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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까모토 료마와 일본군 위안부

글쓴이 : 백영현 날짜 : 2012-08-20 (월) 06:24:13

뜬금없이 하찮은 “조센징” 늙은이 한 사람이 감히 사까모토 료마(坂本龍馬)의 값어치를 언급한다면 오만에 푹 젖어 널브러져 있는 일본인들은 낄낄거리고 비웃을 것이다. 그들의 이 비웃음은 진정으로 료마를 과연 얼마나 알고 웃는 것일까?

격동하는 일본의 근대사, 쇄국과 개화의 갈림길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보장된 자신의 현재를 헌신짝처럼 벗어던진, 띨띨하고 그저 그렇고 그런 일본이라는 나라를 잠 깨워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대문을 열어준 일본 근대사의 정의로운 젊은 아버지, 그는 왕자의 자리를 걷어차고 부처님의 길을 택한 석가모니의 모습에 비유해도 무리가 아니리라.

 

www.en.wikipedia.org 

일본 최고의 검객(칼잡이, 사무라이)이었던 칼의 고수,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진검의 칼끝과 칼날을 거부한다. 마지못한 싸움에서는 칼등으로만 상대방을 쳐 타일렀던 일본역사 최고의 멋쟁이 風雲兒(풍운아) 사까모토 료마. 이 희대의 영웅 사까모토 료마는 무지렁이 일본국을 그 젊은 나이로 새로운 문명세계로 천지개벽을 한 ‘명치유신’이라는 신세계를 열어주며 홀연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기이하게도 그의 생일 날 1867년 음력 11월 15일 교토의 한 여관 오미야에서 한 양아치 자객에 의해 허망한 사무라이 칼을 깊숙이 맞는다. 실로 아깝고, 안타까운 33세. 그가 떠난 지 165년, 그래서 나는 그때 그와 함께 땅에 묻혀 버리고만 진정한 일본의 정신, 일본의 정의는 없다라고 감히 말한다. 다시 한번 되풀이 하노니, 진정한 료마의 부활없이 일본국의 정의란 165년전 료마와 함께 땅에 묻힌채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2012년 5월 6일 오후 4시 23분

“백 선생님, 저 김동석(구 유권자 센터 이사)입니다. 팰팍 시청 회의실인데요. 일본 국회의원 4명, 로툰도 시장 포함 시의원과 비공개회의 진행 중인데 잠깐 나와서 전화 드립니다…”

일본인들이 위안부 기림비 항의차 방문하리라는 짐작했지만…. 드디어 그들의 생 음성과 생얼(본모습) 볼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 덜 끊어진 전화기를 접은 채로 80마일 속도로 팰팍으로 날아간다.

회의실 입구 출입문은(비공개회의) 봉쇄되어 기자들도 다 밖에 있었고 보안 경찰관이 이중 통제하고 있었다. 기림비 보존 사업으로 1년 17일 동안 나에게 고초를 겪었던 로툰도 시장, 제이슨 부시장의 양해 수신호 도움으로 통과한 나는 4명의 일본 국회의원 바로 뒷좌석 30cm 거리에 조용히 앉는다. 가슴이 뛴다.

1) 일본 국회의원들의 요약

ㄱ) 위안부 기림비에 쓰여진 20만명의 숫자는 사실과 전혀 다른 허구(거짓)

ㄴ) 위안부는 모두가 그 신분이 창녀(매춘부)

ㄷ) 순수한 위안부 숫자는 “0명”(단 한명도 없다)

2) 팰팍 로툰도 시장, 제이슨 부시장, 시의원들의 답변

로톤도 시장 : “기림비에 새겨진 모든 글귀와 숫자는 하나하나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검증을 거친 후에 작성한 것이며, 이 기림비는 전쟁을 거부하며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미국 시민의 세금으로 세워진 역사, 교육의 큰 뜻을 지닌 숭고한 사업이다.”

제이슨 부시장 : “위안부에 대한 진실은 한국의 ‘나눔의 집’을 방문하여 직접 확인하는 것이 최선이다.”

카발로(기림비 설계, 디자인한 미술가) : “위안부의 진위는 살아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보면 안다. 그보다 더 이상의 무슨 확증이 필요한가” 하며 개탄.

