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친절이 가져온 아기코끼리
by 김해성 | 10.10.03 12:55

해마다 두어 차례씩 스리랑카를 방문한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잡히는 일정 중 하나는 스리랑카 대통령을 만나는 일이다.

올해도 두 차례 방문을 했는데 갈 때마다 대통령의 환대(歡待)가 고맙기 그지없다. 넓은 땅을 99년 동안 임차(賃借)를 받아 한국어학교와 병원을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은 호텔과 골프장 등도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 왔다. 지금은 30년 동안 지속된 타밀반군과의 내전(內戰)이 종식되었다. 이제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고속도로 10개 건설, 주택건설사업, 쓰레기 소각장 겸 열병합발전소 등을 지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우리는 되집어 스리랑카가 유전을 개발하는데 우리도 참여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현재 7개의 광구를 개발하는데 인도, 일본, 중국, 러시아가 이미 참여하고 있다.

대통령은 유전 개발 등은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한국정부가 제안을 하면 적극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돌아와서 관계 요로에 소문을 내고 참여를 연결하고 있다.

2010년 노아의 방주..코끼리를 맞이하다

올 초 스리랑카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부대표에게 스리랑카 대통령실에서 그동안의 지원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주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하지만 강아지 한 마리도 아니고 데려올 방법이 막막하여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돌아 온 후 며칠이 지나서 “새끼 낳을 암코끼리 한 마리 구할 수 없나요?”라고 크게 실린 일간신문 기사를 보게 되었다. 현재 한국에는 코끼리 9마리 중 암컷이 3마리인데 늙어서 출산을 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코끼리는 희귀 동물이라서 국제간의 매매나 이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국 외교통상부에서 백방(百方)으로 수소문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 기사를 돌려보며 우리가 코끼리를 구해올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손뼉을 쳤다.

코끼리를 주겠다는 것을 거절했기 때문에 부랴부랴 스리랑카 대통령실에 전화를 했다. 다행히 코끼리 선물을 주겠다고 한다. 며칠 후 다시 전화를 했다. 암 수 한 쌍을 줄 수 있겠느냐는 새로운 제안도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코끼리를 준다고 해서 그냥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제적인 규정과 외교적인 복잡한 절차가 산맥(山脈)처럼 가로막고 나섰다. 시간이 지나고 외교통상부로부터 공식적인 통보를 받았다. 절차가 완료됐으니 데려오라는 것이다.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코끼리를 운반해 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기때문이다. 배에 태워야 하나, 비행기에 태워야 하나?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전세기를 띄우게 되었고, 마침내 새끼 코끼리 한 쌍이 지난달 29일 한국에 도착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코끼리가 왔다. 꿈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필자와 대통령과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해 한다. 추운 겨울날 작은 친절이 오늘의 인연이 됐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10년 전쯤 성남에서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인근 경기도 광주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산업도로 버스 정류장에 가무잡잡한 외국인 두 명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추운 겨울인데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해 움츠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급정차를 하고 쫓아가 물었더니 일자리를 찾으러 가는 길이란다. 차에 태워 밥도 먹이고 직장도 구해 주었다. 이 친구들이 일요일마다 찾아오고 친구들을 몰고 와서 스리랑카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그후 스리랑카 설날 행사를 열게 되었는데 친구들 중 작은아버지 한 분을 초청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분은 이전에 노동부 장관을 지낸 야당 국회의원이었다. 초청을 하고 극진하게 대접을 했다. 우리의 대접과 스리랑카 친구들을 돌보는 일이 고마웠던지 그분도 우리를 초청하고 환대를 했다.

그 후 이분이 국무총리가 되었고,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당선이 되었다. 마힌다 라자팍세 현 대통령이다. 내전을 종식시키고 재선에 성공하여 내년부터 6년 임기가 새롭게 시작이 된다.

추운 겨울 버스정류장에서 움츠리고 서 있는 외국인 친구 두 명을 안아준 것뿐인데 대통령을 만나 일하게 될 줄이야.

외국인 노동자들 가운데 대통령도 나올 수 있어

초창기부터 20년 가까이 외국 이주민(移住民)들과 함께 살아오는 필자의 삶에는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내력(來歷)이 깃들어 있다. 오래전 필자의 작은 할아버지가 미국에 가서 접시를 닦고 청소도 하면서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훗날 한국에 돌아와 서울특별시 초대시장을 지낸 김형민이라는 분이다. 미 군정시절 한성부윤이라는 직책을 수행하셨고, 서울이라는 이름을 만든 것도 그분 시절의 일이다.

더 유명한 분도 있지 않은가? 미국에서 가서 온갖 험한 일을 하며 공부를 했던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말이다. 더 나아가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은 누구인가? 프란체스카라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외국 여성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국제결혼 다문화(多文化) 가정이 아닌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부인이 외국인 여성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사는 것 같다. 우리가 그러했듯 우리 곁에 와 있는 외국인들도 상당수가 최고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이다.

이들이 머나먼 타국에서 돈을 벌고 돌아가서 이미 장관, 국회의원이 된 친구들도 있다. 그들 가운데서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120만 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머물고 있다. 이미 외국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가 우리에게 펼쳐져 있다.

우리곁의 외국인 한사람을 따뜻하게 보살핀다면 친한(親韓) 감정을 가진 친한 인사가 되어 돌아갈 것이다. 함부로 대한다면 반한(反韓) 감정을 가진 반한 인사를 만들어 보내는 일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와 있는 외국인들을 정말 따뜻하게 보살피며 좋은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심어나가는 일에 조그만 정성(精誠)을 심어보자.

by 최경자 2010.10.05 03:38
마음이 후득한 사람은 언제가는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시지요. 남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시겠지요.
by 한동신 2010.10.21 19:55
하느님하시는 일-참 신비하고 아름답지요?
by 송정훈 2011.05.28 20:52
사람이 가늠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있는데 그 중 하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 주시네요. 고맙습니다,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뉴스로 PC버전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