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거리로 무려 8.000km나 떨어진 유럽의 끝자락에 외모는 백인의 얼굴을 하였으나 우리와 같은 몽골반점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과거 한민족과 함께 고구려를 이루기도 했고 이웃해 살던 돌궐족(突厥族)의 후손이다. 연개소문은 돌궐의 공주와 혼인을 맺을 정도로 동맹관계가 끈끈했다. 그래서 그런지 튀르키예 사람들은 유난히 한국 사람에게 친근감을 표사하며 호감을 표한다.
아침에 길을 나선지 얼마 안 돼서 한 소녀가 “안녕하세요!”하면서 꾸벅 머리를 숙인다. 오래간만에 날씨도 개어서 푸른 하늘과 화창한 봄 날씨에 내 마음도 화창했다. 조금 더 가다 짙은 쥐색 차량을 운전하고 가던 붉은 립스틱을 하고 붉은 매니큐어를 한 중년의 아름다운 여자가 나를 보더니 손 키스를 날려준다. 내 마음은 아이의 손에서 놓쳐버린 풍선 모양 푸른 하늘에 금방 떠올랐다. 내 마음은 하루 종일 하늘에 두둥실 떠다녔다. 이 나이에도 여자의 유혹에 가슴이 뛰다니!
정신 못 차리고 달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구엘 차이!(차나 한잔하고 가시오!)”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난 튀르키예 여정에서 배운 유일한 말이다. 돌아보니 초로의 할아버지들이 앉아있었다. 마음이 붕 떠서 따끈한 차 한 잔하며 쉬어가야 할 때도 잊고 달려가기만 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 곁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금방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이가 나왔다. 주인은 점심도 안 먹었으면 먹고 가라고 했다. 점심은 우리의 청국장 같은 콩 스프와 동그랑땡 같은 코프테를 잘 먹은 참이어서 사양했더니 나올 때 빵을 두 개를 싸주었다. 테섹큘라!(감사합니다!) 조금 전 마트에서 우유 한 병을 사고 점원 소녀에게 배운 말이다.
중국 머리 위에는 몽골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우즈베키스탄에 이어지는 광활한 초원이 있다. 이 땅을 처음으로 통일한 나라는 기원전 2세기의 흉노(匈奴)이다. 이들은 초원 최초의 유목제국을 건설했다. 중원을 제패한 진시황에게도 흉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 골칫거리를 막기 위하여 만리장성을 쌓아야만 했고 결국 무리한 공사를 하다가 국력이 쇠하여 망하게 되었다.
뒤이어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군대를 이끌고 흉노를 향해 북진하다 포위되었고 간신히 목숨만 구했다. 그 후 흉노에게 치욕적인 조공을 바쳐야 했다. 흉노는 400여 년 동안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력이었다. 그러다 한무제의 공격과 내분으로 결국 망하게 되었다.
이후 흉노는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진 듯 했다. 하지만 이들은 200연 년에 걸쳐 서쪽으로 이동하며 힘을 키웠다. 그리고 4세기 갑자기 유럽에 나타났다. 강력한 힘을 갖은 철기 기마민족의 동유럽 둥장은 유럽에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가져왔다. 겁에 질린 게르만의 민족 대이동이 일어났고 서로마의 멸망을 불러왔다. 헝가리는 자신들의 조상을 훈족이라고 주장한다. 헝가리에서 가리는 몽골어로 나라를 뜻한다.
6세기 흉노가 비운 대초원의 다음 주인은 돌궐이었다. 흉노의 일파인 돌궐은 여러 면에서 흉노보다 업그레이드한 유목 국가이다. 대부분의 유목 국가는 초원의 바람처럼 일어났다가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문자가 없어서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궐은 곳곳에 비문을 남겼다. 돌궐은 유목민족 최초로 독자적인 문자를 만들어 오르혼 비문을 남겨놓았다. 그들의 역사는 또렷이 기록됐다. 한 돌궐 비문에는 “사방에 군대를 보내 모든 종족을 복속시키고 머리를 가진 자는 머리를 숙이게 하고 무릎을 가진 자는 무릎을 꿇게 하였다.”고 기록했다. 돌궐은 당시 파미르 고원을 넘어 카스피 해에 이르는 대 유목제국을 건설하였다. 실크로드를 장악한 돌궐은 중계무역으로 부를 축척했다.
싸우는 재능은 타고났지만 유목민의 약점은 결속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당나라의 이간책(離間策)으로 동서 돌궐로 분열된 돌궐은 당나라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패망한다. 패망한 돌궐은 서쪽으로 민족 대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중동에는 이슬람 왕조 아바스가 있었다. 돌궐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아바스의 용병이 되어 탈라스 전투에 투입되었다. 고구려의 유민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이끌던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를 무너뜨린다.
이 전투 이후 돌궐은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이후 쉽게 흩어지는 유목민의 습성을 버리고 종교로 일치단결할 수 있었다. 유목민의 전투력과 종교로 하나가 된 투르크인들은 마침내 11세기 초 셀주크투르크라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중동의 거의 전 지역을 차지하는 이슬람 제국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200년도 안 돼 몽골군에게 짓밟히고 말았다. 그러나 투르크인들은 몽골이 물러나자 다시 일어나 이번에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세운다.
오스만투르크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면서 1000년 제국 로마를 멸망시키며 이후 600년간이나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했다. 오스만투르크는 유럽, 아프리카, 서아시아 등 옛 동로마제국의 대부분의 영토를 차지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조상은 중앙아시아 초원의 흉노(匈奴)다. 그리고 돌궐(突厥)은 투르크의 이름으로 건설한 최초의 국가다. 우리는 1.000년 동안 8.000km를 걸어 이곳으로 왔다. 장소는 달라졌지만 이와 같은 역사로 보아 튀르퀴예의 건국연도는 돌궐이 나라를 세운 552년이다.”라고 자신의 역사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민족의 근간이 되는 돌궐의 역사를 교과서에 기술하여 자손대대로 가르치고 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