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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다가 지하철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됐다. 더 늦기 전에 젊은 날의 로망이었던 세계일주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출가하듯 비장한 각오로 한국을 떠났다. 무대뽀 정신으로 좌충우돌하며 627일간 5대양 6대주를 달팽이처럼 느리게 누비고 돌아왔다. 지금도 꿈을 꾸며 설레이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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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빠이

치앙마이 치앙라이
글쓴이 : 안정훈 날짜 : 2023-02-06 (월) 14:11:33

치앙마이 치앙라이

 


 

빠이랑 빠이빠이하고

치앙마이를 거쳐 치앙라이로 왔다.

빠이는 방콕에서 812km 떨어져 있다.

치앙마이에서는 130km 북쪽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미얀마와 가깝다.

대부분 산 길이다.

750개의 굽이 길을 돌고 돌아 넘어 가야한다.

차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옛날에는 접근성이 더 나빳다.

게다가 대마초 천지였다.

물가도 쌌다.

자연스럽게 히피들의 성지가 됐다.

지금 태국은 대마초가 합법화 되어있다.

굳이 힘들게 산 속 마을을 찾아 들어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인프라가 잘돼있어

여전히 장기 배낭 여행자의 개미 꿀단지로 자리 매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너무 유명해져서 호기심을 갖고 찾는 관광객이 넘친다.

빠이의 워킹 스트리트와 나이트 바자는 방콕의 혼잡한 여행자 거리인 카오산 로드처럼 되어 버렸다.

딱 리틀 카오산 로드다.

가족 여행자들이 제법 보이는것도 비슷하다.

노랑 머리 서양인들이 검은 머리 동양인들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길거리 음식점이 촘촘히 들어서지만 아침에 나가보면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있다.


낮에는 산과 들과 강을 찾아 나가서 시내는 텅 빈다.

대중교통이 전무하기에 스쿠터 없이는 지내기 힘든 동네다.

면허증이 없어도 운전 경험이 없어도 오토바이를 렌트할수 있다.

하루 빌리는데 만원도 안된다.

 


 

밤이 되면 거리는 화려하게 변한다.

식당, 술집, 라이브 카페, 노점상, 길거리 음식 좌판, 기념품점, 대마초 가게, 맛사지 숍 등이 북적댄다.

나는 강가의 오두막 방갈로가 맘에 들었다.

공기도 맑고 조용해서 지내는 내내 숙면을 취할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건 근교 투어나 번화한 거리 구경이 아니라 잠을 제대로 푹 잔거였다.

먼 길을 힘들게 가서 잠만 푹 잘 자고 왔다고 말하는게 좀 우습긴하다.

 


방갈로 숙소 


그러나 여행에 정답은 없다.

어떤 방식의 여행이든 나쁜 여행은 없다.

같은 장소에서 각자의 다른 방식으로 만족하면 좋은 여행이다.

 

**************************************

 

<치앙마이 벙개>

 

지금 태국은 한국인들로 넘쳐난다.

우스개소리로 대한민국 방콕 직할시, 경기도 치앙마이시라고 농담을 할 정도다.

치앙 마이를 떠나기 전 날 급 벙개를 쳤다.

삼겹살에 쏘주 파티라고 했더니 무려 12명이 모였다.

23살부터 71살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지나가다 들른 나이 많은 두 분은 분위기를 보더니 인사만 하고 자리를 비켜준다.

직업 또한 다양하다.

교사, 의사, 간호사, 자영업자, 직장인, 요리사, 뮤지션, 농부, 백수, 은퇴자 등등

전에는 오다가다 마주치면 눈인사만 나누던 사람들이다.

술 한잔 나누고 나니 급 친해진다.

연락처를 교환한다.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해서 만나자고 취중 진심인 약속을한다.

한국에 가면 여기서 만난 아우들을 보러 양양과 전주는 꼭 가보려한다.

 


 

이런 자리는 누군가의 헌신과 봉사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가 없다.

40대 노총각 하나가 나섰다.

연락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고기와 야채와 술 등을 구입 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다녔다.

이 오지라퍼가 빨리 좋은 인연을 만났으면 좋겠다.

현지 한인 게스트 하우스의 토니 사장님의 배려도 고맙다.

장소를 제공 해주고 불판과 파저리, 쌈장, 밥 등을 챙겨 주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까지 해주었다.

50대의 나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꺼이 망가져준다.

이 분 때문에 치앙마이에 다시 가게 될 것 같다.

레포가 형성되니 솔직한 대화가 무르익는다.

각자 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재미도 있지만 배울게 참 많다.

나에 대한 호칭이 어르신에서 선배님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다음번에 만나면 형님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이집트의 다합에 있을 때는 나이 차이를 불문하고 나를 형님으로 불렀다.