일본인이 한 ‘20만명이 매춘부 창녀’라는 대목에서 나는 憤怒(분노)가 치솟아 벌떡 일어났다. “그 숫자는 일본대학에서 일본교수가 집계하여 발표한 것”이라고 소리 지르자 제재를 당했다. 발언권 없는 나는 입 다물기를 약속하고 쫓겨남을 가까스로 모면한다.

3) 일본군 위안부의 요약

ㄱ) 정의 - 일본군 위안부, 일본군 성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즉 2차대전 동안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강제 또는 기만에 의해 징용되어 성적인 행위를 강요 받은 여성. (UN 인권 소위원회의 공식용어)

ㄴ) 위안부 총인원 일본국 위안부 총 인원은 정확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으나 쥬오대학 요사미 요시아키 교수의 계산법에 의해 최소 약 2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30만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ㄷ) 위안부 모집에 구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을 인정한 고노 관방장관 담화를 무시하고 (거짓으로 매도) 20만명의 위안부는 전원 “매춘부이며, 강제연행 없었다”는 일본 우익 분자들의 억지는 일본의 올바른 본래의 정신을 뿌리채 갉아먹고 일본을 4류국가로 전락시키는 박테리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위안부’에 대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o 1994년 8월 31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

총리대신(총리) : 위안부에 대해서 사죄 담화발표

o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 위안부에 대해서 사죄의 편지

o 1937년 12월 21일 중국 상해주재 일본 총 영사관 소속 경찰관이 보낸 문서 : ‘황군 장병 위안부녀 도래에 관한 의회의 건’ 공문 공개.

o 미 의회 조사국(CRS) 자료.

o 일본 요시미 교수(위안부 20만명 숫자를 계산한 일본인 교수)가 1980년 위안부 서류에 중국 북부를 점령한 구 일본군 참모가 위안소 설치를 명령한 내용 확인.

o 중국 1956년 일본인 전범재판 : 스즈키 히라쿠 중장의 자필 진술서에 조선인, 중국인 여성들 납치해 위안부로 사용했다는 내용 있음. 이 외에도 끝도 없이 수 많은 증거 자료들이 있음. 일본의 사악한 무리들의 ‘위안부 부인’ 억지는 어느 곳으로도 뻗을 수 없다.

4) 일본 국회의원 4명이 팰팍 위안부 기림비 항의 비공개 회의를 요청하던 바로 전날 5월 5일

ㄱ) 한 10년간 계속된 한국 토종 라일락 보급 운동이 꾸준히 지속되어온 보람으로 할렘에 위치한 PS-MS 57 중학교 내에(Dream Garden) 첫 라일락을 식목했다. 라일락 식목을 위해 한 8개월을 꾸준히 애쓰신 한국인 과학교사 제니퍼 김 선생님, 그리고 내가 존경하는 일본인 아이꼬 박사와 일 잘 끝낸 우리는 뒤풀이로 싸구려 국수집에 들러 양국 정부가 제외된 민간 차원의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구상을 모색하자는 의견교환이 있었다.

ㄴ) 아이꼬 박사의 철학과 신념(아이꼬 박사는 2011년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회동 시 일본인으로서 유일하게 증언한 국적을 초월한 연사로서 널리 알려짐)

“나는 2007년 미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위안부 결의안을 제출한 민주당 마이크 혼다 의원이 일본인의 피를 타고 났기에 같은 일본인으로서 뿌듯한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고 미래의 평화를 같은 공동의 노력으로 공유하는 성스러운 작업에 국적이라는 멍에는 저에겐 아무런 장애 요소가 되지 않습니다. 2차대전 시 우리 조상들에 의해서 있었던 암울한 옳지 못한 일들을 저는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믿고 있는 신념은 미래를 진지하게 고쳐 나가는 현재의 공동노력이야말로 과거의 잘못을 진정으로 지울 수 있는 유일한 작업이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ㄷ) 일본군 위안부, 일본 정부의 사과?

일본정부가 위안부에 대해 사죄하는 것은 天地開闢(천지개벽)이 열 번 일어나도 결코 없고, 영원히 없을 것이다! 일본회, 새역모(새로운 역사 모임) 그 속안을 깊숙이 들여다 보라. 그들의 가장 깊은 곳에 끓고 있는 용암같이 꿈틀거리는 대동아 전쟁의 추억과 향수 속에 잠겨있는 그들만의 자긍심, 위대한 대 일본제국 황군을 좀 즐겁게 해 줬기로서니…… 그 실상을 바로보아야 한다.

