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노태우 김복동은 삼색일체(三色一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우정은 도원결의에 가까웠다. 전두환의 동해지구 전출을 놓고 3인의 우정이 모였다.

전두환이 입을 열었다.

“정승화가 우리 하나회를 분산시켜 무력화 시키려는 거야. 그리고 김재규를 살려내려는 얄팍한 수작이지. 합동수사본부장인 내가 김재규 수사를 못하도록 하려는 거야. 정승화는 김재규 사람이었으니까. 이참에 판을 들러 엎어버리자. 정승화를 체포하여 옷을 벗겨버리고 우리가 육본을 점령 하자. 그리고 하나회가 박정희각하의 유업을 계승 하는거야. 하나회는 전군의 정보와 보안을 장악하고 있다. 서울시내 전투부대의 지휘관들은 하나회가 우세하다. 박정희소장은 200명 장병으로 5.16혁명을 성공시켰다. 장군은 달랑 박정희소장 뿐이었고 대개가 중령들이었어. 우리에게는 30명 넘는 장군들과 서울 시내에 주둔하고 있는 수경사 특전사에는 만여명의 정예병사가 있다. 난 동해지구로 내려가지 않고 정승화를 체포하여 거사를 하겠다.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전두환은 먼저 노태우를 바라봤다.

“.......”

노태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노태우의 침묵은 동조를 의미했다. 노태우는 묵묵히 따르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김복동을 쳐다봤다. 김복동은 달랐다.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나는 반대하네. 자네의 주장은 군 본연의 사명에도 어긋나는 일이고 하나회 정신도 아니야. 그건 하극상이요 쿠데타요 반란이기 때문이지. 군은 명령을 지켜야 하는 계급사회 아닌가? 인사권을 갖고 있는 참모총장이 가라면 가야지 그걸 무슨수로 거역하는가? 김재규만 해도 그래. 대한민국의 법과 재판이 공명정대하게 판결 해줄 걸세. 하나회에 대해 말해보겠네. 우리가 하나회를 만들 때 이순신처럼 을지문덕처럼 김유신처럼 국가와 정부를 반석위에 세우는 강군을 만들자고 시작한게 아닌가? 연개소문이나 정중부 최충헌처럼 정부를 둘러엎고 무단정치 하자는 게 아니었지. 박대통령 살아있을때 하나회가 그만큼 특혜를 받았으면 족한 것 아닌가? 난 자네 의견에 반대 하네”

말을 남기고 김복동은 떠나갔다. 전두환은 노태우와 손잡고 하나회를 출동시켜 12.12를 성사시킨다. 12.12가 끝나고 2주간 후 이런일이 있었다. 용산에 있는 주한미군 사령관실에 한국군장성이 찾아왔다.

“사령관님에게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주변을 물리쳐 주십시오. 오늘 나누는 내용은 절대로 비밀을 보장해 주셔야합니다.”

미군사령관 위컴대장과 마주앉은 한국군 소장은 영어가 유창했다. 실력과 절도가 배어있는 엘리트장군이었다.

“나는 이번에 12.12 구테타를 일으킨 전두환의 친구로 하나회회원이기도 합니다. 장군께 묻습니다. 이번 12.12사태에 대한 미국측 입장은 무엇입니까? 12.12쿠데타로 한국군은 아까운 별들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다시 유신독재시절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구요. 박정희대통령의 죽음이 헛되게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한국군 장군들이 모두 전두환처럼 군부독재를 원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30여명의 장군들이 역 쿠테타를 모의하고 있습니다. 이를 의논하러 내가 대표로 왔습니다. 역 쿠테타의 목적은 전두환일당을 몰아내고 군의 권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민간인 민주정부를 세우려고 합니다. 미국은 역 쿠데타를 지지할 준비가 돼있습니까?“

위컴은 신중했다.

“굉장히 델리케이트한 질문입니다. 우선 나는 군사독재가 판을 치고 있는 한국에 귀관과 같은 장군이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금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귀관과 30여명의 장군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믿을 수도 없어요. 지금 내가 할수 있는 답변은 이렇습니다. ‘미국은 어떤 쿠데타도 지원하지 않는다’ 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 쿠데타도 지원할수 없어요. 한 마디로 NO 이지요. 오늘 나를 믿고 찾아준 귀관의 이름은 귀관의 요구대로 절대로 밝히지 않겠습니다. 내가 죽은 후에도 영원한 오프레코드로 남겨두겠습니다. 내가 한국임무를 끝내고 퇴역하여 회고록을 쓸때도 장군의 이름을 밝히지 않을겁니다. 탱큐, 행운을 빕니다”

위컴에게서 확답을 받아내지 못한 그 장군은 클라이스턴 미대사를 찾아간다. 답변은 마찬가지였다.

위컴은 후일 “벼랑 끝의 한국-12.12에서 광주항쟁까지”라는 회고록을 펴낸다. 그 회고록에서 역 쿠데타 제의를 들고 온 장군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러나 약속대로 장군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대신 누구나 알수 있게 장군의 신상을 털어놨다.

-전두환과 막역한 친구. 하나회회원.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장군. 서울지역 장군. 군내에서 인망이 높은 유능한 장군. 전두환이 그의 역 쿠테타 움직임을 포착했지만 또 다른 친구의 간청으로 처벌하지 않는다. 대신 한직에 머물게 했다가 옷을 벗긴 장군.

그 장군은 누구일까?

김복동은 전두환의 세친구중 하나다. 하나회회원이다. 영어를 잘하는 장군이 드문데 김복동은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 김복동은 서울근교 여주 3군사령부 이건영의 참모장이다. 미국이 조망한 한국의 차세대 지도자에 군인으로는 오직 전두환 김복동이 들어있다. 교회장로로 덕과 실력을 갖춘 김복동은 선후배가 많이 따르는 인격자다. 전두환이 김복동의 역 쿠데타를 눈치 채고 처벌하려 했다. 매제 노태우가 만류하여 병력이 없는 육사교장으로 보낸후 2년 후에 옷을 벗겼다.

그렇다면 그 소장은 김복동이 아닐까? 퍼즐게임을 해봐라. 김복동 말고 그런 인물이 또 있나?

육군중장으로 예편당한 김복동은 광업진흥공사 사장으로 있다가 잘린다. 국회의원으로 정계로 진출한다. 2선 국회의원으로 야당인 자민련 대통령후보로 거명 됐지만 67세에 세상을 떠났다.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세친구의 우정은 중장까지 같이 갔지만 양심 때문에 헤어졌다. 욕심을 따른 전두환과 노태우는 육군대장에 대통령까지 해먹는다. 양심을 따른 김복동은 친구에게서 쫓겨나 육군중장으로 끝난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공유할수 없는 것인가? 전두환에게서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노태우는 전두환을 백담사에 유폐시킨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정을 버려야 했다. 세상만사 사옹지마인가? 사필귀정인가? 대통령으로 부귀영화를 누린 전두환 8년 노태우 5년이 끝나자 그들은 법의 심판을 받는다.

12.12 구데타와 5.18 광주민주항쟁 살인진압의 원흉으로 몰려 사형언도를 받은 것이다. 김대중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출옥하지만 부끄러운 인생을 산다. 부정축재로 모은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숨어사는 인생이 됐다. 세친구의 우정은 여기서 끝난다.

권력은 무상해도 우정은 영원한가? 대륙을 품고 사는 중국에서는 도원결의나 관포지교(管鮑之交)가 통한다. 배신과 권모가 판을 치는 좁다란 한반도에서는 그게 어려운 것 같다.

그렇게 김복동은 떠나갔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