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마-몽고메리 대행진 주역 故 존 루이스 의원
by 박동규 | 24.03.17 17:09


196537일은 미국의 역사와 민권 운동의 역사에 대 전환점이 된 날 이었습니다. '피의 일요일' (Bloody Sunday)로 더 잘 알려진 날이며 저 유명한 '셀마-몽고메리 대행진'1차 행진이 있던 날 이었습니다.

 

행진은 브라운 채플 교회 마당에서 무릎을 끓고 기도로 시작하였습니다. 브라운 채플은 투표권법을 이끌어낸 셀마-몽고메리 대행진'의 출발점이자 예배처, 기도소, 콘트롤 타워, 피난처, 야전병원의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민권운동의 영적 심장' 이라고 부릅니다.

 

영화 셀마에도 자주 등장하는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는 투표권을 요구하며 3번에 걸친 행진 때마다 건넜던 다리 입니다. 첫 번째 행진 때는 백인 경찰들의 곤봉, 최류탄, 기마 경찰대를 동원한 무자비한 진압으로 무려 600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날 저녁 행진에 참가했던 백인 목사 세 분이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게 공격을 당했고 이로인해 제임 리브 목사가 나흘 뒤 사망했습니다.

 

이날 백인 경찰들의 폭력적인 진압 장면은 TV를 통해 미 전역과 전 세계에 방송되어 인류의 양심에 큰 충격(衝擊)과 각성(覺醒)을 주었고 당시 존슨 대통령도 투표권 찬성으로 돌아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킹 목사님도 이 방송을 보고 급히 셀마로 내려가 2차 행진과 3차 행진을 함께 이끌었습니다. 2차 행진 때는 약 2천명, 3차 행진 때는 약 25천명이 참여하였습니다.



 


37일의 1차 행진 즉 '피의 일요일' 행진을 이끌었던 25세의 청년이 바로 당시 '비폭력 학생 위원회' (SNCC)의장 이었던 존 루이스 하원 의원(사진) 이었습니다.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민권 운동의 거목'으로 불리던 그는 17번 연방 하원에 당선 되었고 2020년에 80세를 일기로 영면(永眠) 하셨습니다. 이 행진에 참가했던 분들의 희생으로 결국 1964년 민권법에 이어 1965년 투표권법이 통과되었고 그 직접적인 영향으로 1965년 차별없는 이민개혁법이 통과되어 우리가 이민을 올 수 있게 되었고 투표권을 얻게 되었고 최소한 법적으로 백인들과 평등한 권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3차 셀마-몽고메리 대행진을 마치고 했던 존 루이스 의원의 감동적인 연설의 일부 입니다.

 

우리는 오늘 투표권을 위해 행진합니다. 또한 우리는 오늘 생존권을 위해 행진합니다. 행진을 계속하면서 우리는 지연된 자유 얻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쳤습니다. 우리는 경찰의 곤봉에 계속해서 매질을 당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많은 형제 자매들이 계속해서 투옥되는 것에 지쳤습니다. 백인 권력자들은 '참을성을 갖으라고 소리칩니다. 얼마나 더 참아야 할까요?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자유를 원합니다. 우리는 감옥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유의 대가로 그렇게 해야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감옥에 가겠습니다.”

 

아울러 제가 가장 좋아하는 존 루이스 의원님의 말씀은 디모데오 후서를 인용한 다음의 말씀 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디모데오 후서 4:7)

"절망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마십시요. 괴로워 하거나 증오하지 마십시요. 희망을 갖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십시요. 우리의 싸움은 하루, 한주, 한해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일생의 싸움 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 마십시요. 선한 싸움을 하십시요. 필요한 싸움을 하십시요. 우리는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드는 방법을 찾게 될 것입니다.".

 

"Do not get lost in a sea of despair. Do not become bitter or hostile.. Be hopeful, be optimistic. Our struggle is not the struggle of a day, a week, a month, or a year, it is the struggle of a lifetime. Never, ever be afraid to make some noise and get in good trouble, necessary trouble. We will find a way to make a way out of no way."

 

 

글 박동규 변호사 | 시민참여센터 이사

 

글로벌웹진 NEWSROH 열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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