1884년 12월 30일에 태어나 1948년 12월 23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도조 히데끼. 그는 마지막 유언으로 나약해 빠진 내각의 병약한 국민을 탓하고 원망하며 세상을 하직한다. 그의 허망한 꿈을 바라보며 의로운 료마의 후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거듭 말하노니 1867년 음력 11월 15일 그의 죽음과 함께 땅에 묻혀 버린 일본 고유의 올곧은 정신과 일본의 정의가 료마의 부활과 함께 환생함을 고대하는 이유이다.

후지산이 세월에 닳고 닳아 서울 남산보다 낮아져도 일본열도가 다 가라 앉아도 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사과는 절대 없다. 그러니 제발 일본 정부를 향해 사과를 구걸도 애원도 그리고 강요도 하지말자.

사과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품질에 속한 것. 500년 지난 후에 미안하다는 말이 열린다면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넉넉함을 갖자. 일본 정부 품질의 한계를 우리 모두가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바라보자.

두 나라 총영사의 비교

일본 : 일본 총영사(주뉴욕) 시끼유게 히로키 팰팍시를 방문하여, 미•일 우호증진을 위해 도서관 서적 기증, 벚꽃 길 조성, 재정지원,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 등을 제안, 그 조건으로 위안부 기림비 철거를 종용 했다.(2012년 5월 1일)

한국 : 대한민국(주뉴욕총영사) 김영목 작년(2011년 12월) 팰팍 기림비가 우여곡절 끝에 새로이 단장된 조촐한 기념식장 방명록에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백 선생님, 나는 국가의 녹을 먹는 나라를 대표하는 직업 외교관 입니다. 본국에 훈령 없이 개인의 신념이나 철학을 공공장소에서 항상 자제해야 합니다. 2차대전 말기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 나가사끼에 원폭을 투하했다는 죄의식 때문에 인류전쟁 사상 가장 처절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언제나 지극히 소극적이었던 미국 지도부를 바라보며 야속해 했던 개인 김영목, 오늘이야말로 미국의 위대함을 세삼 느끼게 하는 뜻 깊은 날입니다.

일본 혈통의 혼다의원, 그가 발의한 ‘위안부 결의안’을 수용하고 함께했던 미국 지도부의 정의의 힘. 로툰도 시장을 위시한 부시장 제이슨 김, 모든 시의원, 화가 카발로 선생, 김동석, 김동찬씨를 포함한 모든 애쓰신 분들. 이들은 한•미 이민사에 영웅들로 기록될 것입니다. 백 선생님, 부탁컨데 기림비 보존과 교육에 일본인 민간인들의 진정한 참배를 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못하는 일을 민간차원에서 구상해 주십시요.” 비교되는 양국의 관리들.

2차대전의 원흉 도조 히데끼. 우리 민족사에 가장 비통한 상처를 준 이또 히로부미 그 후예들만 창궐하는 일본제국 현금의 정치지도부. 그대들에게 묻노니, 나를 비웃는 그대들이 진정으로 사까모토 료마를 얼마나 아는가?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를 다시 읽고 료마 기념관에 들러 밀납인형 앞에서 다시 한번 165년 그의 철학과 신념을 되씹으며 그의 부활을 하늘에 기도하라. 그의 위대한 부활이 없는 일본제국, 다시 세계 1위의 경제대국 자리를 되찾아도 나라의 품질은 3류에도 못 미치는 4류 국가의 수준을 못 벗어날 것이다.

2012년 5월 6일 팰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2차대전,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수천만 명의 인명을 죽고, 상하게 한 지구상 최대 비극을 안긴 악마들의 후예들. 4명의 일본 국회의원(지성파 악마), 그들은 20만명 일본군 위안부 비석을 손가락으로 지적하며 “창녀! 매춘부!”라 칭하였다.

일본국의 품질 등급을 10단위나 추락시킨 제2의 날개 부러진 가미가제 특공대. 팰팍 기림비 앞에는 더 이상의 진주만이 없었다. 이들은 자칭 자랑스럽게도 북한의 일본인 납치가족 송환 위원회의 대표 골수 분자들……(인권이란 이름으로) 분하다는 마음보다 드디어 그들의 “생얼”을 본 뒤끝은 그저 환멸 뿐.

