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백서이야기(8)
필자는 이날 이후 던컨 장관에게 보낼 공문을 작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10일 동안 꼬박 밤을 새워가며 인터넷을 통해 추가 자료 수집을 하고 동해 병기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는 타당성 있는 자료를 준비했다. 최대한 설득력있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힘들었다. 동해나 일본해와 관련된 사이트만 100여 곳을 방문해 내용을 검토하고 분석했으며, 구글 등 검색 엔진을 활용해 수많은 자료를 수집했다. 미 공군에서 8년간 장교로 근무하면서 브리핑 자료를 수없이 만들어봤던 경험이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됐다. 수집한 자료들을 순서대로 정리해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 스타일로 제작,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타당성 있는 자료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각고(刻苦)의 노력끝에 완성된 공문과 자료는 변호사들과 한인 2 세, 3세들에게 부탁해 다양한 시각으로 검토해 줄 것을 당부했다.
드디어 2012 년 8월 28 일, 필자는 아니 던컨 장관에게 미국내 공립학교 모든 교과서에 ‘동해 병기’를 해달라는 공문과 타탕성 자료를 이메일을 통해 발송했다. 다음날 도널드 유 자문위원에게 전화해 공문을 받았는지 확인했다. 상임 자문의원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틀 후 자문위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던컨 장관이 공문과 타당성 자료를 받고 검토를 한 다음 회의를 소집했다. 그 회의에서 백악관 참모와 자문위원의 의견을 수렴(收斂)해 곧바로 동해 병기 안건을 미 교육부내 초중등 교육 부서의 수장인 데보라 데슬리 차관보에게 직접 검토하도록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도널드 유 자문위원에게 다시 한번 10만 여명의 한인들이 신속한 답변을 기다리고 있으니 미국의 대선이 치러지는11월 6일 전에 공식적으로 답해달라고 당부했다. 선거전에 답변을 받아내면 아무래도 투표권자인 한인들을 의식해 호의적인 답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첨부: 117 페이지).
이후 필자는 백악관 참모와 교육부 장관 상임 자문위원에게 이틀에 한 번씩 지속적으로 전화를 해서 신속한 답변을 하도록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공문을 보낸지 2주째 되는 날 도날드 유 자문위원은 동해 병기 이슈에 대한 모든 검토가 끝나고 공식 답변 초안을 작성중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속으로 ‘잘하면 대선전에 공식 답변을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012 년 9월 말쯤 공식 답변 초안이 준비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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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진에서 공식 답변 초안을 이미 작성했고 윗사람들의 결제만 받으면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던 백악관 참모와 자문위원은 갑자기 오바마 대통령 대선 선거 운동 준비 때문에 매우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계속해서 공식 답변 발표를 미루기 시작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답변 내용이 그리 썩 좋지 않은듯 했다. 왜냐하면 공식 답변이 한인들이 만족할만한 내용이었다면 이들이 먼저 선거 전에 발표를 하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답변을 미루고 있는 상황에 화가 났고 초조해졌던 필자는 귀찮을 정도로 끈질기게 연락을 해봤지만 그들은 이미 선거 후에 공식 답변을 발표하려고 결정을 한 것 같았다.
2012년 11월 6일 미국 대선이 치러졌고, 7일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바로 그 다음날인 11월 8일 미 교육부 데보라 데슬리 차관보가 동해 병기 백악관 청원에 대한 공식 답변을 필자에게 보내왔다 (첨부: 12, 118 페이지).
데보라 데슬리 차관보의 공식 답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 교육부가 한인들의 요구 사항인 교과서 동해 병기를 도와주려고 검토를 해봤습니다. 교과서 내용 수정에 대한 권한은 연방 정부에 없고 각 주정부와 지방 정부에서 교육자들과 출판사가 함께 결정을 하는 상황이니 주정부와 지방 정부의 정치인과 교육 관계자들을 만나 교과서 수정 과정을 진행시켜 나가기 바랍니다.”
“아이구! 또 한번 실패를 했구나.” 필자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지난 2012년 3월 시작한 1 차 백악관 청원 운동의 실패에 이어 두번째로 쓰라린 실패를 맞이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좌절감을 겪었다. 어쩐지 동해 병기 운동은 불가능하다는 느낌까지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는 “이 정도 했으면 최선을 다했는데 더 이상 무엇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하며 스스로 위로(慰勞)를 해보기도 했다. 적어도 필자가 시작했던 백악관 청원 운동에 대해서는 미 교육부의 데보라 데슬리 차관보의 공식 답변을 받은 것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잘 지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해 시민 운동을 여기서 중단하기로 굳게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필자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필자의 가족은 물론이고 동해 병기 시민 운동을 지지해 왔던 버지니아 지역 한인들이 시민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야 한다고 권유했다. KBS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이인수 감독은 “동해 병기 시민 운동은 이제 피터 김 밖에 할 사람이 없다. 만약 여기서 그만두면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백악관 청원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아무도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으니 대한민국을 생각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동해 되찾기 운동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필자는 “나 혼자 무슨 힘으로 계속하겠습니까? 그 동안에도 너무 힘이 들었고 재정적인 피해도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리고 일부 한인들의 시기 질투로 비논리적인 비판과 뒷이야기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내가 뭐 대한민국 애국자도 아닌데 왜 이 일을 계속해야 합니까?”하고 되물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들 크리스가 했던 ‘일본해’라는 답변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오랜 고민과 갈등 끝에 필자는 마침내 “안되겠다. 그야말로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정말 우리의 동해 바다는 영원히 못 찾아올 것 같다. 그리고 미국에 사는 우리 후손들은 영원히 이 바다를 일본해로 배우게 될 것이다. 최선을 다해 동해를 찾아와야겠다”라고 굳은 결심을 하게 됐다.
미 교육부 데보라 데슬리 차관보의 공식 답변에 따라 주정부와 지방 정부 정치인 및 교육 관계자들을 접촉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들과 접촉을 한다고 해서 과연 모든 교과서에 ‘동해 병기’를 할 수 있을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필자는 우선 동해 병기와 관련해서 완벽한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8 월 28 일 미 교육부 던컨 장관에게 공문을 보낼 때 타당성 자료를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유리한 자료만 수집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서 필자는 3 주 동안의 집중 자료 수집과 분석에 돌입했다. 주로 온라인 상에서 동해와 일본해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2012년 가을학기부터 유럽의 오스트리아에서 초.중등부 모든 교과서에 동해 병기를 시작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됐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라는 출판사에서는 이미 동해 병기를 하고 있고, 다른 여러 출판사나 지도 제작사에서도 일부 동해 병기를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수집한 모든 자료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필자는 자신감을 얻었다. ‘아! 잘 하면 되겠구나. 어쩌면 우리의 동해를 다시 찾아올 수도 있겠다’하는 자신감을 마음속 깊이 품게 됐다.
일단 주정부와 지방정부의 정치인 및 교육 관계자, 그리고 출판사들과 접촉하려면 조직적인 전략과 계획을 세우고 단계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제는 더 이상 단순한 온라인 청원 운동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교과서 수정 작업을 일궈낼 수 있는 인력과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필자는 버지니아 한인회의 은정기 대외협력실장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과 만나서 상황 설명을 하고 동해 병기 캠페인을 위한 사단법인을 만들자고 제안한 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동안 직접적으로 필자를 도와주지는 못했지만 늘 마음속으로 필자를 성원하며 뜻을 같이해온 사람이 여럿 모였다. 수차례 논의 끝에 동해 병기 시민운동을 위한 비영리 단체를 설립하기로 했다. 그리고 회장직은 필자가 맡기로 결정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