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유명한 가문(4) 금융가문 Morgan가
by 서영민 | 11.11.05 22:01

뉴욕은 한편으로 돈을 벌기 위해 몰려든 이들의 집합지이다. 이중 돈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데 가장 탁월했던 집안이 Morgan 가(家)인데 지금도 J. P. Morgan Chase라고 하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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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전 Forbes 잡지가 선정한 세계 역사상 가장 큰 부자 리스트에서 JP Morgan은 59위이다. John Pierpont Morgan은 앞서 소개한 3대 부자들이 맨손으로 성공한데 반해 이미 부자 아버지 밑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국제 시민이 되기 위한 전초전을 밟은 인물이었다.

그런데 밴더빌트와 락크펠러, 카네기, 에디슨, 오티스 등 부자들은 한결같이 이 J. P. Morgan이라는 은행가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물론 돈 때문이었다. 당시 돈이 필요하고 돈을 불릴 수 있는 곳에는 이 JP Morgan이라는 인물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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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이 인물의 역사적 고찰을 통해 뉴욕 시의 역사를 헤아려보자. J. P. Morgan의 출생지는 사실 코네티컷에 위치한 하트포트 시였다. 흔한 이름 John으로 불리기보다는 어머니의 성을 딴 미들네임(Middle Name) Pierpont를 선호했다고 한다. 후년에 이르러 일반인들은 그를 J. P.라고 불렀지만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은 Pierpont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어려서부터 엄격한 아버지의 극성에 지금도 유명한 Cheshire Academy, English High School of Boston 등 프랩스쿨, 혹은 보딩 스쿨을 졸업해서 사업기반을 다졌다. 사업가이자 은행가였던 그의 아버지 Junius Spencer Morgan은 Pierpont를 스위스 대학 Bellerive로 보내 프랑스어를 능통하게 만들었고 대학을 졸업하자 독일의 University of Göttingen으로 보내면서 조건을 달았는데 6개월만에 독일어를 마스터하고 학위를 따는 것이었다고 한다.

Pierpont가 성공적으로 수업을 마치자 보너스로 영국 런던에서 6개월간 놀고 즐기게 했다니 노력에 대한 당근은 확실했던 셈이다. 어쨌든 이런 쉽지 않은 과제를 어렵지 않게 해낸 젊은 Pierpont의 총기(聰氣)를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황태자 수업을 받은 Pierpont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업가로 크게 성공을 거두는데 이 사람의 특징은 돈만 버는데 그친게 아니라 한 인더스트리 영역에 스텐다드를 만드는데 각별한 노고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 JP모건은 사진찍히기를 싫어했다. www.wikipedia.org

지금도 경영학에서 Morganization이라고 부르는 프로세스인데 각기 군소 상인들의 극심한 경쟁으로 한 산업 자체가 위기에 몰렸을 때 크게 국면을 뚫고 조정을 해서 모두가 살게 해주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Morganization의 몇 가지 예가 바로 뉴욕 시의 역사 자체와 궤를 같이 한다.

가장 먼저 밴더빌트 가문에서 소개했던 기차 산업이 1850년대 미국에서 가장 각광을 받는 산업이었는데 지역마다 군웅(群雄)이 할거(割據)하여 요금 체계도 다르고 철도 모양도 다른 등 실제 골탕을 먹는 사람들은 이 기차를 이용해야하는 승객들이었다. 결국 이 산업체 자체가 위기에 이르자 Pierpont가 밴더빌트를 위시한 당시 유명한 여객 철도 소유주를 자신의 뉴욕 5번가 맨션으로 불러들여 회의를 주도했다.

이후 카네기의 카네기 스틸 컴퍼니와 군소 제강소를 묶어 US Steel Company를 만들었고 에디슨의 전구회사와 다른 가전 제품 업체를 묶어 ‘General Electric’ 이라는 세계 최고의 회사를 일구는데 모두 이 JP Morgan이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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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미국의 대통령이 선거에 이기려면 JP Morgan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겼고 경제적으로 그의 판단이 미국 정부의 정책 결정 보다 더 우선한다는 시사만평(時事漫評)까지 등장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실질적으로 그는 19세기 말 20세기를 풍미한 미국 경제계의 막후 실력자, 혹은 경제 황제였던 것은 틀림없다.

그의 아들 JP Morgan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현재 Federal Reserve Bank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작 당시 뉴욕에 본부를 두었던 Federal Reserve는 현재도 많은 이들이 마치 정부 기관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데 이는 Pierpont의 균등(Fairness) 정신과 자체 정화(self regulatory)를 내세운 실로 특이한 민간기구이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 전 세계에 끼치는 엄청난 영향력때문에 더 이상 이런 자율 기관으로서의 존재하지는 않지만 현재도 이 기관의 근본 정신을 살펴보면 150년전 JP Morgan이 일구어냈던 Morganization의 한 축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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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 널려 있는 JP Morgan Chase Bank, Morgan Stanley Investment House 등 아직도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관여하며 삶의 일부를 관장하고 있는 Morgan 가문이야말로 월가로 상징되는 뉴욕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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