두 번째 만나면 선배님이 형님으로 바뀐다. 심지어는 그냥 형으로 바뀌는 신기한(?) 경험을 했기에 든 생각이다.

오랫만에 술을 마셨더니 다음날은 역시나 숙취(宿醉)로 몸이 힘들어한다.

난 체질상 삼겹살에 맥주는 거의 쥐약 수준이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에 치앙라이 가는 그린 버스는 쾌적하고 길도 좋아서 고생이 덜 했다.

멋진 경치는 사진으로 남는다.

좋은 사람은 가슴에 남는다.

오랫동안 홀로 여행하고 있지만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는다.

힘든 때도 있지만 바로 회복한다.

그건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

 

<불현듯 달려간 매사이-mae sai>



 


치앙 라이는 방콕은 물론이고 치앙마이나 빠이 보다도 훨씬 한적하다.

이 여유로운 도시에서 제대로 늘어져 지내 보기로했다.

하지만 며칠을 뒹구리뒹구리 지내다보니 슬슬 좀이 쑤신다.

어제는 아침을 먹고 나서 무작정 버스 터미널로 나갔다.

하루 만에 다녀 올만한 곳을 골랐다.

치앙콩, 치앙샌, 매사이 등 북쪽으로 가는 낡은 버스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 매사이가 확 땡긴다.

미얀마의 타칠렉(Thachileik)으로 넘어가는 국경 관문 소도시다.

만약에 국경이 폐쇄되지 않았다면 현지에서 비자 스탬프를 받아서 건너 갔다 올 수도 있다.

재미있는 경험이 아닐수 없다.



문 정도는 열고 달려줘야 로컬 버스 탄 기분이 난다.


게다가 오토바이를 타면 매사이에서 치앙샌 까지 제법 멀기는 하지만 골든 트라이 앵글도 가 볼수 있다.

마약왕 쿤사의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올라 호기심이 급상승한다.

오호라 요거 재미나겠는걸.

여행은 불현듯 떠나야 제 맛이 난다.

매사이는 방콕에서 890km 북쪽에 있다.

치앙라이에서는 64km 더 북쪽이다.

버스로 1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러나 통통배 기관음을 내며 덜덜거리는 버스는 2시간을 힘겹게 달려 겨우 도착했다.

돌아가는 막차 시간부터 확인했다.

여유 시간은 5시간 정도다.

이럴 땐 오토바이가 가장 효율적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미얀마 국경 검문소로 달렸다.

국경은 폐쇄되어 있었다.

미얀마가 불안정한 국내 사정 때문에 닫아버린것 같다.

4년 전에 미얀마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 때도 일반 서민들의 참담한 현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사원에 각종 상징 조형물이 많다특이하게 전갈상이 있다절을 짓기 전에 전갈이 많이 살았단다.

 

국경 검문소 바로 앞에 있는 풍물시장을 둘러 보았다. 시장에서 파는 팟타이 국수로 점심을 해결했다.

예전에는 매일 미얀마 사람들이 다리를 넘어와 장사를 하고 해 지기 전에 다시 돌아가서 활기가 넘치던 곳이다.

지금은 썰렁하다.

배를 채우고 나서 왓 프라 팟 도이 와우 (Wat phra pat doi wao) 사원으로 올라갔다.

밑에서 계단 올려다 보니 끝이 하늘과 맞닿아 보였다.

투덜투덜 거리며 올라갔다.

사원은 별 관심이 없다.

사원 정상 끝에 있는 전망대에서 강 건너로 미얀마를 보기 위해 올랐다.

마치 도라 전망대에서 북한을 바라다 보는 기분이 든다.

 


태국 쪽에서 바라본 골든 트라이 앵글앞이 태국 가운데 미얀마 오른쪽이 라오스다

 

내려오자 마자 29km 떨어진 골든 트라이 앵글을 향해 달렸다.

골든 트라이 앵글은 미얀마,태국, 라오스의 3나라를 흘러온 강물들이 만나는 삼각점이다.

3나라를 한번에 조망할수 있다.

예전에는 세계 최대의 마약 재배와 밀조의 본거지였다.

여기서 생산된 헤로인이 미국까지 흘러 들어 갔다.

지금은 대부분 커피나 녹차 농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규모는 줄었지만 마약 재배는 암암리에 계속되고 있다.

주차장에 관광 버스가 가득하다.

서양인들이 많고 중국인들도 제법 보인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달렸다.

다행히 막차 시간 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치앙라이로 돌아와 오랫만에 한국 식당에서 제육볶음으로 함포고복(含哺鼓腹)했다.

느긋하게 타이 맛사지를 받았다.

게으른 여행자인 내가 드물게 열일한 하루였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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