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값은 받지 않습니다.”
by 韓 泰格 | 15.12.23 15:32

고려인 식당 2015 12 19.jpg

 

판촉물비지니스를 업(業)으로 하고 있는 필자의 고객은 지역적으로는 가까운 인근 뉴욕시 5 보로(Borough)와 뉴저지주에 분포(分布)되어 있어 필자가 방문하여 주문을 받고 펜실바니아 주를 포함한 타주로 부터는 Website를 통해 주문을 받는다. 가까운 곳이면 주로 방문을 원칙으로 한다. 주로 자영업(自營業)을 하는 바쁜 고객들을 Bayside사무실까지 오게 하는 것은 도리(道理)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시정부조달품납품업자 (市政府調達品納品業體)로 지정되었기에, 사무실을 꼭 방문하여 사업체를 보겠다는 시정부(市政府)공무원들의 경우를 제외하곤 Seller인 필자가 움직인다.

 

고객을 만나기 위해 외근(外勤)하다보면 아름다운 경관(景觀)도 보게되고, 사고(事故) 사건(事件)등도 마주치거나, 맞닥뜨리게 된다. 마치 관내(管內)를 순찰(巡察)하는 Policeman같기도 하고,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記者)역할을 할 때도 있어 그들이 미쳐 출동(出動)하기 전(前), 소방서로, 경찰서로 또는 신문사로 제보(提報)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명동 금융가에서 근무할 때에는 Desk에 앉아 서류를 두적이며 움직이는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대양(大洋)을 건너 온 후부터는 현장(現場)맨이 되어 버렸다. New York Daily News근무할 때도, Bank of America에 근무할 때도 Newspaper Dealer들의 고정(苦情)을 들으러 현장에 나가 있었고, B of A 은행일도 주로 신규시장을 개척(開拓)하는 외근업무였다. 미국유수기업에서 근무, 그렇게 훈련 받아왔으니, 고객상대 기법(技法)은 ‘보험회사 외판사원’보다 훨씬 세련(洗鍊)되었다고 할 수 있겠고, 뉴욕시(市) 지리(地理)는 Yellow Cab Driver들보다, UPS Truck Driver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그 이름있는 기업들로 부터 자의(自意)건,타의(他意)건 물러난 이후에도, 가끔은 Times Square에 또는 Forty Second Street에 소신(所信)을 담은 메시지를 적지않은 광고비까지 지출하면서도 살아남아 건재(健在!!!)하지 않겠는가!?

 

한마디로 필자는 직접 움직이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토요일(12/19)도 Brooklyn Bay Ridge고객들을 방문한 후, California Anaheim에 1955년 7월17일 개장한 Disneyland가 건설되기 전까지 유원지(遊園地)로 세계적으로 유명하여 소설과 영화의 무대였던Coney Island와 접한Odessa Town, Russian Village Brighton Beach Avenue에 들렸다. 그곳을 방문할 때면 특별한 약속이 없고 식사시간이면 필자가 2년 전* 발굴(發掘)하여 세상에 알린(!!!!) 우즈베키스탄출신 고려인(高麗人)이 운영하는 ‘지정’ 장모님 (Your Mother-in-Law)식당에서 식사한다. 그곳을 끊임없이!!! 이용하는 이유는 말은 통하지 않으나 동족(同族)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두번째는 필자가 좋아하는 ‘식혜’가 일품(逸品)이기 때문이다.

 

 

고려인 식당 간판 2015 12 19.jpg

 

지난 2년동안 출입하였지만, 필자가 본 그 식당의 고객들은 러시안인이거나 구소련(舊蘇聯) 중앙아시아 출신자들이었다. 벽에 걸린 TV에서 흘러나오는 언어에서부터 옆좌석 테이블 손님들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 뿐이었다.어쩌다가 독일에서 러시아로 흘러 건너간 단어가 TV에서 나오면 옛 고향동무를 만난 기분이다!

 

처음에는 Menu를 손가락으로 지적하며 주문하였었다. 이제는 Menu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먹는 것이 항상 일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식당에 들어가서 한마디 말도 없이 ‘식사하고 돈내고’ 일어 서 나온다. ‘눈 인사만’ 할 뿐이다. 그러나 서로는 “안다!”. 이런 경우를 영어로 Emotion is Universal.이라고 하던가?

 

 

고려인 식당 식단 2015 12 19.jpg

 

그런데 토요일은 일군(一群)의 동양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얼굴모습은 조금 달랐지만….. 주인아줌마도 동석(同席)하여 있는 것을 보아 그 일군의 여성들은 분명 고려인(高麗人)여인들임에는 틀림없었다.

 

일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치 이산(離散)의 아픔을 안고 수 십년을 살아온 친족(親族)들처럼….

 

그녀들도 필자가 왜 주머니에서 Handkerchief를 자주 꺼내는지 알고 있는 것같았다.

 

같이 앉아 있었던 젊은 여인이 네 다섯살되어보이는 딸아이를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붙들어 사진촬영을 요청하였다.

 

필자가 앉자 그들은 일어났다. Doctor’s Office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젊은 여인은 이 식당주인의 손위 이모(姨母)되는 분의 며느리라고 했다. 팔년 전 미국으로 온 며느리의 영어통역으로 우연잖게 자리한 여인들의 삶의 궤적을 묻고 싶었지만, 다른 약속이 있다면서 E-Mail 주소만 필자에게 건내주며 “저의 시어머님과 친구분들은 주말이면 여기 자주 옵니다.”라는 말을 영어로 남기고 딸아이을 데리고 나갔다. 곧 이어 일행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에 식당주인의 언니와 그 친구들 그리고 며느리, 손녀까지 3대를 보게 된 아주 귀한 자리가 되었다. 한인밀집지역인 Flushing에서나 Manhattan 32가에서는 만날 수 없는 동족(同族)을 Russian Town에서 조우(遭遇)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난 150 년동안 굴절(屈折)된 한반도 역사를 모르고는 왜 필자가 처음 본 여인들앞에서 눈시울을 붉혔는지 아무도 모른다!

 

식사후 청구서(Check)를 청하니 주인아줌마가 손사래를 쳤다.

 

“오늘 저녁 식대는 받지 않습니다.”라는 뜻이었다!

 


고려인 식당 손님 2015 12 19.jpg

 

*꼭 2년이 지났다. 2013년 12월17일(월)자에 게재된 컬럼과 머릿기사를 첨부한다.

 

뉴욕에서 만난 Chim-Cha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ted&wr_id=20&page=6

 

 

逢 南: 韓 泰格(www.Ted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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