끝으로 도꾜 가쿠게이 대학에 선생으로 계신 이수경 교수의 편지를 간단히 소개한다. 지면상 다 수록할 수는 없어 요약만 본다. 3•1절을 즈음하여 산케이 신문 서울 지국장인 구로다씨의 코멘트로 시작된다.

구로다씨는 “놀라운 것은 위안부 출신의 나이든 여인들이 지금은 매스컴으로부터 마치 독립 유공자와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창녀 출신들이 독립 유공자인양 행세한다는 뜻)” 라고 했다. 그가 만약 한국인 이었다면 그가 이 비참한 전쟁에 희생된 그분들의 삶을 자신의 어머니나 누이, 아내의 입장으로 이해를 했다면 그래도 그런 말을 하늘에 뱉을 수 있었을까?

일본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적인 대상으로 만들어 과거 일본군의 책임회피를 도모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매춘부, 창녀로 호칭하며, 일본의 미래까지 사악하고 무책임한 나라로 만들려는 한심한 모습을 본다. 분명한 것은 일본의 침략전쟁이 없었다면 그녀들의 삶이 위안부로 전락되거나 그토록 처참하게 매도 당하여 굴욕적인 삶을 강요 당하고 살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전쟁을 모르고 태어난 차세대 젊은 후손들에게 우리가 짊어질 책임을 우리 양국의 기성세대들은 더 해야 한다. 격동하는 글로벌시대. 일본의 국가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과거 잘못된 전쟁에서 파생된 더러운 행위에 대해 비열하게 변명하고 부정하는 억지의 태도는 진심어린 반성을 해야 한다.

몹시 잘못된 일부 특권층의 조상들이 행했던 혹독한 침략전쟁이기에 그들 후손인 2~3세 의원들이 이를 합리화하고 미화시키려 하는 행위는 되레 좋은 나라 일본국의 이미지만 망치는 재난을 당할 뿐이다. 늦어도 책임을 지는 최선의 태도로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선진 일본을 보여 줄 때이다.

동아시아 共存共榮(공존공영)을 부르짖었던 동아시아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 그리고 ‘의사 안중근’, 공교롭게도 두 영웅 다 日本인에 의해 살해 된다. 한 분은 사무라이 칼에 또 한 분은 전투 중에 체포되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비무장 상태로 얼굴에 자루를 덮어쓰고 손이 뒤로 묶은 채 살해된다.

지난 여러 나라의 역사 속에 수 없이 보아왔던 일류 성인들, 지사들은 거세되고 2류, 3류 따라지들이 판치는 세상이라 하지만 진실로 통탄하고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좋은 시절이 언젠가는 와서 두 거인의 철학과 신념이 듬뿍 넘치게 담겨져 있는 동아시아 공존, 공영을 두 양국이 함께 노력하는 세월이 올 것인가?

 

맺는 글

나는 극단의 평화주의자, 그리고 나의 직계 조상들과는 달리 극 친일파이다. 일본의 0.01%에 해당하는 일본을 사악하게 만든 일부 극단 주의자들을 제외한 99.9%의 일본인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양념 넣지 않은 싸구려 일본 우동, 뜨거운 공기밥에 푹 파묻어 둔 우메보시. 평생 꼭 한번 가보고 싶은 혹카이도의 시레도꼬, 같이 일하던 이와이, 나카노, 미키, 고자마, 테라구찌, 요시이, 1970년대 다같이 일하던 그리운 얼굴들. 나는 어떤 독한 놈이 담배를 한방에 끊어버리듯 내 인생에서 그들의 추억을 싹둑 잘라내 버렸다.

이렇듯 나는 세상에서 가장 옹졸한 놈.

과연 나는 죽기 전 언제 이 굴레를 벗어 날 수 있을 것인가?

제2편 나가하마 가즈고

우리 선조 강항의 넉넉함

그리고 임진왜란의 뒤풀이 코메디.

미국명: 고래고기 백, 백영현

13-09 Saddle River Rd., Fair Lawn, NJ 07416

201-925-0094(C)

한국꽃집(Cliff Garden Florist)

이 글은 하늘나라에 계신 나의 형 백충현 그리고 57년 만에 만난 그의 친구 큰 시인 마종기 선생께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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