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로 겨울 바다 여행을 떠나온 친구 세 명은 이미 바다 밀복과 도다리 그리고 세꼬시와 멍게 등 푸짐한 회로 이른 저녁을 맛있게 먹고도 숙소로 그냥 돌아가기가 아쉬웠다.
기생 초선의 치명적인 유혹에 빠져 이끌려 들어가듯이 항구 근처의 포장마차촌을 찾았다.
깨끗한 식당도 있었지만 우리는 굳이 길을 건너 컴컴한 포장마차를 찾았다.
포장마차는 무허가라 밤에는 전등불을 제대로 켜지 못한다. 일찍 문을 닫아야한다.
주변에 허가 받은 음식점들이 많아서 민원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을 닫으려는 주인을 설득해서 번개탄을 피우고 아득한 추억의 축제를 벌였다.
핸드폰 플래쉬를 비추어 생선이 제대로 익었는 살펴가며 뒤집어야 했다.
고소한 소금구이 생선이 구워지는 냄새와 싸한 번개탄 냄새가 묘하게 후각과 식욕을 자극한다.
소주 한 병이 금새 비어졌다. 세 명이 실컷 먹었는데 23,000원 이었다. 왜 이리 가격도 착한거야?
주인의 눈치가 보여, 아쉽지만 남은 생선을 구워서 일회용 도시락 박스에 싸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가지고 오래 묵힌 고귀한(?) 하수오 한 병을 비우며 중년 사내 셋은 어느 새 춥고 배고팠던 학창 시절 얘기를 하고 있었다.
술도 친구도 안주도 오래 묵은 사연이 있었다.
누군가 잡음도 추억이라고 했다.
술에 취해 각자 떠들고 있어서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가슴에 감동이 느껴졌다.
나는 피곤해서 먼저 잠이 들었다.
소란스러워서 잠에서 깨어 들어보니 이번 여행을 추진한 친구가 몸이 불편한 동창생을 데리고 샤워를 시켜주고 있었다.
설악산 척산 온천 근처의 지하수라 이게 진짜 온천물이라고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후에 화장실에 가려고 나가보니 침대 위에 두 친구가 팬티만 하나씩 걸친 채 서로 등을 맞대고 잠들어 있었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외옹치의 나무로 된 바닷길을 걷는 것 조차 힘들어하는 몸이 불편한 고등학교 동창을 위해 모처럼 마련한 기회였다.
고관절 수술 후에 허리 수술을 했고 지금은 한 쪽 팔에 마비까지 왔지만 내색하지 않고 즐겁게 사는 친구의 옷을 벗은 몸은 앙상했다.
우리의 겨울 여행이 자칫 쓸쓸하고 초라할 뻔 했지만 양미리와 도루묵을 만나 활기를 되찾았다.
아침에 홍합 해장국으로 숙취를 달래면서 우리는 "친구야, 우리 내년에도 다시 오자" "아니, 죽을 때 까지 매년 오자"고 다짐했다.
의미있고 화려한 겨울 여행이었다.
그동안 연재해온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 한바퀴>를 <안정훈의 세상 사는 이야기>로 칼럼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세계일주 여행한 이야기를 일단 마칩니다. 앞으로는 일상과 여행에서 만나는 세상 사람들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 보겠습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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