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의 ‘그날’은 언제 오는가
by 뉴스로 | 26.10.23 20:08

〈오늘의 역사속으로〉 10월 23일

 


AI 생성 이미지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鍾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 심훈 ‘그날이 오면’

 

일제강점기 문학으로 민족의 독립을 꿈꾼 심훈이 이날 태어났습니다. 세계는 자유를 향한 함성이 거리를 뒤흔들었고, 전쟁의 포성이 바다와 도시를 뒤덮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거대한 해전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며, 레바논 베이루트에서는 훗날 수많은 군인의 생명을 앗아간 테러가 발생한 날이기도 합니다.

 

[역사속의 주요 장면]

 

1942년 10월 23일 — 엘 알라메인 전투, 북아프리카 전선의 반격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은 이집트의 엘 알라메인에서 독일·이탈리아 추축군을 상대로 대규모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이 지휘한 연합군은 치열한 전투 끝에 추축군(樞軸軍)을 서쪽으로 밀어냈습니다. 이 승리는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군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연합군의 반격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전쟁의 흐름은 한 번의 전투로 완전히 결정되지 않지만, 엘 알라메인은 전세가 바뀌는 분기점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습니다.

 

1944년 10월 23일 — 레이테만 해전의 서막, 태평양 전쟁의 결전

 

필리핀 레이테섬 주변 해역에서 제2차 세계대전 최대 규모의 해전 가운데 하나인 레이테만 해전이 시작됐습니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은 필리핀 탈환 작전에 나섰고, 일본 해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전력을 집중했습니다. 여러 해역에서 이어진 전투에서 일본 해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해상 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크게 약화됐습니다. 바다를 둘러싼 이 거대한 충돌은 전쟁의 승패가 군사력뿐 아니라 산업력과 보급 능력에도 달려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1950년 10월 23일 — 한국전쟁, 북진의 격전과 전쟁의 불확실성

 

한국전쟁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세를 뒤집고 북쪽으로 진격했습니다. 10월 하순에는 평안북도 일대까지 전선이 확대되면서 전쟁의 양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진이 계속될수록 중국의 참전 가능성도 커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군의 개입으로 전황은 다시 급변했습니다. 전쟁은 승리의 기대와 함께 새로운 위험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역사는 군사적 진격만으로 평화를 보장할 수 없으며, 전쟁의 확산을 막을 외교적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웁니다.

 

1956년 10월 23일 — 헝가리 혁명, 거리에서 터져 나온 자유의 함성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학생들의 시위로 시작된 반정부 봉기가 전국적인 혁명으로 번졌습니다. 시민들은 소련의 지배와 공산당 독재에 반대하며 정치적 자유와 소련군 철수,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시위대는 독재의 상징물을 무너뜨렸고, 개혁을 약속한 임레 너지(Imre Nagy)가 정치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러나 11월 4일 소련군이 대규모로 진입하면서 혁명은 무력으로 진압됐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수십만 명이 국외로 탈출했지만, 헝가리 혁명은 자유를 향한 시민의 저항을 상징하는 역사로 남았습니다.

 

1983년 10월 23일 — 베이루트 폭탄 테러, 평화유지의 비극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자살 폭탄 공격이 발생해 다국적군 소속 미군과 프랑스군 병사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군 병영 공격으로 미군 241명이 사망했고, 프랑스군 시설에 대한 별도의 공격에서도 58명이 숨졌습니다. 레바논 내전의 혼란 속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국제사회의 군사적 개입과 평화유지 활동이 얼마나 큰 위험을 동반하는지 보여줬습니다. 무력으로 분쟁을 통제하려는 시도만으로는 평화를 보장할 수 없으며, 갈등의 원인을 해결하려는 정치적 노력이 함께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오늘의 탄생인물]

 

심훈 (1901~1936)

소설가이자 시인, 영화인으로 본명은 심대섭, 일제강점기 민족의 현실과 독립에 대한 열망(熱望)을 문학으로 표현했습니다. 대표작 《상록수》는 농촌 계몽운동에 헌신하는 청년들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민족의 자립과 희망을 상징하는 문학으로 사랑받았습니다. 시 「그날이 오면」에는 조국 광복을 향한 절절한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광복을 보지 못하고 35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작품 속에 새겨진 독립의 꿈은 후대에 이어졌습니다.

 

조시원 (1904~1982)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항일운동에 참여했으며, 독립을 위한 조직 활동과 광복군의 투쟁에 힘을 보탰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독립운동의 정신을 이어갔으며,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을 추서했습니다. 조시원의 삶은 이름난 지도자들뿐 아니라 국권 회복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헌신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존재를 되새기게 합니다.

 

펠레 Pelé (1940~2022)

브라질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로 본명은 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Edson Arantes do Nascimento)입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17세의 나이로 세계 무대에 등장했고, 브라질을 세 차례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뛰어난 기술과 득점력으로 축구를 세계적인 대중 스포츠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인종과 국경을 넘어 사랑받는 스포츠 영웅이 됐습니다. 그의 생애는 스포츠가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힘을 보여줍니다.

 

[오늘의 타계인물]

 

홍대용 (1731~1783)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과학사상가로, 1783년 10월 23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북학파(北學派)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그는 중국을 방문해 청나라의 문물과 서양 과학을 접하고, 기존의 관념을 넘어선 세계관을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지구의 자전과 우주의 무한한 가능성을 논하며 인간 중심의 낡은 세계관에 도전했습니다. 신분에 따른 차별을 비판하고 교육과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눈을 돌리는 데 중요한 자극이 됐습니다.

 

라마 5세 Rama V (1853~1910)

태국의 근대화를 이끈 짜끄리 왕조의 국왕으로, 본명은 쭐랄롱꼰(Chulalongkorn)입니다. 1910년 10월 2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재위 기간 노예제와 부역 제도를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행정·교육·교통 체계를 개혁했으며, 서구 열강의 식민지 확장 속에서 국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개혁은 태국이 동남아시아에서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습니다. 태국에서는 지금도 그를 근대화와 국가 발전의 상징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한마디]

 

“자유를 향한 목소리는 잠시 침묵할 수 있어도, 그 꿈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0월 23일의 역사는 자유와 존엄을 향한 인간의 열망이 얼마나 강인한지 보여줍니다. 헝가리의 시민들은 총칼 앞에서도 자유를 외쳤고, 심훈은 문학으로 오지 않은 광복의 날을 노래했습니다. 조시원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삶을 바쳤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서로 연결됩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까닭은 과거의 영웅을 기리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억압받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폭력보다 대화를 택하며,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선택을 오늘의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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