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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갈매기 뉴욕을 날다
부산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공학과 졸업, 부산광역시청에서 24년간 전기기술자로 근무하다 2006년 2월 사무관으로 명예퇴직, 50세의 나이에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연고자 하나 없는 먼 이국땅,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과 모험은 시작된다. "내 생의 화려하고 찬란했던 1막1장을 끝내고,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지만 1막2장에서 땀과 눈물과 감동의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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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던 날

글쓴이 : 부산갈매기 날짜 : 2010-06-07 (월) 00:38:57



2006년 2월 27일 오전 5시, 요란한 자명종 소리에 놀라 우리가족은 정신없이 일어났다. 장인, 장모님 그리고 처남 둘, 동서와 처형 등 처가식구들도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솔직히 표현하면 잠에서 깨어난게 아니라 모두들 그냥 눈을 떴다. 우리가족은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했고 처가식구들 또한 지난밤엔 모두가 뜬눈으로 지새다 시피 했다.


처형은 언제 일어났는지 언제 또 만날지 모르는 하나 있는 여동생 가족들을 위하여 뜨끈한 국밥을 준비하였다. 우리 4명은 먹는 둥 마는 둥 몇숟갈씩 성의만 표시하고 미리 챙겨둔 짐꾸러미를 준비된 차량에 실었다. 밖은 아직도 깜깜하고 추위 또한 매서웠지만 작별이란 큰 슬픔이 그러한 환경을 덮어 버렸다.


아내는 언제부터 울기 시작했는지 온통 얼굴이 부어 있었고, 아이들은 아직 아무것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전 방안에서 장인, 장모님께 가족 모두 큰절로 작별인사를 할때도 괜찮았던 난 집앞 주차장에서 “안서방 잘 살아야 돼!” 하는 장인어른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심장이 멎는 듯,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전율의 슬픔을 씹어야 했다.


“녜” 라는 대답은 목에서 생리적으로 거부하고 있었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었다. 결혼후 23여년간 한번도 장모님의 우시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는데 싸늘한 2월의 새벽 어둠속에서 소리 내 흐느끼는 당신의 모습은 지금이라도 모든걸 포기하고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누군가가 외치는 “늦기전에 빨리 공항으로 출발해야지” 하는 소리에 장인, 장모님을 제외한 온 가족이 미리 준비한 자동차에 나눠탔다. 내가 운전하는 9인승 카니발 그리고 처형이 운전하는 터블캡은 싸늘한 2월의 새벽공기를 가르며 김해공항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직장 동료 몇 명, 초등학교 동기생 몇 명이 가족동반으로 작별을 나누고자 이미 도착해 있었지만 막상 본가 식구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의 슬픔은 또다른 슬픔으로 겹쳐져 형용할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초등학교 동기생 몇 명은 “그 나이에 이민은 절대 안됀다고 몇날 몇일을 말렸는데 오늘 이 출국이 왠말이냐”며 이별의 슬픔 보다는 오히려 분노에 가득찬 표정이었다.
 
 
모두가 작별의 아쉬움에 젖은 표정으로 흔드는 손을 멀리하고 탑승장으로 들어갈 때 아내와 두 딸들은 절규하듯 울고 있었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애의 울음이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기도 하였다.


오전 8시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챙겨 나오자 서울에 살고있는 몇몇 처가 가족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내가 미국행 출국 수속을 진행하는 내내 아내는 공중전화기 앞에서 아직도 풀지못한 슬픔을 토해내고 있었고 아이들은 간간히 이종사촌 언니들과 기념 촬영도 하며 웃다가 울다가 희비가 여러번 교차하고 있었다.


 
 

그동안 여러차례 해외여행을 한적이 있었지만 막상 출국신고서의 출국사유란에 '이민'이라고 적자 이제는 영영 이 땅을 밟을수 없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덜컥 가슴이 내려 앉았다.


그렇게 출국신고를 마치고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우리가족은 아무말 없이 지친듯 지정된 좌석에 몸을 맡긴채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긴 여행을 시작하였다. 당시 내 나이 만 50세, 아내나이 만 46세, 큰 딸 1주일전 고등학교 졸업, 작은 딸 1주일전 초등학교를 졸업한 상태였다.


비행기가 정상고도에 오르자 몇 개월째 송별회다 뭐다 해서 마신술과 수면부족으로 온몸은 피로에 빠졌지만 뇌리는 온통 지나간 과거회상과 닥쳐올 미래에 대한 잡념들로 혼잡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23여년간 몸담았던 공직생활의 아쉬움이 현재 무직상태라는 공포로 찾아들었고 하늘의 별이라도 따겠다던 시퍼런 각오와 태평양만한 희망은 점점 줄어들어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크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장차 얼마나 큰 행복이 우리가족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과 아쉬움을 가져다 주나고 생각하자 내가 너무 큰 죄를 짓고있지 않은가 싶었다.


그렇게 오랜시간동안 비몽사몽 회환과 번민으로 헤메고 있는 동안 잠시후 JFK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에 가족 모두 감전된 듯 일어나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계속>
 
 

 

한동춘 2011-07-01 (금) 08:13:55
1978 년 미국행 비행기를 타던 때가 생각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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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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