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 마이클 루터 킹? 킹목사의 생애
by 서영민 | 12.01.21 08:23

며칠 전 칼럼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과 관련한 글을 올린 이후 킹 목사에 대해 좀더 자세한 정보를 더해달라는 독자의 요청이 있었다.

킹 목사는 1929년 1월 15일 조지아 주 애틀랜타 시에서 출생하였다. 원래 이름은 아버지 이름을 따라 Michael Luther King Jr. 였는데 아버지가 1934년, 중세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이름을 따서 개명을 하면서 킹 목사의 이름도 마틴 루터로 바뀌게 되었다.

 

킹 목사의 공적은 무엇보다 당시 억압(抑壓) 받고 있던 흑인과 비주류 소수민족들의 실상을 미국 사회에 알리고 이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혼신을 다한 점이다. 특히 인도의 성인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에 크게 감동을 받은 킹 목사는 간디의 비폭력 저항 방법을 미국 인권운동에 접목(椄木)을 시킨다.

그리고 일반인들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는 흑인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지엽적인 저항운동이 아닌 모든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인권운동을 미국 사회에 소개했다. 이런 인류애적 공헌으로 킹 목사는 196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킹 목사가 생전에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내용은 미국 유태인 협회 (American Jewish Committee)가 수여한 미국 자유 메달 (American Liberty Medallion)이었다.

그리고 진보적으로 유명했던 교황 요한 13세의 1963년 친필 편지도 킹 목사가 남긴 몇 안되는 아끼는 유품 중 하나였다. 흑인, 유태인, 카톨릭의 장벽을 떠나 한 인간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인권을 대변한 킹 목사의 행적에 대한 지각있는 사회의 감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사회분위기는 킹 목사의 이런 고귀한 정신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지 못했다. 쓰레기 청소원 데모를 돕기 위해 테네시 주 멤피스 시에 내려온 킹 목사는 1968년 4월 4일 저격범의 총탄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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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영국에서 잡힌 저격 용의자 제임스 얼 레이 (James Earl Ray)는 처음에는 킹 목사의 피부색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죽였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불과 두달도 지나지 않아 자신이 암살범이 아니라고 주장을 하는 등 아직도 킹 목사의 암살에 대해서는 미스테리에 싸여 있다.

불과 39세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마감한 한 흑인 목사의 족적(足跡)은 현대 미국 사회의 변화에 한 획을 긋는 큰 걸음이었다. 킹 목사가 존경 받는 이유는 당시 한풀이 정도로만 치부되던 흑인 인권운동을 미국 주류 담론으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버스 승차 거부로 로사 파크 (Rosa Parks) 등 젊은 흑인을 규합하여 이들을 인권 운동가 (Freedom Fighter)로 변화를 시켰고 스스로 살해당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원하는 어떤 곳이든 최일선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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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성난 대중에게 1963년 워싱턴 시에서 발표한 "I Have a Dream" 의 절절한 사자후(獅子吼)는 비폭력 저항운동이 패자의 변명이 아니라 폭력 앞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항하는 새로운 수단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명연설로 남아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비폭력과 인권존중, 종교의 역할에 대해 얼마나 천착하고 통찰력을 갖고 있는지 몇개의 육성들을 소개한다.<자료 참조 www.ko.wikipedia.org>

 

그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벌어지던 베트남 전쟁을 다음과 같이 논박(論駁)하였다.


“지금 미국 청년들이 아시아의 정글에서 전투를 하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전쟁의 목적은 너무나 막연하기 때문에 전국의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흔히들 이들의 희생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이공 정권과 그의 동맹세력도 명색으로는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으며, 미국 흑인병사들은 민주주의를 누려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킹 목사는 1955년 진보적인 학풍의 보스턴 대학교 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신앙에서 기독교적인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진보적 신앙으로 옮겨가는데 이러한 변화는 아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 빈민가, 인간의 영혼을 억압하는 경제적인 조건, 인간의 영혼을 짓누르는 사회적인 조건에는 무관심한 채 인간의 영적인 구원에만 관심을 갖는 종교는 사멸하게 된다.”

그는 노동자들이 부르주아를 상대로 생존권을 요구하는 권리 투쟁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멤피스의 흑인 청소부들이 파업투쟁을 벌이자, 다음과 같이 연설을 하였다.


“자신이 지닌 엄청난 자원을 빈곤을 종식시키고, 주님의 모든 자녀들이 기본적인 생활상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면, 미국도 역시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노동자로서의) 평등한 대우를 받고 싶다면, 적절한 임금을 받고 싶다면 투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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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목사는 섬김 곧 이웃을 위해 사는 삶을 누구나 실천할 수 있고, 세상을 바꾸는 가치로서 중요하게 생각했다.


“중요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인정받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위대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이걸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위대한 이는 다른 이들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걸 말입니다. 이야말로 위대함의 새로운 기준입니다. <중략> 모든 사람은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섬길 수 있으니까요. 섬기는 데는 대학교 학위가 필요 없습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해 알 필요도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몰라도 섬길 수 있습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밝아야 섬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필요한 것은 은혜로 충만한 마음, 사랑으로 움직이는 영혼입니다. 당신은, 우리 모두는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I Have a Dream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smEqnnklf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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