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벗님들께 보내는 서른여섯 번째 편지
벗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 세계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신음하는 가운데 정말 어려웠던 경자년(庚子年)이 저물어갑니다. 내일 아침 교회에서는 대림환의 마지막 촛불이 켜지면서 저녁에는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겠지요. 성탄은 종교를 초원한 인류의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도 과거 신문사에 있었을 때 뉴욕인근의 원각사 故 법안스님으로부터 성탄절과 부활절에 축하휘호를 받아 매년 게재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러나 “Gloria, in excelsis Deo”를 소리 높여 노래하며 기쁨을 나누어야 할 올해 성탄절은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예년처럼 흥겹지 않습니다. 저도 지난 부활절에 이어 성탄절에도 미사참례가 사실상 어려울 것 같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무척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성탄을 계기로 새해에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가 1.79)라는 즈가리아의 예언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코로나는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참으로 심각합니다. 지금까지 무려 8천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전염되어 벌써 173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제가 사는 뉴욕 롱아일랜드 2개 카운티 인구를 합치면 250만 명으로 대구시와 맞먹습니다. 그런데 이미 16만3천명이 감염되고 4천6백명이 죽었습니다. 미국 전체로는 1900만 명 확진자에 33만 명이 넘게 사망했습니다.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연일 전면적 셧다운 직전이라며, 셧다운은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며 제발 연말연시 모임 금지와 철저한 거리두기를 호소하고 있지만 주민들이 얼마나 호응할지 알 수 없습니다. 설상가상 미국과 가장 교류가 활발한 영국에 변종 코로나가 발생해 뉴욕주도 비상입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 반드시 코로나 검사를 받아 음성일 경우에만 비행기에 탑승하도록 영국과 합의했습니다.
조국 한국에서 들려오는 코로나 소식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서울, 경기, 인천 수도권이 심각하다고 하니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세계 순위 90위로 양호한 편입니다. 미국에서 백신이 접종되기 시작해 저와 가까운 분도 오늘 백신을 접종하고 오셨습니다. 병원에서 봉사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장 파우치 박사는 미국시민들이 광범위하게 백신을 접종하려면 내년 여름 중순이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가끔 접종 후 부작용도 보고되기 때문에 꺼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펜실베이니아 노샘프턴 카운티는 요양시설 직원들 대상으로 코로나백신 접종받으면 750달러(약 82만원)를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백신접종을 의무화할 수 없기 때문에 상여금으로 접종률을 높이려는 것입니다. 팬스 부통령도 TV중계로 백신을 접종했으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 부부도 22일 백신을 공개 접종했습니다.
며칠 전 뉴욕에 첫 눈이 내렸습니다. 대설입니다. 12인치(30센티) 눈이 밤새도록 내려 천지가 하얗게 변했습니다. 강풍까지 겹쳐 드라이브웨이에 주차했던 차는 ‘눈자동차’가됐습니다. 늙은이 둘이 이틀에 걸쳐 삽질하느라 온몸이 뻑적지근합니다. 아이들이 하나씩 독립해나간 후 해마다 눈 치우는 것이 몹시 힘들어갑니다. 큰 제설기로 후다닥 치우는 이웃노인이 부러워 다가가 앞으로 대설이 오면 우리 집 눈까지 부탁한다고 했더니 쾌히 승낙합니다. 물론 대가를 지불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한 시름 덜었습니다. 자동차를 간신히 뽑아 자주 산책하던 집에서 가까운 아이젠하워 파크에 갔습니다. 대충 공원길 눈을 치워놓아 아이들은 언덕에서 플라스틱판에 앉아 눈썰매를 즐깁니다, 큰 녀석들은 스노우보드를 연습합니다, 주인 따라 나온 강아지들은 눈밭에서 뒹굴면서 천방지축 뛰어다닙니다. 큰 눈이 오면 어른들은 눈 치우느라 죽어나고 아이들과 강아지들은 제 세상만난 듯 신바람이 납니다. 살짝 살얼음이 덮인 작은 호수에는 얼지 않은 부분에서 오리들이 헤엄치고 거북이들도 물가에서 해바라기 합니다. 대설에 성탄전야에는 때 아닌 강풍과 호우가 예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골목 집집마다 휘황찬란한 오색전구로 장식해 성탄절과 연말연시 분위기를 물씬 풍겨줍니다. 겉으로는 이런 평화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미국의 연말연시는 기쁨과 설레임보다는 코로나가 무서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입니다.
겨울바다는 쓸쓸한 가운데 나름대로 매력이 있습니다. 파도소리를 벗 삼아 모래밭을 걸으면 젊은 시절 동해 경포대 겨울해변을 걷던 생각이 납니다. 며칠 전 해변 주차장에서 어느 남성이 양손을 벌리고 서 있고 손바닥에 비둘기 서너 마리가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앞에서는 부인이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고 있습니다. 마치 평화의 성자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그림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신기한 마음에 곁으로 가보았습니다. 간단했습니다. 양 손에 좁쌀 같은 모이를 쥐고 있던 것입니다. 미리 바닥에 뿌려놓았던지 비둘기들이 수 십 마리 모여 쪼고 있었습니다. 갈 때마다 비둘기, 참새 떼들이 같은 장소에 모여 있던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또 갈매기는 주로 낚시꾼 부근에 모입니다. 낚시꾼들이 가끔 물고기를 이들에게 던져줍니다. 갈매기는 물고기를 부리로 쪼아 구멍을 내고 내장부터 먹습니다. 살점은 거의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갈매기가 물고기를 잡는 방법도 신기합니다, 공중 높이 나르다 물속의 고기를 발견하면 번개처럼 수직 낙하해 낚아챕니다. 조개 잡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개를 물고 높이 날라 딱딱한 아스팔트나 바위위에 던집니다. 두꺼운 껍질을 산산조각낸 다음 살점만 물고 날아갑니다. 비둘기, 참새, 오리들이 먹이를 갖고 다투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갈매기는 서로 먹이를 낚아채려 다툽니다. 참새, 오리가 철저히 떼를 지어 날아가는 등 단체성이 강한데 비해 갈매기는 단체행동이 느슨합니다. 떼 지어 나르기도 하지만 무리에서 이탈해 개별 행동하는 갈매기가 많습니다. 반면에 오리들은 가족단위로 행동하다가 집단을 이루면 단체적으로 행동합니다. 오리 떼들이 모인 곳은 마치 ‘호떡집에 불난 듯’이요란하게 짖어댑니다. 그러다 의견일치를 보았다는 듯이 갑자기 조용해지며 일제히 떼 지어 날아갑니다. ‘해변의자연교실’은 이처럼 흥미진진합니다.
벗님들께 우스개소리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당겨 ‘미리 크리스마스’로 인사드립니다. 미국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코로나에 각별 유념하시어 건강 챙기시기 바랍니다. 벗님여러분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0년 12월23일
뉴욕에서 장기풍 드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b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