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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갈매기 뉴욕을 날다
부산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공학과 졸업, 부산광역시청에서 24년간 전기기술자로 근무하다 2006년 2월 사무관으로 명예퇴직, 50세의 나이에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연고자 하나 없는 먼 이국땅,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과 모험은 시작된다. "내 생의 화려하고 찬란했던 1막1장을 끝내고,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지만 1막2장에서 땀과 눈물과 감동의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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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주권(永住權)은 받았지만...

글쓴이 : 부산갈매기 날짜 : 2010-07-19 (월) 06:06:19
 
 

집에 도착 후 1주일쯤 지나자 미국 대사관에서 우편물(郵便物)이 도착했다. 크고 두툼한 봉투였다. 동봉한 내용물은 이민(移民)비자가 첨부된 4개의 새 여권이었다. 그렇게도 염원했던 미국이민 비자를 막상 받게 되자 현실적이고 심도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가 태어나 50년을 살아오면서 만들고, 쌓고, 이뤄온 많은 것들,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여러 가지 안팎의 모든 사회조직과 생활, 그 많은 인연(因緣)들을 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몇몇 직장 동료, 친한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이민가는 게 아니라 가봤으면 한다는 뜻을 비쳐봤는데 한결같이 “뭐? 정신 나간 소리 집어 치워라, 그 나이에 이민은 무슨 이민?” 이었다. 모두들 한결같이 워낙 강하게 반발하는 터라 구체적인 대화는 아예 꺼내보지도 못했다. 이러다 보니 혼자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몇날 며칠을 끙끙거리며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친분이 있던 서울의 모 중소기업 이사로 있는 L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가 미국 출장갈 일이 있으니 혼자서 고민하는 것 보다 같이 현지에 가서 회사의 규모나 주변 환경 등을 한번 확인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좋은 제안이라 수락하고 2005년 9월 중순에 현장답사(現場踏査)를 하게 된다.

나의 비자 목적은 취업이민이며 취업할 회사 소재지는 버몬트(Vermont State)에 있는 작은 전기회사였다. 인터넷으로 몇 번이고 검색해 봤지만 회사의 정확한 소재지나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없었다.

뉴욕의 JFK공항에 도착하자 공항에서 소형 승용차를 렌트하여 뉴욕에서 북으로 장장 6시간 정도를 운전하였다. 뉴욕 주에서 출발하여 코네티컷(Connecticut State),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State), 뉴햄프셔(New Hampshire State), 버몬트(Vermont State)로 가는 길은 무척 아름다웠다. 정말 아름다운 자연환경이구나를 연발하며 사전 현장답사라는걸 잊고 여행을 즐겼다.

고속도로 중간중간에 위치한 아름답고 예쁜 휴게소며 다양한 차림새의 여행객들, 그리고 평소 맛보지 못했던 신기한 음식들에 감탄하기도 했다.

미리 주소를 알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와보는 낯선 곳에서 작은 회사를 찾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참을 헤맸다. 어렵게 그 회사를 찾았는데 아뿔싸! 이건 회사가 아니었다. 작은 창고였다. 당연히 이 회사를 찾는데 많은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회사라고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건물이었다. 회사의 소재지, 규모에도 놀랐지만 겉으로 보이는 관리상태도 경악하게 했다.

L씨가 하는 말 “그렇게 좋은 초현대식 시청건물에 근무하다가 이런 시골 저런 창고에서 근무하겠습니까? 아무리 미국이 좋은 나라라고 하지만 이런 곳으로 이민 오는 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였다.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나의 대답은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자“ 였다. 근데 L씨는 ”해도 저물어 가고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하룻밤을 이 근처에서 묵고 이 지역 주변 관광을 즐기고 떠나자“는 것이었다. 백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여관, 워낙 시골이라 지나가는 자동차도 거의 없이 아주 적적(寂寂)한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빵1개와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때우고 난 뒤 L씨 하는 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회사가 소재한 타운의 규모며, 중고등학교 시설 등 주변 환경을 둘러보고 회사주변도 한 번도 살펴보자“고 했다.

당연히 대학은 있을 수가 없고 초등학교 1개, 중고등학교 건물을 함께 사용하는 학교 1개가 있는 조용한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유색인종(有色人種)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는데 그 작은 시골에 중국식당 하나가 있었다.

