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촌뜨기의 눈물 바람
by 김해성 | 10.09.24 01:16

시골 촌뜨기가 40여 년 전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5학년 2학기 때 서울에 올라 왔습니다. 커다란 운동장, 현대식 학교 건물, 아이들의 세련된 모습. 무수한 차들이 오고가는 ‘서울’은 저를 주눅 들게 했습니다.

전학 후 첫 날 책을 둘둘 만 책보(冊褓)를 어깨에 메고 학교에 갔습니다. 나의 모습을 본 아이들은 “소풍 왔냐?” “책가방은 어디 두고 보자기로 싸가지고 왔네!”하며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시골에서는 책을 보자기에 싸서 남학생들은 어깨에, 여학생들은 허리에 둘러메고 다니지 않았습니까? 나는 아이들이 왜 놀리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 분위기에 압도돼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억울하고 화도 났지만 한마디 항변 할 용기(勇氣)조차 없었습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국어책을 읽도록 지시를 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첫 줄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했습니다.” 하자 몇몇이 “했습니다~”를 따라 했습니다. 놀림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생님의 지시인지라 읽기를 계속했습니다.

“...했습니다.” 하자마자 이번엔 모든 아이들이 합세해서 “했습니다~”라며 사투리가 섞인 내 말투를 흉내내는 것이었습니다. 끝내는 웃음보가 터지고 교실은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불호령으로 소란은 잠시 주춤해졌고 다시 책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당황해서인지 사투리의 억양(抑揚)이 더 심하게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다리 힘이 풀리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앞으로 불러내더니 반장도 앞으로 불러내었습니다. 반장에게 제 뺨 세 대를 때리도록 지시를 했습니다. 반장은 잘 훈련된 셰퍼트처럼 힘껏 제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얼굴은 손가락 자욱이 선명하게 남은 채 부풀어 올랐습니다.

뺨을 맞은 아픔도 아픔이지만 선생님이 더 원망스러웠습니다. 집단적으로 놀리는 아이들을 혼내기는 커녕 거꾸로 놀림을 당하고 눈물 흘리는 시골아이를 불러내어 그것도 반장을 시켜 따귀를 때리는 억울함 때문에 터지는 울음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나를 본 선생님은 다시 저를 나오라고 했고, 반장에게 더 세게 세대를 때리라는 지시를 했습니다. 다시 뺨 세 대를 맞았습니다. 자리로 돌아온 후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았습니다. 또 다시 울었다가는 다시 뺨을 맞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학교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아무런 방어(防禦)도 하지 못하고 절벽으로 내몰린 심정...

어린 시절 여섯 대의 뺨을 얻어맞은 그 혹독한 경험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30년 넘게 연약한 이들의 인권문제(人權問題)를 가지고 한 우물을 파고 평생을 살아오게 한 출발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더 나아가 지금 외국인 노동자들, 중국과 구 소련지역 동포들, 국제결혼 다문화 가정과 함께 삶을 나누게 된 계기와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같은 나라, 같은 민족이 아닙니까?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단지 시골에서 올라 왔다는 이유만으로, 사투리 억양이 섞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놀림을 당하고 뺨을 맞고,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여기 저기 강연(講演)을 하면서 이런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했더니 많은 이들이 궁금하다며 질문을 해 옵니다.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입니다.

대학을 다닐 때 저에게 경기향우회에 참석하라는 통지가 따라 다녔습니다. 아마 제가 경기도 성남지역에서 활동을 하니 경기도 출신으로 알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제 강의를 들으면서 도통 제 말투를 보고서는 어느 지역 출신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질문이 있고, 왜 어느 지역 출신인지 감을 잡지 못할까 생각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어릴 적 뺨을 맞고서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사투리를 빨리 버려야 하고, 서울 말씨를 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强迫觀念)이 있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러지 않으면 또 다시 뺨을 맞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다 보니 사투리는 사라지고 서울 말씨만이 남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직도 궁금하신가요?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비밀(秘密)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의 삶은 과연 어떠할까요? 삶의 터전을 떠나온 이들은 피부색(皮膚色)이 다르고 언어가 다릅니다. 어설프고 어색한 한국어 발음과 억양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는 이들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불법 체류자(不法滯留者)라는 이유로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폭행(暴行)과 욕설(辱說)까지도 묵묵히 참아내야만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지금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리한 상황과 맞닥뜨려 좌절해야만 하고 울음을 삼켜야만 합니다.

스스로에겐 떳떳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절망’이라는 낭떠러지에 서있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외면(外面)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들의 손을 잡아 주고,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까요?”


 

김해성 목사 bosinki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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