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필진

여인의 고운 손과 소똥

by 강명구 | 23.02.05 14:30

주변의 누구도 말리지 않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편견(偏見)을 깨부수려 시작한 여정 길이었다. 삶의 방식엔 세 가지 선택이 있다고 한다. 도망치거나 방관하거나 부딪쳐 보거나! 나는 대부분의 경우 부딪쳐 보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서 수도 없이 부딪쳐 깨져보았다. 파도가 수없이 바위를 부딪쳐 깨지듯 끊임없이 깨져보았다. 그리고 다시 인도라는 바다 안에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하듯 여인숙과 여인숙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뛰며 인도라는 바다를 건너간다.

섬과 섬 사이의 간격이 일정치 않아 불안하다. 잘못하다가 노숙을 하는 경우를 대비하여야 한다. 캠핑 장비를 준비하지 못했다. 텐트와 침낭만 있어도 이렇게 불안하진 않을 텐데. 궁리 끝에 밍크담요 하나를 장만했다. 지금은 인도의 겨울이다. 겨울이라야 우리나라의 겨울처럼 혹독하진 않지만 새벽 기온이 10도까지 내려가는 쌀쌀한 날씨이다. 여인숙의 담요로는 새벽에 춥다. 그나마 담요가 없는데도 있다. 밍크 담요 한 장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안정감 기대 이상이다.

인도에서 소는 귀한 존재이다. 그래서 일까? 소똥도 귀하게 원색의 사리를 입은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서 고운 손으로 정성스럽게 주물럭거려 잘 섞고 비벼서 얇고 넓적하게 펴서 벽에 붙이거나 길거리에 널어 말린다. 장마가 지나고 건기가 오면 동네 아낙네들은 소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소가 싼 똥을 모은다. 땔감이 귀한 인도의 소똥은 그렇게 말려서 밥도 지어먹고 난방도 하고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생활필수품이다.

소똥을 벽에 붙이는 이유는 집 밖에서 들어오는 부정을 막는 액(厄)막이도 한다. 소똥의 불꽃으로 음식을 하면 제 맛이 난다고도 한다. 그래서 소똥을 고운 손으로 주무르는 여인의 얼굴은 심리적 안정감으로 가득 찼었나보다.

방황한다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모든 나그네는 길 잃어버림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그 많은 방황의 날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내비게이션이 확실하게 빈도를 줄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내가 가고자했던 그 길이 아니라는 것은 발견하고 탄식하기도 하지만, 곧 모든 길에 기쁨과 설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죽는 날까지 나는 내가 가야할 길을 선택하고, 길을 잃고 헤맬 것이다.

나는 낯선 길 위에서 세상 사람들이 나와 다름을 발견하고 다름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어원은 ‘길들이다’이다. 나는 길을 걸으며 스스로를 길들이고 있다. 익숙한 것들을 떠나서 낯설고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에 길들어 간다.

내 지식은 학교가 아니라 길에서 얻어진 것이라네! 그러니 길 떠나는 나그네 책을 들고 떠날 필요는 없다. 길이 학교요, 선생이요, 책이다. 길이 교정이요,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동창생이다. 나는 책장을 넘기듯이 매일 35km식 달린다. 책장을 넘기면 언제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세계가 펼쳐진다. 달리면서 나는 명상하고 수행한다.

인도 사람들은 참 호기심이 많다. 하루에도 수십 번 오토바이나 자동차, 길거리 허름한 찻집에서 앉아있다 내가 지나가는 걸 발견하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고 묻고 무엇 때문에 달리느냐고 묻고 페이스북 생중계를 한다며 인터뷰를 하자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벵갈 사람인줄 알고 벵갈어로 말을 붙이다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영어로 다시 말을 붙인다. 아마 내 까무잡잡한 용모에서 동질성을 느끼는 것 같다.

인도인들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언어가 가능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팬서비스를 하는 것도 고역(苦役)이다. 오늘은 한 노인이 색 다른 질문을 한다. “당신은 걸으면서 무얼 배웠소?”“나는 아직 구루를 만나지 못했어요.”나의 대답이 다소 생뚱맞았지만 그의 질문도 생뚱맞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홀로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문득 그 노인이 혹시 구루가 아닐까 생각했다.

길 위에서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마셔야만 한다. 그것은 길을 걷는 나그네나 길을 달리는 자동차나 매 한 가지다. 자동차의 연료 그러지 않으면 몸의 수분을 빼앗겨 탈수증에 걸려 머리가 노래지거나, 심하면 영혼까지 메말라 버릴지 모른다. 그래서 내 유모차는 인도를 홀로 달리는 나그네의 낙타(駱駝)와 다름없다. 묵묵히 그 많은 물과 짐을 싣고 따라와 준다.

나의 낙타가 발병이 생겼다. 나도 절룩거리는데 내 충실한 낙타도 바퀴에 바람이 빠져 절룩거리고 있었다. 내 다리는 스페어 다리가 없지만 내 낙타의 다리는 스페어 다리가 있었다. 나는 길 한 귀퉁이에다 낙타를 세우고 스페어 다리로 바꾸어 끼우려고 보니 그것도 역시 바람이 빠졌다. 건너편에서 어느 틈엔가 내가 쩔쩔 매는 것을 보고 달려와서는 보고 저쪽으로 건너오라고 한다. 건너편을 보았더니 허름한 타이어 수리점이었다. 인도에서는 위기의 순간마다 영화처럼 귀인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