중국인의 지독한 상업성에 다시 한 번 놀라며 점심을 그 식당에서 먹었는데 절반 이상을 남겼다. 평소에 맡아보지 못했던 향료며, 느끼함과 입안에서 강하게 거부하는 이상한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도대체 마음 정리가 되지 않았다. 현지 확인을 통하여 눈으로 직접 많은걸 확인했지만 좀처럼 갈등과 번민은 줄어들지 않았다. 햄릿의 독백(獨白)인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그래도 가느냐, 마느냐 였다.

가슴앓이f를 하며 몇 달이 흘러가는 가운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시간적 정신적으로 허비하지 말고 그 회사 사장을 만나 직접 담판(談判)을 짓는 게 낫겠다는 거였다.

현재 당장 이민 올 형편이 아니므로 1년 정도 연기가 가능한지, 만약 연기가 불가능 하다면 깨끗이 이민을 포기해버리자는 내 생각이었다. 이런 최종 결정을 내리기 위하여 혼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2006년 1월 초였다.

뉴욕공항에서부터는 여행사에서 소개한 가이드와 동행했다. 회사가 소재한 곳에 도착하자 가이드가 “안 선생님, 제가 미국에서 10년 이상 살아왔지만 이곳으로 이민 오는 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과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민은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영주권은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한다. 나의 대답은 “일단 사장을 한번 만나보자” 였고 회사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놀라웠다! 밖에서 보는 회사의 건물과는 전혀 딴 판이었다. 아주 깨끗하게 정리된 자재며 작업도구들, 그리고 별도의 사장실에는 참고도서며 많은 도면들이 깔끔하게 정리정돈 되어 있었다. 사장 혼자 근무하고 있었는데 보통 키에 깡마른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백인이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이 회사에 취업하기로 되어있는 한국에서 온 누구이며 옆에 있는 사람은 미국에 살고 있는 조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이 사장이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이미 한국에서 한 사람이 와서 현재 근무 중이라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연속하며 회사 사정상 추가직원을 채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갑자기 내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이미 모든 걸 정리하고 우리 가족 모두가 이민을 왔고 현재 뉴욕에서 체류 중인데,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냐, 이주공사에 책임을 묻겠다. 고 했다. 그러자 “아마도 행정절차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때 동행한 가이드가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럼 이분이 어느 주에 가서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가도 이 회사에서 문제를 삼지 않겠느냐?” 고 했다. 답변은 ”당연히 문제를 삼지 않겠으며, 필요하다면 서면으로 의사를 표시하겠다. 앞날에 행운을 빈다. 고 했다. 이 사장이 서명한 Letter를 받고 간단한 작별인사를 나눈 뒤 밖으로 나왔다.

가이드 하는 말 “안 선생님 복권 주웠네요! 이 기쁨을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s)에 가서 소주 한잔 하시며 푸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길로 자동차는 Niagara Falls로 향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밤 늦게 도착했고 가이드가 알고 있는 한국식당에 갔다.

소주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이민 목적이 바뀌었다. 취업이 아니고 식당운영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도 단 한번 장사 경험이 없는데도 식당운영을 하며 살아가기로 결정하고 이틀간에 걸쳐 관계되는 몇 사람을 만나서 중요한 사항들을 의논한 뒤 귀국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친구, 동료, 가족들에게 미국 이민 목적은 취업이 아니고 식당운영이라고 소문을 내자 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당신이 식당을 운영하면 생선이나 육류를 잡는 것이 아니고 아내를 잡을 것”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 가족은 Niagara Falls 주변에서 식당을 운영하기로 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막상 미국에 도착해 Flushing에 있는 동안 식당 운영과 관련하여 여러 상황을 재확인한 결과 팔기로 한 식당주인과 나를 소개한 사람 간에 불협화음(不協和音)이 있었고 신뢰(信賴)하지 못할 점들이 발견되었다.


 


박선이 2010-07-20 (화) 11:44:38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시리즈로 앞으로 계속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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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2010-07-30 (금) 22:02:12
반갑습니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멋지십니다.. 다음 이야기 기다려지네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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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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