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경험한 실화(實話) 한 토막을 먼저 소개한다. 2009년은 뉴욕지역 한인들이 예년에 비해 유난히 미국선거에 관심이 많았던 해 였다. 갑자기 미국정치에 대한 한인들의 관심이 급상승했기 때문은 아니다. 아직도 미국정치는 1세가 다수를 점유한 한인 커뮤니티에서 스포츠, 연예 기사에도 못 미치는 미지근한 관심사다. 박찬호가 몇 회에 등판해 구속 얼마의 직구를 던졌느니 하는 얘깃거리보다 덜 언급되는 주제다.
아마 한인들에게 미국정치를 주제로 간단한 질문(예를 들어 연방하원의원의 숫자는?)지를 작성해 시험을 보면 대부분 ‘미’나 ‘양’이 나올 것이다. 이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유력한 증거가 있다. 미국의 시민권 시험이다. 시민권 시험이 바로 미국 정치와 역사에 관한 기본 상식을 묻는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민권 신청을 한 대부분의 1세 한인들은 이 시험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다. 갑자기 20~30년 전의 학창시절로 돌아가 예상 문제집이 마르고 닳도록 열공한다.
그럼에도 작년 선거에 한인 커뮤니티가 주목한 이유는 간단하다. 뉴욕 시의원 선거에 한인 후보가 세 지역구에 걸쳐 네 명씩이나 한꺼번에 출마(出馬)한 탓이다. 뉴욕지역 최초의 한인 선출직 공직자를 배출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만빵의 심리가 관심을 부추켰다. 실화는 그때 일어난 일이다. 어느 한인 후보의 선거운동원이 플러싱에 위치한 한인 유권자의 가정을 방문했던 이야기다. 당시 선거운동원의 손에 들려있던 유권자 명부에 따르면 그 집에 20대 유권자 세 명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50대로 보이는 아저씨만이 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다.
“저, 혹시 여기가 XXX씨 댁인가요?” “우리 아들인데, 왜?” “아, 예 저는 누구누구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나왔는데요, 주절이 주절이….” “아, 알았어 됐고, 우리 아들 오면 왔었다고 전해줄게.” “저, 그런데 아자씨는 명부에 이름이 없는데 투표 안하시나요?” “난 시민권 없어. 우리 가족 다 신청할 때 나만 안했지.” “예? 왜 시민권자 되는게 싫으세요?, 유권자가 돼야 권리가 어쩌구 저쩌구…” “아, 됐고. 난 미국 시민권 안 딸거야. 한국 선거에 투표해야 되니까.” 이 대목에서 그 선거운동원은 “아, 예…”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미국에 산지 20년이 다 됐어도 투표는 꼭 한국선거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그 아자씨의 수구초심에 더 이상 말을 섞기가 힘들었다.
플러싱에 거주하는 모 아자씨와 같은 열망을 가진 미주 한인들 아니 더 나아가 전 세계 한인들에게 드디어 그들의 소원을 성취할 기회가 주어졌다. 지난해 2월 한국 국회에서 공직선거법이 개정,통과 되면서 재외 국민들의 투표참여의 길이 열렸다. 먼저 용어부터 제대로 정리하자. 흔히들 재외‘동포’ 참정권법으로 잘못 표기하고 있는데 정확한 명칭은 재외‘국민’ 참정권법이다. 즉 국적을 기준으로 해당 국가 시민권자는 제외한다는 의도다. 미안하지만 미국 시민권자는 제발 참아주세요가 이 법의 기본 취지다. 미국선거나 잘 하세요가 친절한 국회씨의 핵심 메세지라는 말이다.
제도가 현실로 고착되려면 시행착오가 따른다. 재외국민 참정권법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들이 난무한다. 미주지역의 경우 현행 시행세칙 가지고는 정상적인 투표 진행이 어렵다고 볼멘 소리들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현행 선거법이 규정하는 바 재외국민은 거주지역 관할 공관에 직접 찾아가 선거인 등록을 해야한다. 투표 역시 미국의 경우 10개 공관에만 투표소를 설치할 방침이다. 이렇게되면 미국의 한인들은 사실상 투표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도끼눈을 뜨고 분개하고 있다. 이런 논란은 재외국민 참정권법의 적용에 따라붙는 얘기들이다. 정작 중요한 사항은 재외국민 참정권의 효용성과 정당성 문제다.
작년에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보장하는 법개정이 서둘러 추진된 데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기인한다. 헌법재판소는 주민등록 여부에 따라 선거권을 제한하는 이전의 선거법은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아울러 병역이나 세금 같은 의무사항의 준수여부가 참정권 보장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한국 국적자라면 당연히 참정권을 가져야 된다는 원칙의 측면에서 부합한다. 과연 그런가. 재외국민 참정권 문제가 단순히 법률상의 유권해석에 의해 칼로 무자르듯 선명하게 정리될 사안인가.
