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며 먹거리 축제인 산 제네로 페스티발(San Gennero Festival) 다가 온다. 9월 16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될 이 축제에 즈음해 한국 동포 사회에도 친숙한 이태리계 이민자들의 생활상을 살펴보겠다.
우선 미국내 이태리계 이민자들의 현황이다. 현재 자신들을 이태리 이민자의 후손이라고 밝히는 사람들은 약 2천만명, 미국 인구의 약 6% 정도이다. 지난번 네덜란드 이민의 경우에서도 살펴보았듯 2대 3대를 거치면서 다른 이민자들과 결혼을 하게 되면 스스로의 정체성(正體性)을 잃고 만다. 실제 이태리 피가 섞인 이들은 이 통계 숫자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뉴욕 시와 점목된 이태리 이민의 역사는 무려 500년전 16세기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스테이튼 아일랜드와 브루클린을 잊는 다리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죠바니 베라사노(Giovanni da Verrazzano)가 1524년 뉴욕일원을 탐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Henry Hudson의 1609년 뉴욕 탐험에 비해 거의 80년을 앞선 것인데 학계에서는 아직 논란이 크고 일반인들에게도 덜 알려져 있는 또 하나 뉴욕의 숨겨진 역사이다.
어쨌든 이태리 이민자의 대량 유입은 역시 180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세기 초에 이루어졌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태리 갱단 마피아의 형성도 19세기 말 20세기 초였다고 본다.
그런데 왜 이태리 이민자들이 마피아로 대변되는 말썽꾸러기처럼 인식됐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이태리 본국의 역사를 살펴 보아야 한다.
이태리는 한국과 같은 반도(半島) 국가이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지형으로 최남단 나폴리와 시실리 섬 지역은 아열대성 기후로 지중해 연안을 접하고 있다. 지역 특성상 이 지역은 현재도 올리브 포도 등 농수산물이 주 생산물이다.
수도인 로마는 서울처럼 국토 중간에 위치해있고 피아트,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으로 유명한 이태리 자동차 산업은 밀란을 중심으로 최북단 프랑스, 스위스, 독일과 영토를 접하고 있다.
사람들 생김새도 크게 차이가 나는데 남쪽 사람들은 중동인들처럼 피부가 비교적 까무잡잡하고 머리와 눈 색깔이 검다. 북쪽 사람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나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에 나오는 로마제국의 영웅들 처럼 흰 피부에 금발, 파란 눈의 사람들이 꽤 눈에 뜨인다.
여기서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보자. 18세기까지 전 유럽이 거의 300년간 천재지변(天災地變)을 겪게된다. 지구 온도가 화씨로 약 3도 가량 낮아져서 농작물 피해가 속출하고 특히 남부 유럽은 수십년에 달하는 가뭄에 시달리게 되었다. 북쪽 아일랜드에서는 농작물이 얼어죽고 습한 기후에 전염병이 창궐(猖獗)을 하는데 반해 남부 이태리에서는 가축과 농작물이 말라죽는 재앙이 수세기 동안 반복이 되었다.
그러던 차에 신천지 미국 이민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나라 인구의 3분의1이 미국으로 이민한 아일랜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농업에 종사하던 남부 이태리인들로 대거 미국행을 택하게 된다. 특히 당장 먹고 살 수 없었던 시실리 섬 사람들은 절반이 미국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이태리와 한국의 유사점을 짚어보자. 일단 반도 국가로 남북으로 길게 늘어져있다. 지역 성향이 강하고 타 지역 사람들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다. 불끈하는 성질도 비슷하고 지역 차별도 비슷하다. 특히 곡창지대인 전라도와 남부 이태리 사람들에 대한 타 지역의 차별도 흡사하다.
제주도를 시실리 섬과 비교하자면 제주도 사람들이 외부로부터 들어온 관리 등 사람들을 입도인(入島人)이라해서 3대를 경계한다고 하는데 시실리 사람들은 외부사람들을 극도로 경계하다 못해 증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 점이 유명한 마피아의 시발점이다.
▲ 시실리 섬의 아름다운 풍광 www.wlkipedia.com
마피아의 출발은 비밀 결사 단체인 마피오시(Mafiosi)에서 유래(由來)했다. 이태리와 프랑스의 수백년에 걸친 영토 다툼의 전방으로서 또 전략 요충지로서 시실리는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
마치 제주도가 일본과 한국 본토에 시달렸던 역사와 비슷하다. 또 조선 시대 때 제주도에 정치범 등 죄수를 가두었듯 시실리도 비슷한 방법으로 몇 백년간 원치 않는 인구 유입이 이루어졌다.
이때 마피오시라는 결사 조직은 선량한 양민을 보호하고자하는 자체 정화 기구였다. 이태리의 속국이 되든, 프랑스의 속국이 되든, 범죄자가 유입이 되든 섬의 평화는 자신들의 손으로 지킨다는 신념에서였다.
그런데 막상 이들이 미국으로 와 보니 신천지는 커녕,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인종 차별과 착취가 기다리고 있었다. 2006년 칸느 영화 상 수상작인 골든 도어(Golden Door)라는 이태리 영화를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특히 아이큐 테스트와 적성 검사로 알려진 입국 시험은 모두 영어로 진행이 되었는데 시험에 통과를 못하면 입국이 거부되고 다음 배로 이태리로 돌려 보내졌다.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미국 본토에 입국하더라도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현재 뉴욕의 캐널 스트릿 북쪽에 자리 잡은 리틀 이태리는 유명한 관광명소이다. 뉴욕에 있는 분이라면 9월 16일 맨해튼에서 시작되는 산 저나로 축제를 꼭 한번 즐기기시를 바란다.
이제는 웃고 즐길 축제이지만 100년전 초창기 이민자들에게는 생사고락이 역긴 삶의 투쟁이었다. 이때 이들을 외부 (미국 사회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는 장치는 경찰이 아니라 우리 문화, 향약 계에 해당하는 마피오시였던 것이다.
오늘날 잔인한 범죄조직으로 알려진 마피아가 실은 자체 정화기구였던 마피오시에서 출발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