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노치원
by 황룡 | 24.01.14 19:50



 

 

일제강점기에 소학교를 다니다 소년 가장이 되면서 더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아버지, 생의 종착역이 멀지 않은 92세가 되어 노치원(주간보호센타)을 마치 학교 가듯 다니신다.

 

91세의 어머니는 당신 한 몸 주체하고 보존하기도 힘에 부치시기에 아버지는 그 곳에서 하루 세 끼니도 해결하고 서로 잘 듣지 못하는 최소한의 대화로 사회적 관계를 이어 가신다.

 

평생 애증의 업보業報인 아버지를 노치원에 보내시면서 어머니는 18시간, 6일의 홀가분한 편안함을 누리신다는 얘기에 가슴이 아리다. 자식들을 위해 아버지 보다 딱 하루라도 더 사셔야 된다는 의지로 버티시는 게 눈물겹다.

 

오늘도 어제처럼 해는 서산을 넘었다. 너나없이 누구나 해 처럼 넘어 가야 할 저 산, 그저 노을인 듯 아름다운 빛을 남기고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걸음

 

누죽걸산,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던가. 올해도 만보 걷기는 계속한다. 아이젠만 착용하면 눈덮인 산 길이 더없이 좋다.

 

류근 시인이 '뉴스공장, 겸손은..' 방송에서 금요일 마다 낭독으로 소개해 주는 시들이 좋다. 오늘은 그 시를 외우면서 걷는다.

 

시를 반복해서 낭독하며 외우다 보면 두 시간 정도 걷는 산 길이 지루할 새가 없는데, 오늘은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였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작정하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소한에

 

미세먼지 바람에 흩어지고 소한인 오늘, 은 한 걸음 가까이 눈 앞으로 다가섰고, 은 한껏 짓푸르렀다.

 

오늘 소한부터 대한까지 첫 5일간 기러기가 북으로 날아가고, 그 다음 5일간은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고, 그 다음엔 꿩이 운다고 했다.

 

이는 중국 황하 유역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 우리 사는 곳과는 좀 차이가 있다해도 겨울이 깊어지면 봄은 멀지 않다는 얘기.

 

매화는 꽃망울 몽그리고 움찔거리다 남녘엔 벌써 숨가쁘게 터지려는데, 아마 얼음새꽃도 눈 속에 움찔거리리라. 봄이 온다, ~...




착각

 

사는 곳이 분지盆地라 사방 어디를 둘러 봐도 이다. 어쩌다 주변 산에 올라 내려다 보면 내 움직이는 동선이 빤히 보인다.

 

삶이 참 단순해 보여 허허롭다. 생노병사가 저 손바닥 만한 곳에서 다 이루어지는데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듯 착각하고 사는구나 싶다.

 

오전에 산을 오르고, 오후엔 저 강변을 걸었다. 모자란 볕을 쬐다 해 저물면 노을을 담고 집으로 돌아오며 하루를 또 살아냈다 안도하는 겨울, 참 쓸쓸하다.

 

때론 무지개가 걸쳐 있던 곳, 해 넘어가는 저 산너머... 언제쯤 분지의 저 경계를 넘고 접어 놓은 미지의 땅을 유영할 수 있을지...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룡의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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