재외국민 참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의 핵심은 바로 이렇다. 한국의 국내 정치와 정책결정의 결과로 삶에 영향을 거의 입지 않거나 극히 제한된 연관성만 있는 해외동포들이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있냐는 것이다. 다시말해 해외에 살면서 한국정치와는 거의 상관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한국 국민들의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정치판 재편과정인 선거에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이다.
관념의 틀을 벗고 실제 한국의 정치와 정책을 예를 들어 사고해보면 이런 견해가 일정 정도 수긍이 간다. 요즘 한국사회를 강타하며 매일 언론에 등장하는 몇 가지 정책현안을 가지고 살펴보자.
먼저 4대강 개발. 4대강의 개발로 인한 경제효과 또는 환경파괴를 포함한 모든 긍정과 부정의 결과물이 해외동포에 미칠 영향은? 답은 제로다. 그러면 세종시? 개발 예정지에 땅을 구입해 대박의 꿈을 꾼다거나 하는 일부 경우를 빼고 또 다른 행정도시의 건설이 실재 해외동포의 삶에 미칠 영향은? 답은 제로다. 이번엔 무상급식, 본인의 어린 자녀를 한국 학교에 보낼 일 없는 해외동포에게 한국의 무상급식 실시여부가 삶에 미치는 영향은? 답은 제로다. 국민연금의 경우는 또 어떤가. 한국 정부에서 연금 받을 일 없는 해외동포에게 이 정책분야가 갖는 중요성은? 답은 제로다.
앞서 예로든 정책현안들은 한국에 거주하는 국민들에겐 어쩌면 죽느냐 사느냐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별로 상관도 없는 해외거주 한인들이 선거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해 이런 중차대한 정책의 향방을 결정짓는 것이 온당한가. 이 점에 있어선 보다 주밀(周密)한 분석이 필요하다. 한미관계나 재외동포 정책 등 미주 동포들의 삶과 밀접히 연관된 정책 분야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고 참정권을 주장하기에는 다소 지분이 적어 보인다. 선거권이 없더라도 다른 경로를 통해 이런 문제를 대두(擡頭)할 방법도 있다.
호환, 마마보다 두려운 선거패배를 걱정하는 정치인들은 향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외동포를 방문해 각종 공약을 남발할 것이다. 선거에 가까울수록 해외동포와 사랑에 빠지는 한국 정치인들이 속출할 전망이다. 그렇다고 해외동포의 입장에서 너무 흥분할 일은 아니다. 정치인들의 유권자를 향한 추파는 인스턴트 사랑이다. 유효기간이 선거기간에만 한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외동포의 참정권이 재외동포의 위상강화를 확실하게 보장 하겠지만 그것이 한국정치 전체에 긍정적인 결과만을 불어온다고 장담하긴 힘들다.
재외국민 참정권의 시행은 엄청난 폭발력을 잠재한 폭탄의 뇌관이다. 선거결과에 따라 한국정치뿐만 아니라 동포사회의 근간(根幹)마저 뿌리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지난 15대, 16대 한국 대선에서 당락을 가른 표 차이는 각각 36만, 57만 표였다. 재외국민 유권자 수는 300만 명에 달한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한국의 정당들은 슬슬 해외동포사회 조직 다지기에 나섰다.
여기에 한국 정치에만 온 신경을 쏟는 자칭 한인 커뮤니티 리더들이 결합해 한국 정치 바람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재외국민 참정권 실시가 정작 각 나라 동포사회의 자국 내 정치력 신장 활동을 가로막는 요소가 될 가능성이 다분히 엿보인다. 미국정치에 대한 관심은 더욱 떨어지고 한국 선거에 동포사회가 일희일비하는 풍경이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니다. 2012년 4월 국회의원 선거부터 재외국민 참정권은 실행된다.
관련법이 마련되면서 재외국민 참정권의 대세를 거스를 순 없게 되었다.다만 바램이 있다면, 몇 번의 실행과정을 통해 재외국민 참정권의 개선점을 확실히 파악해 올바른 민주주의가 실현되었으면 한다. 이는 유권자에게도 해당되는 애기다. 모국의 선거에 참여하는 흥분의 이면에 본인이 행사하는 한 표가 어떤 무게를 가졌는지 곰곰히 따져보는 지혜가 요구된다.
사족(蛇足)을 하나 덧붙인다. 앞으로 한국에서 표밭 다지기를 위해 뉴욕을 방문하는 정치인들은 제발 덜 느끼한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한국의 정치판엔 품격이라곤 쥐뿔도 없는 흉물스러운 정치동물들이 너무나 많이 서식한다. 그들의 몽타쥬를 실물로 감상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차라리 원더걸스의 공연을 보는게 정신건강에 훨씬 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