새로운 선거전략을 수립하고 때론 극심한 경쟁과 과다지출을 해야하는 상황에 내몰릴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가급적 선거구 재조정 과정도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진행하려고 획책(劃策)한다.
반면에 커뮤니티의 입장에선 선거구 재조정은 가슴 설레는 만남이다. 커뮤니티의 성장과 변화에 조응하는 선거구 개편이 된다면 참신한 정치신인의 등장과 정치력 강화의 기회가 열린다. 정치생명 유지에 사활(死活)을 건 정치인들의 의지와 커뮤니티 정치력 신장의 의지가 충돌해 빚어내는 드라마가 선거구 재조정이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뉴욕주의 선거구 재조정은 언제나 막장 드라마의 모습이었다. 연방하원과 뉴욕주상,하원의원 선거구 재조정은 일부의 성공과 대부분의 실패로 종결됐다. 내년도 시선거를 대비한 뉴욕시의원 선거구 재조정이 어떤 엔딩을 맞을지 지켜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